“경제부, 산업부 등 경제 관련 부서 기자와 데스크, 편집자는 주식 직접투자를 해서는 안 된다.” 1999년 제정된 중앙일보 윤리강령 세부지침의 일부다. 그해 3월 삼성그룹과의 분리를 선언한 중앙일보는 약 3개월에 걸친 논의 끝에 8개 항, 27개 세부지침으로 구성된 윤리강령을 확정했다. 당시 기자협회보는 1면 머리기사로 이 소식을 전하며 “언론사 가운데 처음으로 주식투자, 부동산 투자에 금지규정을 두었다는 점”에 주목했다.
촌지·향응 거부 지침도 포함됐다. ‘개인적인 촌지는 물론 기자단을 통한 의례적인 촌지도 받지 않는다’고 명시하고, ‘시가 5만원 이상’의 선물은 받을 수 없도록 했다. ‘본의 아니게’ 선물을 받고 돌려줄 수 없는 경우엔 사내에 설치한 ‘선물센터’에 기탁하며, 선물센터는 이런 물품들을 모아 불우이웃이나 단체에 기증키로 했다.
당시만 해도 언론사 윤리강령은 “취재 과정에서 얻은 정보를 개인의 이익을 위해 이용할 수 없다”는 선언적 수준이었는데, 중앙에서 이처럼 “실천적이고 강도 높은 내용”의 윤리강령을 제정하게 된 데는 길모 전 기자의 불법 주식투자 건이 영향을 미쳤다. 현직에 있을 때 취재 과정에서 얻은 미공개정보를 동생에게 유출해 투자하게 한 혐의로 기소된 사건이었다.
이후 촌지·향응 거부는 물론 ‘미공개정보를 이용한 주식·투자 금지’는 언론계의 당연한 ‘상식’이 됐고, 타 언론사 윤리강령에도 엄격한 금지 조항 등이 포함됐다. 중앙 계열사인 JTBC는 물론 조선일보도 “금융, 증권 시장을 담당하는 기자, 부서장, 편집자는 주식 직접투자를 하지 않는다”는 내용을 윤리규범 가이드라인에 명시하고 있다. 이는 “기자에게는 다른 어떤 직종의 종사자들보다도 투철한 직업윤리가 요구된다”(한국기자협회 윤리강령)는 인식에 기반을 둔 것일 테다. 하지만 송희영 전 주필의 비리 의혹이 터진 뒤 ‘금품 수수 및 향응 금지’ 규범 등을 만들었던 조선일보에선 이른바 ‘박수환 로비 문자’건부터 취재기자의 서울시청 사무실 무단 침입 사건, 전직 논설위원과 종편채널 앵커 금품수수 의혹 등 윤리를 넘어 법의 경계를 넘나드는 사건이 끊이지 않고 있다. 경찰이 수사 중인 수산업자 김모씨의 사기행각 사건과 관련해 김씨로부터 금품을 받았다는 언론인 이름이 줄줄이 거론되며 ‘김영란법 게이트’라고까지 불리고 있다. 윤리강령이란 그저 문자로만 존재하는 것인가, 허탈함을 지울 수 없다.
검찰과 경찰 세계를 배경으로 거대한 부정부패를 까발린 드라마 ‘비밀의 숲’에는 이런 대사(독백)가 나온다. “모든 시작은 밥 한 끼다.” ‘이쯤이야’, ‘다들 하는데’ 하고 넘겼던 모든 일을 다시 돌아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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