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이 자살보도 원칙 어기는 이유, 시민들은 알고 있다

[컴퓨터를 켜며] 김달아 기자협회보 편집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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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달아 기자협회보 편집국 기자

그날도 어김없이 이메일이 왔다. 발신자는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 실종된 고교생이 숨진 채 발견됐다는 보도가 나온 날이었다. 자살예방정책지원기관인 생명재단(옛 중앙자살예방센터)은 유명인이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사회적으로 주목받는 자살 사건이 발생했을 때 기자들에게 협조문을 보낸다. 자살보도를 자제해 달라, 자살보도 권고기준을 지켜달라는 당부다.


한국기자협회와 보건복지부, 생명재단이 제정한 자살보도 권고기준엔 5가지 원칙이 있다. 기사 제목에 ‘자살’ 대신 ‘사망’이나 ‘숨지다’같은 표현을 쓰고, 구체적인 자살 방법·도구·장소·동기 등을 보도하지 않고, 사진과 동영상 사용에 유의해야 하며, 자살을 미화·합리화하지 말고, 고인의 인격과 유가족의 사생활을 존중한다 등이다.


기자라면 누구나 알고 있을 이 원칙은 실제 보도에선 번번이 무너진다. 실종 고교생 사망 보도에서도 그랬다. 지난달 25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실종된 김 군을 찾아달라는 글이 올라온 이후 관련 보도가 쏟아졌다. 분명 언론의 역할이 필요한 순간이었다. 실종자를 찾아야했기에 얼굴 사진 여러 장과 동선이 기사화됐다.


문제는 그 이후였다. 김 군은 지난달 28일 끝내 주검으로 발견됐다. 경찰은 “외관상 몸에 상처 등이 없었고 여러 가지 다른 이유에서 타살로 의심할만한 단서는 발견되지 않았다”고 발표했다. 유족들은 경찰에 사망 경위를 외부로 공개하지 말아 달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그런데도 언론은 김 군이 어떤 모습으로 숨져있었는지, 어떤 도구를 이용했는지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자살을 부추길 수 있는 보도 행태다. 심지어 현장에서 시신이 들것에 실려 있는 사진까지 보도했다.


언론 스스로 자살보도 원칙을 무색하게 했다. 구체적인 근거 없이 김 군이 사망 전 문제집을 구입하고 교통카드를 충전한 일을 들어 타살 의혹을 제기하거나 단순히 자살 원인을 추측·단정하는 보도 역시 하지 말았어야 했다.


물론 과거와 비교하면 자살보도는 나아지고 있다. 최근 2~3년 전부터 자살보도 대부분에 자살예방 상담전화 안내 문구가 실린다. 기사 제목엔 ‘숨진 채 발견’, ‘극단적 선택’이 널리 쓰인다. 그럼에도 아직 갈 길이 멀다. 지난해 중앙자살예방센터의 자살보도 모니터링에 참여한 시민 패널단 47명 중 22명은 ‘극단적 선택’ 단어도 부적절하다고 생각했다. ‘극단적 상황에 몰리면 죽음을 선택해도 된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질 수 있기 때문이다.


패널단은 자살보도 양상을 이렇게 평가했다. ‘비교적 예전처럼 보도하진 않는다. 다만 ‘제목 장사’하는 언론의 행태는 여전하다’, ‘죽음을 사회적으로 이슈화함으로써 기사가 더 많이 노출되기를 바라고 자살을 자신들의 경쟁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다고 느꼈다’. 언론이 왜 계속 자살보도 원칙을 어기는지 시민들은 알고 있다.


자살보도의 목적은 분명하다.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에게 자살을 하나의 대안으로 선택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자살을 막는 것이다. 잘 한 보도는 생명을 살리고 잘못된 보도는 사람을 죽게 할 수 있다. 목적을 이루는 방법은 사실 간단하다. 현장기자도 데스크도 알고 있을, 기본적인 이 원칙을 지키면 된다. 자살보도에서라도 언론이 비난을 자초하는 모습을 그만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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