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과 EBS가 만나 '헌법 제31조'를 논하다

[인터뷰] 공동취재팀 꾸린 오정호 EBS 부장, 김서영 경향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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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1~23일 경향신문과 EBS가 공동 기획한 ‘대한민국 헌법 제31조’ 3부작이 신문 기사로, TV 다큐멘터리로, 같은 날 독자(시청자)를 만났다. 기사와 방송 말미엔 ‘공동취재팀’으로 경향신문 기자와 EBS PD, 작가들이 함께 이름을 올렸다. 교육격차 문제에서 시작해 최근 화두인 능력주의와 공정 문제를 집중 조명했다는 점도 끌렸지만, 교집합이라곤 거의 없을 것 같은 두 언론사가, 게다가 그 어렵다는 ‘기자와 PD의 협업’을 해냈다는데 궁금증이 더 컸다. 그래서 3부작 시리즈가 끝난 다음 날, 서둘러 만남을 청했다. 경향신문에선 1부 ‘15세, 수학을 말하다’편을 취재하고 3부 ‘헌법 제31조를 다시 말하다’편 좌담에도 참여한 김서영 기자가, EBS에선 이번 기획을 총괄하고 공동 작업을 제안한 오정호 방송제작기획부장이 참석했다.

 

김서영 경향신문 기자(왼쪽)와 오정호 EBS 방송제작기획부장이 지난 24일 한국기자협회 회의실에서 인터뷰를 마친 뒤 잠시 마스크를 벗고 사진 촬영에 응했다.


‘교육 불평등과 격차 문제를 3부작 다큐로 다루자.’ 지난 4월쯤, 오정호 부장이 편성에서 받은 창사특집 ‘오더’는 이랬다. 코로나19라는 터널을 지나며 교육 불평등이 더 심화하고 있다는 건 누구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뻔한 얘기를, 뻔한 방식으로 하고 싶진 않았다. 그는 욕심이 났다. “막연하게나마 사회적 아젠다를 설정하고 싶었어요. 많은 사람이 이슈를 깊이 알게 되고 최종적으로 자기 문제로 인식하는 과정이 사회적 아젠다 설정인데, 이걸 하기 위해선 저널리즘의 힘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죠.” 막연히 ‘저널리즘과의 결합’을 구상하던 중에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의원실 보좌관이 오작교 역할을 해주면서 경향신문에 제안이 닿았다. 1년 넘게 교육 담당을 해온 김서영 기자는 “교육 불평등이란 의제 자체는 다뤄볼 만하고, 방송이랑 하는 게 제가 알기론 처음인데 이전과는 다른 뭔가가 나오겠다 생각했다”고 말했다.


공동 기획이 성사된 뒤 가진 첫 만남에서 역할 분담을 논하며 오 부장은 ‘렌즈’를 비유로 들었다. “카메라로 어떤 피사체나 사회적 이슈를 조망할 때 방송은 본능적으로 가까운 거리에서 접사 렌즈를 들이대죠. 그에 비교해 저널리즘에선 접사와 광각 렌즈를 동시에 사용해요. 구체적 상황은 접사 렌즈로 보지만, 반드시 거기에서 광각으로 사회적 맥락을 뽑아내는 게 저널리즘의 본능이죠. 좋은 저널리즘, 좋은 프로그램은 렌즈를 어떻게 효과적으로 사용하는가에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우리(EBS)는 사람을 만나고, 경향은 사람을 만나되 광각 렌즈를 써줬으면 좋겠다고, 역할 분담을 요청했죠.”


다큐는 인터뷰한 학생들의 멘트를 충실히 전달하고, 분석적 틀은 경향신문 기사에 맡긴다는 게 합의된 구상이었다. 다큐에 내레이션을 넣지 않은 것도 그래서였다. EBS는 중학생 37명, 대학생 21명의 목소리를 풀 인터뷰(full interview) 다큐로 담아내고, 경향은 이들의 이야기에 각종 자료와 전문가 인터뷰 등을 추가해 ‘깊고 넓게’ 풀어냈다. 서로 일하는 방식도, 결과물의 모양새도 달랐지만, 그래서 더 만족스러운 작업이었다고 이들은 말했다. “신문과 방송이라는 서로 다른 플랫폼에서 전혀 다른 형태의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협업이었기 때문에 각자의 장점이 돋보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기사에 못 담는 비언어적 표현이나 생생함이 방송에 담기니까 기사의 의미도 더 사는 것 같고, 상호보완적 결과물이 나온 것 같습니다.”(김서영 기자) “방송이 아무리 설명한다 해도 방송은 신문보다 훨씬 성긴 매체이기 때문에 비어 있는 부분이 많고, 인지적으로 집중해서 볼 수도 없거든요. 그런 부분에서 방송에 나온 내용을 어딘가에서 자세히 풀어주고 있다는 생각에 안심이 됐죠. 같은 피사체와 취재일지를 공유했지만 EBS는 EBS대로, 경향은 경향대로 각자 다른 일을 했기 때문에 좋았다고 생각합니다.”(오정호 부장)


서로 일을 떠넘기거나 “애매한 회색지대”를 만들 일도 없었던 건 매체가 아예 달랐던 덕분일 거라고, 이제 와 생각한다. 오 부장은 “오히려 데면데면해서 좋았던 것 같다”며 “예의만 있다면 협업에 어려움은 없다”고 했다. 김 기자도 “회사 안에서 일할 땐 친소 관계가 작용하는데 이번 기획은 서로 친분이 없는 상태에서 회사 대 회사로 만난 거여서 개인적인 감정에 좌우될 여지가 적었다”고 했다. 오 부장은 이참에 “사회적 아젠다에 관한 공동제작을 지원하는 제도가 만들어지면 좋겠다”고 했다. 그는 “신문사가 방송사 급의 동영상 제작팀을 운영하는 게 미디어 경제적으로 항상 안전한 방식은 아닐 수 있다”며 “방송 같은 경우 해외 공동제작 지원을 많이 해주는데, 언론 관련 재단에서 솔루션 저널리즘이나 탐사 저널리즘 같은 고비용 프로젝트에 대해 방송과 신문의 협업을 지원해주는 부문을 만들어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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