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5월 A씨의 어머니 B씨는 암호화폐 관련 핀테크 기업인 QRC뱅크에 투자하면 일정 기간 안에 투자한 원금의 300%를 현금과 QRC 가상화폐로 지급해준다는 지인의 소개를 듣고 노후자금을 QRC뱅크에 투자했다. 투자 초창기 수익금이 입금되자 B씨는 재투자를 했고, A씨는 불법 다단계라는 걸 직감해 투자를 만류했지만, B씨는 파이낸셜뉴스가 지난 2월 보도한 <큐알씨뱅크(QRC BANK), 디지털 금융 서비스 정식 출시> 기사를 보여주며 믿을 만한 기업이라며 오히려 A씨를 안심시켰다. 그러나 수익금이 들어오지 않더니 곧 계좌가 막히면서 원금 회수조차 하지 못하는 상황이 됐다. A씨는 해당 기사를 보도한 파이낸셜뉴스에 항의 전화를 했지만, 사과를 듣지 못했다.
A씨는 “기사를 쓰기 전에 이 기업에 대해 한 번이라도 확인하고 기사를 썼는지 알고 싶었다. ‘보도자료를 받아서 썼다. 기사가 나간 2월 당시는 손해는 없지 않았냐’는 답이 돌아왔다”고 말했다. 그는 “젊은 사람이야 기사가 나와도 홍보라고 의심해보지만, 어르신들은 언론사에서 기사를 썼다고 하면 맹신하는 경향이 있다”며 “사실 투자한 우리가 바보인 게 맞고, 누구를 탓하고 싶진 않다. 그래도 기자들이 이 기업이 다단계로 투자자를 유치하는 건 아닌지 확인을 했었다면 지금 상황보다는 낫지 않았을까 싶다”고 토로했다.
최근 QRC뱅크를 소개한 기사를 보고 정상적인 회사인 줄 알고 투자에 나섰다가 사기를 당했다는 피해 사례가 나타나고 있다.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의 ‘최근 5년 가상자산 사기 적발건수 추이’ 자료에 따르면, 지난 1~4월 총 46건의 가상자산 사기 행위가 적발됐고, 그중 유사수신·다단계가 38건으로 가장 많았다. 최근 가상화폐 투자 열풍을 타고 가상화폐 관련 투자 사기가 기승을 부리고 있는 가운데 암호화폐 기업에 대한 검증 없는 보도에 주의가 요구된다.
피해자들, 언론사에 경위 물어보니... 보도자료 받아서 썼다는 답 돌아와
QRC뱅크는 고수익 배당을 미끼로 투자금을 모집하는 유사수신 의혹을 받고 있다. 현재 서울경찰청 금융범죄수사대는 QRC뱅크에 대해 유사수신 등의 혐의로 수사를 진행 중이다. 장보은 서울경찰청 금융범죄수사2계장은 “QRC뱅크에 대해 수사하고 있는 게 맞다”며 “수사가 진행 중인 사안이라 자세한 내용을 알려줄 수는 없지만, 단순 고소·고발 사건은 아니”라고 말했다. 현재 QRC뱅크 사기 피해자 그룹에는 90여명이 모여있고, 피해자들에 따르면 이들이 받지 못한 원금이 적게는 1000만원, 많게는 억대인 경우도 있다. 피해자 그룹은 QRC뱅크에 대해 단체 고소를 준비 중이다. QRC뱅크 웹사이트에 명시된 대표번호도 착신 금지돼있다.
QRC뱅크를 소개한 언론 보도, 언론사 브랜드는 해당 업체가 투자자를 유인하는 하나의 미끼로 활용됐다. 지난 11일 포털 네이버에서 ‘QRC뱅크’로 뉴스 검색한 결과, 국민일보 <큐알씨뱅크, 캄보디아 정부와 온라인은행 설립 위한 업무협약 체결>, 이투데이 <큐알씨뱅크(QRC BANK), 암 환자 대상 치료비 지원 나서>, 중앙일보 <큐알씨뱅크, 디지털 금융 서비스 정식으로 선보여>, 파이낸셜뉴스 <큐알씨뱅크(QRC BANK), 디지털 금융 서비스 정식 출시>, 헤럴드경제 <㈜큐알씨뱅크 인기 상종가…전자금융시장서 ‘주목’> 등이 있었다. 파이낸셜뉴스의 경우 기사에 기자 이름이 없었고, 중앙일보 기사에는 바이라인 대신 ‘온라인 중앙일보’가 명시돼 있다. 파이낸셜뉴스는 이날 기자협회보의 취재가 들어간 이후 해당 기사를 삭제했다.
광고·사업국서 만드는 기사형 홍보, 범죄 악용 못하게 검증할 장치 필요
투자 사기 피해자들은 언론 보도가 해당 업체의 운영을 보증해주는 역할을 하고 정상적인 업체로 착각하게 만들었다고 토로했다. 지난 4월 QRC뱅크에 투자했다가 사기 피해를 당한 C씨는 “기사를 보고 속았다고 생각한다”며 “아내가 먼저 이 기업에 투자했다는 사실을 알고 ‘그거 다단계야 위험해’라고 했는데 (QRC 화폐를) 캄보디아에서 결제수단으로 쓰기로 했다거나 LG 매장에서 사용된다는 내용의 기사를 보여주더라. 저 나름대로 검색을 했고, 실제 그런 기사들을 있는 것을 보고 ‘어 이거 진짠가’ 하고 큰 금액을 넣게 됐다”고 말했다.
언론사 사업·광고국에서 담당하는 유가 보도자료, 협찬·광고성 기사가 사기성 짙은 업체 홍보에 활용되면서 피해자를 만들었다는 비판은 피할 수 없게 됐다. ‘돈 받고 쓴 기사’가 아니더라도, 언론사의 무분별한 보도자료, 홍보성 기사들이 사기 의혹 업체에 이용될 수 있는 만큼 최소한의 검증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기자들은 QRC뱅크 관련 보도가 문제가 될지 예상하지 못하고 기사화했다는 입장이다. 국민일보 공공정책국 기자는 “국민일보가 블록체인 관련 사업을 진행해 그동안 암호화폐 업체 관련 보도자료 메일이 많이 와 있었다”며 “말도 안 되는 것도 많았는데 해당 업체의 기사는 큰 무리는 없는 것 같아 업체 측에 확인해 기사를 썼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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