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휴가철이 다가왔다. 취재하랴, 기사 쓰랴 바쁘게 일했을 기자들에게 꿀맛 같은 휴식의 시간이 온 것. 다만 휴가 기간을 정하기 전 내가 빠지면 더 바빠질 데스크와 부서원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것도 사실이다. 1995년 기자들의 상황도 현재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기자협회보는 1995년 7월8일자 <여름휴가 당당히 떠나자>에서 “(언론사) 각 사 노조는 최근 단체협약에 의무휴가를 늘리는 방안을 놓고 사측과 교섭 중”이라며 “하지만 짧게는 6일에서 길게는 12일이나 되는 기간 동안 자리를 비우기 위해서는 상당히 ‘용기’가 필요하다”라고 보도했다.
기사에선 의무휴가일을 늘리더라도 기자들이 마음 놓고 휴가를 가지 못하는 사정이 전해졌다. KBS의 경우 여름 의무휴가일이 6일이지만, 부서당 한꺼번에 20% 이상 휴가를 가지 못하게 하는 규정이 있어 구성원 3분의 1 정도가 여름 휴가를 가지 못했다. 기자협회보는 “동아일보 역시 의무휴가일을 기존 7일에서 3일 더 연장했지만 2일을 쓰지 못했을 경우 연월차 수당으로 보전하게 돼 있어 사원들의 이해가 엇갈리고 있다”고 보도했다.
당시 중앙일보 노조는 기자들의 이 같은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단체협약에 ‘휴가 명령제’를 새로 도입하기로 했다. 기사에선 “휴가 명령제는 분기별로 회사에서 휴가사용 계획, 실태를 점검해 기자들이 미사용한 휴가를 갈 수 있도록 부서장에게 명령하는 제도”라고 설명하며 “이 눈치, 저 눈치 보느라고 휴가 한번 당당히 못 가던 기자들에게는 상당히 힘이 될 만한 제도”라고 평가했다.
결국엔 데스크부터 휴가를 가야 밑에 있는 부서원들도 눈치 안 보고 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기자협회보는 “중간 간부의 역할과 책임 때문에 큰 사건이라도 터질까 갈 수도 안 갈 수도 없는” 부장들의 답답한 사정도 전했다. 이에 경향신문의 한 기자는 “부장들의 자신감 있는 태도가 무엇보다 필요하다”며 “이는 평소 업무와도 연결되는 것이다. 휴가 문제도 이런 자신감이 있다면 자연스럽게 해결될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상사 눈치를 왜 보느냐는 당시 ‘신세대’ 기자들의 발언도 나왔다. 서울신문의 한 기자는 “요즘에 누가 눈치 보느라 휴가를 안 가겠느냐”며 “휴가 안 가면 나만 손해”라고 ‘휴가 무용론’을 일축하기도 했다.
Copyright @2004 한국기자협회.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