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잔치’였다.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에 나서겠다”는 여당 대표, 공영방송 이사 추천 제도 정비 등을 “6월 통과를 목표로 추진”하겠다던 여당 최고위원, 그리고 미국의 배심원제도와 같은 국민추천위원회를 통한 공영방송 이사·사장 선출 방식에 “공감한다”는 국무총리까지. 당론으로 확정만 되지 않았을 뿐, 여당 내부의 공감대는 형성됐고 이를 구체화할 법안도 당 차원에서 검토됐다. 그러나 6월의 마지막 날이 되도록 관련 법안 처리율은 ‘0’. 이렇게 여당 대표의 약속마저도 공염불이 될 우려가 높아진 상황에서 하반기 공영방송 3사 이사회가 현행법과 제도하에서 구성될 가능성도 한층 커졌다.
애초에 “6월 통과”라는 목표부터 현실적이지 않았다. 공영방송 이사·사장 추천 시 국민 참여를 제도화하는 이른바 ‘이용마법’ 등이 여당에 의해, 그동안 관행처럼 이뤄지던 정치권 추천을 아예 명문화하는 법 등이 야당에 의해 발의돼 법안심사소위원회까지 상정되긴 했지만, 해당 소위는 6월 들어 한 차례도 열리지 않았다. 여당 대표와 당내 특별위원회가 밝힌 시간표와 소관 상임위인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의 시간표는 다르게 움직였다. 지난 24일 6월 마지막 과방위 전체회의에서도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 안건은 논외였다. 6월 임시국회 마지막 일정이 될 다음 달 1일 본회의에서 법안이 처리될 가능성도 없다. 윤호중 민주당 원내대표는 29일 원내대책회의에서 언론 관계법 등이 이번 회기 중에 처리되지 못해 아쉽다고 했다.
국회 논의 과정을 지켜보겠다던 방송통신위원회는 6월 국회 처리가 요원해지자 뒤늦게 공영방송 이사 공모 계획을 검토하고 있다. 8월 중 방송문화진흥회와 KBS, EBS 이사회 임기가 모두 끝나는데 국회 처리를 기다리느라 공모 계획을 논의할 시점부터 이미 늦은 셈이다. 방통위 관계자는 “국회에서 법을 개정한다면 이사회 임기가 당장 끝나는 게 아니니 거기에 맞춰야겠지만, 국회 처리가 요원한 상황에서 무한정 기다릴 수만은 없다”고 말했다.
그나마 기대를 걸어볼 시나리오는 두 가지다. 먼저 공영방송 3사 이사회 임기가 끝나기 전인 7~8월 중에 국회에서 지배구조 개선 법안을 통과시키고, 부칙으로 공포 즉시 발효되도록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민주당이 추진하는 국민추천위원회 방식 등이 도입되면 방통위는 이에 따라 이사회 구성 절차를 밟으면 된다. 그러나 여기에 국민의힘 의원들이 동의할 리 만무하고, 공영방송의 정치적 독립과 관련된 법안을 합의 처리가 아닌 여당 단독으로 처리하는 것에 대한 정치적 부담도 있다. 특히 7월 임시국회에서 추경안을 통과시켜야 하는 여당으로선 형식적으로나마 야당 눈치를 살필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현재 여당이 공영방송 문제의 시급성을 얼마만큼 인식하고 있는지, 처리 의지가 있기는 한 건지 의문을 제기하는 시각이 많다.
법안 처리가 요원하다면 여야 대표가 ‘정치권 불개입’을 선언하는 방법도 있다. 이미 민주당 미디어특위에선 “공영방송에 대한 정치적 후견주의 타파에 앞장서겠다”며 먼저 기득권을 내려놓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국민의힘은 묵묵부답이고, 민주당도 ‘우리는 안 하는데 국민의힘만 추천권을 행사하면 어쩌나’ 속내가 복잡하다. 국민의힘의 태도가 민주당의 핑곗거리로 작용할 수 있다는 의미다. 공영방송 이사 추천·임명권을 가진 방통위 역시 여야가 3대2로 나뉜 상황에서 여야 대표가 동시에 ‘불개입’을 천명하지 않는 한 공영방송 이사회는 현재와 같은 정파적 구도를 그대로 따를 가능성이 크다. 윤창현 전국언론노조 위원장이 “약속을 증빙하지 않으면 말장난으로 평가절하할 수밖에 없다”며 양당 대표에 불개입 선언을 요구한 이유다.
언론노조 KBS본부 관계자는 “각 정당에는 불개입 선언을 촉구하고, 방통위에는 정당에 휘둘리지 않을 장치를 자체적으로 만들 것을 요구하려고 한다”면서 “방통위가 이미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국민의 목소리를 반영하는 장치를 마련하겠다거나 정치적 후견주의를 끊을 방법 등을 내놨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법안 통과 이후 이사회 구성이 어렵다면 현행법 안에서 그런 정신을 구현할 방안을 마련하도록 압박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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