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벌적' 언론중재법, 밀어붙이기 안 된다

[우리의 주장] 편집위원회

언론의 고의·중과실에 의한 허위 보도에 최대 5배까지 손해배상 책임을 지우는 언론중재법 개정안이 이르면 23일 국회 본회의에서 처리될 예정이다. 민주당이 지난 6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법안심사소위에 이 안건을 기습 상정하며 법안 통과에 속도를 내고 있다. 언론에 대한 과잉규제라는 비판을 무릅쓰고 밀어붙인다면 위헌 시비 등 법적 논란이 불가피하다. 좀 더 신중하고 정교한 입법이 필요하다.


현행 민법과 형법, 언론중재법은 언론 보도로 인한 피해 발생 시 손해배상과 명예훼손, 정정보도로 구제를 하고 있다. 징벌적 손해배상제는 ‘가중 처벌’로 헌법이 규정한 과잉금지 원칙을 위배할 소지가 크다. ‘언론재갈법’이라고 우려하는 까닭이다. 언론이 잘못된 보도에 책임을 지는 것은 당연하지만, 징벌을 강화해 본때 보이겠다는 방식은 눈엣가시 같은 언론을 길들이겠다는 의도를 노골화한 것이다. 권력에 대한 비판을 봉쇄하는 수단으로 악용할 가능성이 짙다.


징벌적 손해배상 요건인 ‘고의·중과실’ 입증 책임과 판단 기준도 논란거리다. 민법 750조는 불법 행위에 대한 손해배상 책임을 다루며 피해자가 고의·과실을 입증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그런데 언론중재법 개정안은 허위·조작 보도에 대한 특칙까지 신설하며 배상을 폭넓게 청구할 수 있도록 하며 과실이 아니라는 입증 책임을 되레 언론사에 두고 있다. 면책 규정으로 ‘법률 위반에 정당한 사유가 있는 경우’ ‘진위 여부에 대한 검증절차를 충분히 거친 경우’ 두 가지로 제한했다. 법적 처벌은 강화하며 ‘네 잘못이 아니라는 것을 입증해봐’라는 식이다. 법 적용의 형평성 논란이 벌어질 수밖에 없다. 특히 고의·중과실을 추정하며 언론사가 ‘정정보도 청구’ 사실을 알리지 않는 것만으로도 과실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확정 판결 전까지 무죄추정을 원칙으로 삼고 있는 헌법 정신에 반하고 있다.


무엇보다 법률은 객관성과 구체성이 핵심인데, 언론중재법 개정안은 주관적 판단이 개입할 표현이 많아 비판을 자초한 측면도 있다. ‘중과실 추정’ ‘조작 보도’ ‘법률 위반에 정당한 사유’ 등의 표현은 다분히 자의적이고 모호하다. 기준이 정확하지 않으면 법적용 과정에서 분란이 일어날 게 뻔하다. 소송 남발로 언론 자유가 훼손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렇게 졸속으로 법률을 만드는 것은 입법 기관의 횡포와 다름없다.


언론을 바라보는 국민 여론이 어느 때보다 곱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 선정적 보도와 가짜뉴스가 여론시장을 왜곡하고 있는 현실도 엄연한 사실이다. 있는 사실을 객관적으로 보지 않고, 한쪽 면을 과도하게 부각해 여론을 비틀고 있는 상황은 심각하다. 언론이 불신을 자초한 측면을 부인하기 어렵다. 스스로 자정하지 못하고 법적인 강제 수단까지 동원해야 하는 상황이 착잡하다. 표현의 자유를 이유로 지면과 방송을 정쟁의 도구로 활용하지 않았는지 언론은 자문해볼 필요가 있다. 책임이 가볍지 않다. 그렇다고 무소불위의 힘을 앞세운 과도한 입법 통제가 정당성을 얻는 것은 아니다. 언론 자유를 침해할 우려가 큰 만큼 언론계와 충분한 숙의를 통해 해결책을 찾는 노력이 선행돼야 한다. 껄끄러운 언론을 솎아내겠다는 식으로는 상황을 꼬이게 할뿐이다.


민주당에 당부한다. 언론중재법을 개정하려면 더욱 엄밀하고 정교한 기준이 필요하다. 과잉규제 등 법적 논란이 없도록 신중하게 추진해야 한다. 개인의 피해 구제는 폭넓게 허용하되 권력기관이 악용 못하도록 강력한 보완책이 필요하다. 7월 임시국회 처리를 목표에 둔 속도전, 당장 멈춰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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