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부터 한겨레신문에 칼럼을 써온 김우재 하얼빈공대 생명과학연구센터 교수가 한겨레 기고를 스스로 그만뒀다. 그가 보낸 칼럼을 한겨레가 싣지 않기로 결정한 직후다. 김 교수는 지난달 31일 자신의 SNS에 “어제 보낸 글을 게재할 수 없다는 편집국 차원의 결정을 내렸다고 한다”며 “칼럼 내용 및 방향에 대한 과도한 간섭에 질렸다. 2013년 시작한 한겨레와의 인연은 여기까지인 것 같다”고 썼다.
한겨레에 실리지 못한 김 교수의 칼럼 <이준석 너머>는 최근 국민의힘 당대표 경선에서 돌풍을 일으키며 하나의 현상으로도 불리는 이준석 후보와 그 반대로 힘을 쓰지 못하고 있는 진보진영의 청년정치를 비판하는 내용이다.
김 교수는 칼럼에서 대표적인 청년정치인인 정의당 류호정 의원과 장혜영 의원을 언급하며 “이들은 이준석을 비판할 아무런 정당성이 없다. 나이만 비슷할 뿐”이라고 했다. 또한 ‘나이로도, 실력으로도, 진보진영의 청년정치가 이준석 한 명을 넘어서지 못한다는 이 준엄한 사실을 지금이라도 인정해야 한다’, ‘이준석이라도 껴안으려는 정당과 국회의원직 유지를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는 정당, 그게 작금의 한국 정치’라는 문장도 담았다.
한겨레는 김 교수에게 해당 칼럼의 다섯 부분에 대해 수정과 보완, 추가 설명을 요청했다. ‘정치적 계산이 빠른 정치기술자가 되었다는 것 외에 이준석을 표현할 단어를 떠올리는 일은 힘들다’와 ‘그나마 사람들이 이준석 열풍에 동의하는 데에는 그가 지난 10년간 살아온 정치인으로서의 치열한 경험이 녹아 있다’는 두 문장은 논리상 충돌해 ‘그간 계산 빠른 정치기술자가 갑자기 치열한 경험으로 열풍을 일으킨 정치인이 되는 격’이기 때문에 추가적인 이유나 연결고리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또한 한겨레는 ‘정의당의 전략은 구걸이다. 아무 이유 없이 청년에게 더 많은 기회를 달라는 것이다’와 ‘구걸의 정치는 여성할당제와는 맥이 다르다’는 대목은 이해가 쉽지 않다며 현상에 대한 평가 등 추가적인 설명을 부탁했다. 그러나 김 교수는 내용에 대한 간섭이라며 거절했다.**
한겨레 오피니언면 실무진의 수정 요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국장단 회의에서 이 사안이 논의됐다. 최종적으로 게재가 어렵다는 결론이 났다. 임인택 한겨레 여론팀장은 “(김 교수에게) 논리가 없이 단정적으로 보이는 다섯 가지 대목들에 자세한 설명이 있으면 어떨지 여쭸다. 글을 보완하기 어렵다는 회신이 와 최종 결정(게재 거절)을 안내했다”며 “논거 부족과 그에 따른 우려점, 한겨레 칼럼으로 원문 게재될 경우 당사자들 입장, 독자의 권리, 관여될 수밖에 없는 한겨레의 책임 등을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야당 ‘이준석 돌풍’ 분석한 칼럼... 논거 부족 등 이유로 수정 요청
한겨레에서 발생한 이번 일은 언론사가 오피니언면을 어떻게 대하는지를 되짚어보게 한다. 구체적으로 언론사가 외부 필자에게 내용 수정을 요청하고 게재를 거절할 수 있는 ‘게이트키핑’ 권한의 여부와 범위, 그에 따른 책임성 등이다.
언론계에선 외부 칼럼에 게이트키핑이 작동해야 한다는 데 이견이 크지 않다. 실제 오피니언 담당자와 필자 사이의 수정 요청, 반영 과정은 일상적으로 이뤄진다. A종합일간지 오피니언부서장은 “신문사나 담당자 입장에서 부적절한 글이라고 판단하면 이런 부분을 고쳐달라고 요구할 수 있고 상호 접점을 찾아 싣곤 한다”며 “필자가 수정 요청을 받아주면 감사하지만 그렇지 않으면 해당 글을 무조건 실어야 하는 이유는 없다. 수정·게재 판단은 신문사와 담당자의 권한이고 결정에 책임지면 될 일”이라고 말했다.
