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이맘때 옥스퍼드대 부설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가 ‘디지털 뉴스 리포트’를 발간한다. 2016년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참여하며 한국도 조사대상국에 포함됐고, 해당 자료는 이후 국내 언론 전반의 문제를 얘기할 때마다 줄곧 인용돼 왔다. 예컨대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에 따르면 한국은 올해(2020년)도 주요 40개국 언론 신뢰도에서 최하위를 기록해서 5년째 꼴찌를 차지했다”(지난달 31일, 김용민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 같은 발언이 대표적이다. 언론에 문제가 많다는 것을 안다. 제 역할을 못한 부분이 있고, 이에 언론불신이 팽배하다는 것도 잘 안다. 다만 이 정서를 공인된 사실로 인준하는 역할을 한 보고서가 우리 사회에서 사용되고 인식되는 방식, 특히 ‘언론 신뢰도’에 대해 상당한 오해가 있다는 점은 돌아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우선 한국 언론 신뢰도는 정말 세계 꼴찌인가. 매년 보고서가 나올 때마다 언론재단 보도자료에 기반한 ‘꼴찌 프레임’ 뉴스가 등장한다. 조사는 ‘뉴스 전반에 대해 신뢰하는지’를 응답자에게 물어 ‘동의함’과 ‘적극 동의함’을 선택한 비율을 따지는데, 이 내용이 주요하게 다뤄진다. 한국은 2017년~2020년 조사대상국 중 이 문항 긍정 응답률이 가장 낮은 국가였고, 2016년에도 26개국 중 25위를 기록했다. ‘꼴찌’가 된 이유다.
그런데 이는 신뢰도 관련 여러 데이터 중 하나만 본 결과다. 언론재단은 2016년과 2020년, 5점 척도 조사 중 부정·중립 평가를 모두 포함한 실질적 평균으로 국가별 언론 신뢰도 순위를 공개한 적이 있는데 이때 한국은 꼴찌가 아니었다.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은 비율이 높은 한국은 이렇게 산출 시 다른 해에도 순위가 올라갔을 것이다. 문항엔 ‘뉴스 전반에 대해 불신하는지’도 포함돼 왔는데 이 경우에도 한국이 꼴찌는 아니었다. 가장 대표적인 데이터로 기사를 썼지만 총체적으론 정확하지 않았다. 불신정서와 맞물려 가장 뉴스가 되는 데이터를 선택한 결과로 볼 수도 있다.
더 큰 문제는 국가별 언론 신뢰도 순위를 매기는 방식의 무용성이다. 북유럽국가 언론이 지속해서 신뢰도 상위권을 차지하는 이유론 안정된 정치환경이 거론된다. 어떤 나라에선 대다수 국민이 정치보다는 축구 등 스포츠에 관심이 높아 언론 신뢰도가 높게 나온다. 국민성과 사회 전반의 신뢰 수준, 정치환경 등을 고려치 않는다면 독재국가가 상위권을 차지한 결과를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무용한 순위 매기기가 언론의 수준을 드러내는 절대적인 지표인양 활용된다. 조사결과는 ‘한국 언론이 세계 최악’이란 근거가 아니라 ‘한국 국민은 한국 언론을 잘 신뢰하지 않는다’라고 해석되는 게 맞다.
비슷하게 보이지만 두 의미는 많이 다르다. 언론 문제는 언론만으론 해결할 수 없고, 유권자이자 뉴스 소비 주체인 국민과 맞물려야 한다는 점에서다. 최근 ‘디지털 뉴스 리포트 2021’에서 한국은 포털을 통해 디지털 뉴스를 소비하는 비율이 전 세계에서 가장 높은 반면 언론사 웹사이트 등을 통한 이용 비율은 가장 낮은 국가였다. 뉴스 관련 지불경험, 향후 지불의사는 하위권이었다. 이 산업적 위기의 본질은 국민과 언론의 관계 단절이다. 올해 한국은 조사 이래 처음으로 뉴스 전반 신뢰도(32%)가 30%를 넘었지만 이 신뢰가 언론사 영향력과 밥벌이로 환원되지 못하는 구조는 여전하다.
이는 언론만의 실패일까. 정치의 실패는 아닌가. 민주시민과 좋은 언론을 잇는 공론장의 존립은 민주주의에서 가장 중요한 정치의 문제일 텐데 정치권은 뭘 했나. 현재는 이를 방기한 결과는 아닐까. 그런 점에서 ‘한국 언론 신뢰도가 세계 꼴찌’라는 정치권이 이 책임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있는지 나는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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