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은 5년마다 마법에 걸린다.” 2007년 12월11일자 주간경향 커버스토리 제목이다. 대선이 있는 해마다 검찰이 관련 사건을 수사하면서 선거 결과를 좌우했던 관행을 지적한 것이었다. 실제로 검찰은 1997년, 2002년 그리고 2007년까지 세 번 연속해서 대선 승패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결정을 했다.
1997년 대선 직전 당시 여당이었던 신한국당 측이 김대중 후보의 비자금 의혹을 폭로했다. 하지만 김태정 당시 검찰총장은 대선을 두 달 앞둔 시점에 수사를 유보하겠다고 발표했다. 김대중 후보는 악재를 피할 수 있었고 결국 대선에서 승리했다. 김태정 총장은 김대중 정부에서 법무부 장관으로 영전했다. 검찰 수사가 대선 결과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 사건이었다.
5년 뒤 2002년 대선 때는 김대업씨가 이회창 후보 장남의 병역면제 관련 의혹을 폭로했다. 검찰은 대선을 두 달 앞두고 허위 폭로라는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회창 후보는 대선에서 패배했지만 대선을 눈앞에 둔 시점에 진행된 검찰 수사가 선거에 큰 영향을 미쳤다는 점은 분명했다.
2007년 대선 직전에는 지금도 많은 사람이 기억하는 BBK 사건이 있었다. 이명박 후보의 지지율이 압도적이었던 상황에서 BBK 사건에 대한 검찰 수사 결과는 대선의 결과를 사실상 결정짓는 역할을 했다. 2007년 12월5일, 검찰은 대선을 2주 앞두고 이명박 후보가 BBK 의혹과 무관하다는 결론을 발표했다. 이명박 후보는 압도적 표차로 대통령에 당선됐다.
대선이 있을 때마다 결과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던 검찰의 전통은 2007년 이후 끊어진 것처럼 보였다. 2012년과 2017년 대선을 앞두고 검찰은 유력 대선 후보와 관련된 수사를 진행하지 않았다. 2012년 대선 직전에 터진 국정원 댓글 사건에 대한 검찰 수사는 대선 이후에 이뤄졌고, 2016년 대선 당시에는 현직 대통령의 국정농단 의혹에 대한 수사가 진행됐지만 대선 후보들은 수사대상이 아니었다. 정치검찰에 대한 논란은 여전했지만 적어도 검찰이 대선의 승패에 영향을 미치는 관행은 구시대의 유물이 된 줄 알았다.
그러나 대선이 8개월 앞으로 다가온 지금 검찰의 ‘마법’이 부활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야권의 유력 대선주자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가족과 관련된 수사에 검찰이 속도를 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특히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 의혹에 윤 전 총장의 장모 또는 부인이 관여했다는 의혹에 대한 서울중앙지검의 수사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최강욱 의원이 지난해 4월 고발한 이후 추미애 전 장관의 지휘권 행사에 따라 윤석열 전 총장과 갈등 관계에 있는 이성윤 전 서울중앙지검장이 독립적으로 수사했지만 결론을 내지 못했던 사건이다. 하지만 검찰은 최근 주가조작 수사에 전문성이 있는 검사들을 투입하면서 더욱 철저하게 수사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
주가조작에 가담한 것이 사실이라면 누구든지 법에 따라 처벌을 받아야 한다. 유력 인사와 관련된 고발 사건을 검찰이 직접수사하는 것도 이상하게 볼 일은 아니다. 그러나 대선이 열리기 거의 2년 전에 고발된 사건에 대한 수사 결과를 대선 직전에 발표한다면 지난 14년 동안 사라졌던 전통을 부활시켰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검찰의 수사 결과가 대선의 승패를 좌우하는 ‘마법’ 말이다.
이 같은 의심을 피하려면 검찰은 대선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사건을 처리해야 할 것이다. 최대한 대선과 떨어진 시점에, 가능한 이른 시점에 수사 결과를 발표하는 수밖에 없다. 수사를 시작한 지 이미 1년 3개월이나 지났다는 점도 대선과 가까운 시기에 수사 결과가 발표될 경우 정치적 의도에 대한 의심을 받을 수밖에 없는 이유가 될 것이다. 5년에 한 번 국가와 국민의 대표를 뽑는 선거의 결과가 투표소가 아니라 서초동의 검찰청 사무실에서 결정되어선 안 된다. 지난 4년간의 검찰개혁의 결과가 14년 동안 끊어져 있던 ‘검찰의 대선 개입’이라는 부적절한 전통의 부활이라면 너무 허탈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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