다만 ‘언론사의 게이트키핑 기준과 범위가 안팎에서 공감을 얻을 수 있느냐’는 또 다른 차원의 논의거리다. 논란의 칼럼을 작성한 김우재 교수도 한겨레의 게이트키핑 권한은 인정하지만 유독 자신에게만 과한 기준이 작용했다는 입장이다. 김 교수는 기자협회보에 “한겨레가 게이트키핑을 철저히 하는 건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문제는 왜 다른 필자에게는 아니고 저에게만 그러냐는 것”이라며 “그동안 정치에 관한 내용을 쓸 때면 어김없이 간섭이 들어왔다. 이번 칼럼에서 정치인 비판에 자세한 근거를 들지 못한 건 사실이지만 한겨레가 원래 그런 칼럼을 내보내지 않은 것도 아닌데 제 글에만 높은 잣대를 댄 것 같다”고 말했다.
김 교수의 문제제기에 한겨레 측은 “해당 글의 주제나 전반의 논점은 (게재 거절 결정의) 논의대상은 물론 고려대상도 아니었다”고 했다. 임인택 팀장은 “보수당의 변화, 쇄신이 다른 정당들의 정체, 퇴보와 비교되며 해당 정당들을 비판하는 칼럼과 기사는 (한겨레에) 많았다”면서 “한겨레 독자들은 진보영역의 최고의 칼럼을 읽을 권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번 일처럼) 글의 완결성이 쟁점이었다는 건 그걸 위한 논의가 좀 더 진행됐단 얘기이기도 하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 “지나친 간섭” 난색에... 한겨레, 국장단 회의 거쳐 거절
철저한 게이트키핑은 기고글 품질 관리와 함께 게재 후 발생할 수 있는 부정적 여파를 방지한다. 결과적으로 이 과정을 거쳐 출고된 외부 필자의 글에 언론사의 책임이 있다고 볼 수 있다. B종합일간지에서 외부 필진을 담당하는 논설위원은 “요즘은 고정 필진 스펙트럼이 전보다 다양해졌고 칼럼이 언론사 논조나 입장과 다르더라도 분리해서 받아들이는 경향이 큰 것 같다”며 “경우에 따라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다’는 문구를 붙이는 곳도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칼럼에 대한 언론사의 책임이 면탈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책임의 범위는 각 언론사가 오피니언면을 어떻게 규정하는지, 기사·사설과 외부 칼럼의 온도 차이, 글의 품질과 논리적 완결성에 대한 판단, 시각의 다양성 등을 어느 선까지 수용하는지에 달렸다.
경향신문 편집국장을 지낸 이대근 우석대 교수는 외부 칼럼에 대해 △반사회적이거나 △공정성을 해치거나 △사실에 부합하지 않거나 △진실과 맞지 않는다 등 기본적인 기준을 제외하고, 외부 필진에 대한 언론사의 개입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그는 2011~2013년 경향 편집국장 재직 시절 칼럼 필진에 극우논객을 포함해 논쟁의 중심에 서기도 했다.
이 교수는 “‘본지 방향과 다르다’는 문구는 이것만 필자의 의견이고 나머지는 해당 언론사의 당파성이나 논조를 완벽히 반영한 글이라는 걸 보증해준다는 것과 다름없는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며 “단지 독자들의 성향이 이러하니까, 상업적 관점에서 독자들 구미에 맞는 의견을 실어서 독자의 충성을 유도하는 전략적인 측면에선 그럴 수 있지만 오피니언면이라는 건 지금 이 시점에 이런 쟁점에 대해서 어떤 의견을 가지고 있는지 다양한 필자를 통해서 논쟁할 수 있는 하나의 광장으로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춘식 한국외국어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한겨레 사례에서 볼 때, 완결성 부족을 이유로 칼럼을 싣지 않는 것보다 독자들에게 판단할 기회를 주는 방향이 오니피언면의 역할일 수 있다고 했다. 김 교수는 “현실적으로 모든 칼럼에서 논리가 충돌하지 않고 논거가 충분한 건 아니다. 한겨레에 실리는 칼럼도 마찬가지”라며 “해당 칼럼과 함께 언론사의 입장, 빈약한 논지를 지적하는 글을 배치해 독자들이 생각해볼 여지를 두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 ** 한겨레 측이 김우재 교수에게 수정‧보완을 요청한 내용 추가 삽입. (202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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