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1일 카카오엔터테인먼트가 미국 현지에 기반을 둔 웹툰(타파스미디어), 웹소설(래디쉬) 회사를 인수했다. 인수되는 회사의 기업가치가 6000억원, 5000억원 등으로 거액이다. 타파스미디어 래디쉬 두 회사 모두 오랜 기간 영어로 된 콘텐츠 제작자들을 다수 확보해 왔고, 사실 그 사용자들이 가장 큰 회사의 자산이었다. 한마디로 ‘콘텐츠가 왕’이라는 사실이 다시금 확인된 것이다. 카카오엔터가 타파스와 래디쉬를 인수하는데 가장 역점을 두었던 것은 이들 플랫폼에 작품을 올리는 작가(콘텐츠 제작자)들의 생태계였다.
지난달 21일 필자가 있는 실리콘밸리에서는 ‘스냅’이라는 소셜미디어 회사가 증강현실 제품발표회를 열었다. 그런데, 이 발표회는 일반적인 이벤트와 달리 다수 대중이 아니라 소수의 콘텐츠 제작자들을 위해 마련된 자리였다. 신제품 ‘스펙타클스’라는 증강현실 안경을 내놓으면서 일반인들에게는 판매도 하지 않겠다고 했다. 대신 콘텐츠 제작자들에게 선별적으로 무료제공한다고 밝혔다. 그만큼 콘텐츠 제작자의 지위가 사용자 확보보다 선행되는 변수인 것을 그들은 인식하고 있었던 것이다.
스냅뿐만 아니라 다수의 플랫폼 회사들도 개발자대회를 매우 중요한 이벤트로 생각한다. 구글이 지난달 19일 진행한 연례개발자대회 ‘구글I/O’ 같은 경우가 대표적이다. 이 자리에서 구글은 콘텐츠 제작자들이 솔깃할 만한 새로운 제품들을 다수 발표했다. 예를 들면 대화형 인공지능을 만들 수 있는 도구 ‘람다(LaMDA)’ 등이 그 사례다. 애플, 구글, 페이스북,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모두 자사가 만든 도구들을 새롭게 업그레이드하고, 이를 사용하는 개발자들을 중요한 대상으로 여기며 극진한 대접을 한다. 애플은 매년 앱스토어에 좋은 앱을 만든 개발자들에게 상을 주고, 구글은 10만명 이상의 구독자를 모은 창작자들에게 실버버튼을 수여한다.
한국에도 여러 차례 방문했던 유명 경영컨설턴트 람 차란은 필자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오늘날 기업들은 깨달아야 한다. 이제 경쟁은 기업과 기업 사이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경쟁은 기업이 만든 제품을 사용하는 생태계와 다른 제품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생태계 사이에서 일어나고 있다.”
한때는 언론사도 플랫폼이던 때가 있었다. 하루의 모든 소식들이 신문 지면과 방송 뉴스를 통해 갈무리됐고, 언론사 게시판에는 사람들의 의견이 마치 오늘날 소셜미디어처럼 쏟아졌다. 사람들은 세상과 소통하기 위해 언론사라는 플랫폼 위에서 승·하차를 했다. 그러나 새로운 미디어 기업이라 할 수 있는 구글과 애플, 페이스북 등이 등장하면서 플랫폼의 중심은 이동했다. 보다 뛰어난 인공지능 기술을 만들기 위해 더 많은 사람들의 데이터를 필요로 했던 IT 플랫폼 기업들은 언론사가 제공하는 뉴스 콘텐츠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았다. 대신 모든 사람들을 콘텐츠 창작자로 만들어 그들의 데이터를 흡수하기 시작했고, 그 결과 이들은 기술적으로 더 앞서나가게 됐다. ‘콘텐츠가 왕’인 시대에 양질의 콘텐츠를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거대한 미디어 산업의 영역에서 언론사들이 뒤처지게 된 원인 중 하나는 바로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이전에도 그랬지만 앞으로도 ‘콘텐츠가 왕’이 되는 시대는 이어질 것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현실적이고 흥미로우며 없어서는 안될 콘텐츠인 ‘뉴스’를 취재하여 가공하고 전달하는 언론산업은 왕이 되기 어려워 보인다. 뒤바뀐 경쟁의 룰을 깨닫지 못한 까닭일 것이다. 람 차란의 말에 따르면 오늘날 기업은 같은 산업 내에 있는 다른 기업과 맞부딪히며 경쟁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만든 플랫폼에 올라탄 사람들이 다른 플랫폼에 올라탄 사람들과 경쟁하는 시대. 그런 시대에 언론사들은 내 플랫폼을 사용해 무언가 새로운 것을 만들려는 이들을 늘리기 위해 어떤 투자를 하고 있을까.
신현규 매일경제신문 실리콘밸리특파원의 전체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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