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발 비행기와 마스크 착용 면제

[글로벌 리포트 | 중동] 원요환 YTN 해외리포터(UAE)·현 A320 조종사

원요환 YTN 해외리포터(UAE)·현 A320 조종사

이륙 전 비행기 안, 파키스탄의 대도시인 카라치 공항을 떠나 UAE로 돌아오는 일정이다. 그런데 한가지 이상한 게 있다. 있어야 할 승객들이 없다. 최근 UAE 정부가 인도와 파키스탄 등에서 입국하는 승객들을 원천 금지시켰기 때문이다. UAE에서 파키스탄으로 갈 때는 승객이 꽉꽉 찼었는데 다시 돌아올 때는 승객 0명인 이 기묘한 광경에 씁쓸한 웃음이 나온다.


객실승무원들은 승객이 없으니 할 일이 없다. 텅 빈 좌석에 편하게 앉아 수다를 떨면서 합법적인 휴식을 취한다. 조종석 안 필자의 왼쪽에 앉은 기장은 인도 출신이다. 기장은 이런 상황이 어이가 없는지 자기도 지금 몇 달 동안 고향에 갈 생각은 엄두도 못 내고 있다고 했다. 정책이 갑자기 바뀔까 봐 한동안 고향 가는 건 포기하고 있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지난 4월 UAE 정부는 인도와 파키스탄 그리고 방글라데시 등에서 입국하는 모든 비행기의 승객을 불허한다는 강력한 규제 정책을 내놓았다. 그리고 약 석 달이 지난 지금, 두바이 등 일부 UAE 지방정부에서 규제를 풀긴 했지만 규제 정책은 기본적으로 유효하다.


그 이유는 당연히 코로나19 바이러스 때문이다. 인도발 델타 변이로 인해 코로나19에서 이제 좀 벗어나나 싶었던 전 세계가 다시 수렁으로 빠지고 있는 가운데, 인도와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UAE에서 이와 같은 초강수를 내놓은 것이다.


원래 UAE 경제는 인도를 빼놓고 얘기할 수가 없다. UAE 전체 거주민의 약 30%가 인도인이다. 힘들고 더럽고 위험한 3D 업종을 묵묵히 저임금으로 수행하는 인도인들 덕분에 UAE 사회가 안정적으로 유지되는 현실적 측면이 있다. 이들이 없으면 UAE 경제 자체가 붕괴돼 버릴 것이다.


자국 경제에 심대한 타격을 줄 것으로 예상하면서도 강력한 규제 정책을 취할 수밖에 없는 것은 결국 국민 안전 때

문이다. 이른바 경제와 방역의 등가교환이다. 세계에서 백신 접종률이 가장 높은 나라인 UAE가 이렇게까지 한다는 것에 다른 나라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최근 우리나라를 보면서 걱정이 되는 부분이 여기에 있다. 최근 정부는 백신 접종을 완료한 사람들에게 ‘마스크 미착용’이란 인센티브를 제시한 바 있다. 그러다가 한국에서 델타 변이가 확산하기 시작하자 정책을 부랴부랴 유예하고 수도권에서 다시 마스크를 쓰게 하는 등 이랬다저랬다 하면서 혼란을 자초하고 있다.


경제와 방역 사이에서 힘든 줄다리기를 하는 정부 입장도 이해는 가지만, 가장 직접적이고 간편하면서도 효과적인 마스크 착용 정책을 굳이 인센티브로 제공했어야 했을까 싶다. 백신 접종률 최상위 국가인 UAE에서도 마스크 착용은 여전히 절대 의무다. 이를 따르지 않으면 50만원 가까이 되는 무거운 벌금을 내야 한다. 단체 모임도 마찬가지다. 필자도 화이자 백신을 2차까지 맞았지만 여기에 예외는 없다.


물론 절대적 수치로 비교하면 UAE보다 우리나라가 더 방역을 잘하는 건 맞다. UAE 국민의 80% 가까이 백신을 맞았는데도 불구하고 하루에 코로나19 확진자가 2000명대로 나오고 있다. 이는 한국 인구와 대비하면 우리나라에서 하루에 1만명 정도 나오는 상황과 같다. 하지만 UAE 전 국민의 90% 정도가 외국인 노동자라는 걸 고려하면 쉽게 판단할 문제는 아니다.


‘K방역’의 핵심은 정부 정책에 군말 없이 잘 따르고 협조했던 국민이 있었고, 이 한가운데 마스크가 있다. 굳이 필자가 지적하지 않아도 전문가들은 ‘마스크만큼 효과적인 코로나 바이러스 차단제가 없다’고 얘기한다.


최고 방역국가라고 자신하던 대만은 지금 뒤늦게 코로나로 혹독한 시련을 겪고 있으며, 일찍이 성공적 방역으로 주목받던 싱가포르는 사실상 방역 포기를 선언하고 코로나와의 동거에 들어갔다. 어차피 코로나 이전의 시대로는 못 돌아간다. 바뀐 현실을 인정하는 게 우리 모두의 정신건강에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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