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가락을 튕기자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 마치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일이 현재 다니고 있는 직장에서 벌어졌다. 회사는 적자를 만회해야 한다는 이유로 임직원 14명에게 해고 통보를 내렸다. 스포츠서울 대주주 김상혁 회장의 말 한마디에 추종 세력들은 범죄에 가담하는 줄도 모르고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심지어 해고 통보 예고자 명단엔 편집국장과 노조위원장이 포함됐고 기자 중에선 가장 나이가 어렸던 나도 끼어 있었다. 회장은 그토록 원하던 구조조정을 쉽게, 아주 쉽게 끝냈다.
36년 전통의 스포츠 전문지 스포츠서울은 2004년 코스닥 상장과 함께 투기 세력들로 인해 더럽혀질 대로 더럽혀졌다. 기업사냥꾼들에겐 배임과 횡령 그리고 주가조작으로 크게 ‘한탕’ 치고 팔아먹고 가기 좋은 ‘맛집’이었다. 지난해 스포츠서울을 인수한 김 회장도 염불엔 관심이 없고 잿밥에만 관심이 있었다. 회사를 망가뜨린 기존 기업사냥꾼들과 다름이 없었다. 김 회장을 처음 만난 건 그가 스포츠서울을 인수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다. 각 부서별로 가진 상견례 자리에서 그가 했던 말을 아직도 또렷하게 기억한다.
“회사가 적자를 벗어날 수 있는 방법 중 가장 쉬운 건 사람을 자르는 것이다. 난 그렇게 할 생각이 없다. 지금까지 스포츠서울을 운영해 왔던 대주주들과는 달리 난 기업사냥꾼이 아니다.” 상견례를 마칠 무렵 부원 모두에게 하고 싶은 말을 시켰다. 순진하게 그의 말을 철석같이 믿은 난 “어려운 시기에 회사를 인수해 주셔서 감사하다. 앞으로 잘 운영해 주시길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큰 실수였다. 김 회장이 호언장담한 지 1년도 채 지나지 않았다. 인수 당시 직원들의 5년 고용보장 약속을 어겼다. 그간 전체 인원의 35%에 달하는 직원들이 서슬 퍼런 칼날에 희생됐다. 그가 했던 말 중 지킨 것은 단 하나도 없었다.
해고 통보를 받은 지 한 달이 지난 6월17일, 난 공식적으로 해고자 신분이 됐다. 지난 18일부터 신문 제작과 관련된 모든 프로그램의 접속 권한을 상실했다. 회사로부터 노조 사무실 외에는 어느 곳도 출입할 수 없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 지난 24일엔 김 회장이 거주하는 삼성동 자택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언론노조와 신문노조협의회, 그리고 스포츠서울지부 등이 참석한 이 자리엔 나처럼 해고 대상자들도 나와 함께 피켓을 들고 시위를 했다.
불과 며칠 전만 해도 사무실에 앉아 일하고 있어야 할 시간인데 삼성동 으리으리한 아파트 정문 앞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는 내 모습이 무척 낯설었다. 당장 길바닥에 나앉게 생겼는데 회장은 삼성동 한복판에 자리한 근사한 아파트에 사는 모습을 보니 박탈감과 배신감이 들어 부아가 치밀었다. 한동안 투쟁이고 뭐고 지치고 힘들어 다 내려놓고 쉬고 싶은 마음도 들었는데 김 회장이 살고 있는 궁전을 보자 투쟁 동력이 살아났다. 쥐꼬리만 한 월급으로 겨우겨우 살아가고 있는 사람에게, 벌어놓은 돈도 없어 결혼은 꿈도 꾸기 힘든 사람에게 회사는 연말정산 기준 부양가족이 없다는 이유로 낮은 평가 점수를 줬다. 실거래가 몇십억에 달하는 아파트에 거주하시는 귀족 오너께서 미천한 직원의 사정을 알기나 하실까.
대책 없이 해고 카드를 꺼내든 이후 여기저기 후유증이 발생하고 있다. 홈페이지는 17일 이후로 업데이트되지 않은 상태로 일주일간 마비됐었고 기사 수는 현저히 줄었다. 편집 인력은 심각하게 부족하고 사진부는 아예 증발해버렸다. 당연히 매출은 떨어졌다. 지금도 여전히 스포츠서울 조합원들과 부당 해고를 당한 14명은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회장은 ‘말 안 듣는 놈들 내쫓으면 남은 직원들은 고분고분 해지겠지’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큰 오산이다. 오히려 우리 모두는 똘똘 뭉쳐서 김 회장의 부당 해고와 노조탄압 행위에 대해 준엄한 법의 심판이 내려질 때까지 맞서 싸울 것이다. 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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