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정준영 선배에게

故정준영 조선비즈 기자 추도사

정준영 기자가 4월28일 별세했다. 향년 41세. 고인은 아시아경제와 조선비즈에서 기자 생활을 했다. 고인이 기자 생활을 처음 시작한 아시아경제 후배 구채은 기자의 추도사를 싣는다.

선배가 떠나고 한 달여가 지났습니다. 톡을 보내면 다정하게 답을 주실 것 같은데, 뭐라고 보내도 답이 오지 않습니다. 어디로 가셨는지, 왜 이렇게 황망하게 가셨는지 묻고 싶고, 고마웠다고, 보고 싶다고 꼭 말하고 싶은데, 이제 할 수가 없게 됐습니다.


선배는 후배들에게 인기가 많았습니다. 저는 2012년 4월에 선배를 처음 뵈었습니다. 조곤조곤하고 다감한 목소리가 기억납니다. 서초동에서 선배가 ‘법조출입 기자 가이드’를 직접 만들어 설명해주셨던 때, 저는 식곤증 때문에 꾸벅꾸벅 졸았습니다. 선배가 “어, 쟤 존다”고 한마디 하셨는데, 선배가 하나도 안 무서웠던 저는 그대로 계속 졸았습니다.


잠실종합운동장을 가면 선배가 생각이 납니다. 회사 체육대회 때 선배랑 몰래 빠져나와 햄버거와 콜라를 사먹었거든요. 햇볕이 따가운 한낮부터 노을이 지는 저녁까지 뭐가 그리 할 말이 많았던지, 선배를 붙잡고 끝도 없이 넋두리했고 헤어지는 순간에는 아쉬웠습니다. 잠깐 자리를 비우면 선배 옆엔 항상 사람들이 몰려들었습니다.


선배는 누군가 한 손을 내밀면 두 손을 내밀고, 누가 아파하면 바로 달려와 껴안아 주는 사람이었습니다. 기자 생활이 힘들고, 고민이 생길 때 모두가 선배를 찾았습니다. 주말마다 경조사 현장에서 뵐 수 있어서, 그때 약속을 잡는 후배들이 많았습니다. 비싼 밥과 술, 선배한테 참 많이도 얻어먹었습니다. 선배는 훌륭한 기자였습니다. 모든 후배들이 법조 취재 노하우에 대해서, 사법 이슈에 대해서 선배에게 물어봤습니다. 그때마다 선배는 꼼꼼하고 친절하게 답해주셨습니다. 취재원에게 어떻게 질문을 하고 신뢰를 쌓아가는지, 선배를 보고 배웠습니다. 타사 동료들도 그런 선배를 많이 좋아하고 따랐다고 합니다. 그래서 선배가 이직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서운하고 야속했습니다.


작년부터 선배는 투병 소식을 SNS를 통해 전했습니다. 섬망을 앓고, 모르핀 주사를 맞고, 시력을 일부 잃을 때까지도 댓글에 일일이 답글을 남기며 사람들과 대화했습니다. 면역력이 약해 가족과도 면회가 안되는 외롭고 힘든 시기였을 것 같습니다. 손 신경이 둔해져 휴대폰을 만지기 어렵다고 하면서도 연락에 답을 주셨습니다. 저에겐 ‘감정에 지나친 자극은 해로우니 피해다오ㅎㅎ 눈물많은 40대다. 늘 건강과 평화가 함께하고 좋은 나날 되라’는 톡이 남아있습니다.


이 글을 어떻게 끝맺으면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선배가 옆에 계신다면 ‘야, 그렇게 쓰지마렴. 오글거리거든’ 하고 한마디 하실 텐데 말입니다. 다만 이 말만 꼭 전하고 싶습니다. 왠지 이 글이 출고되면, 정 많은 선배가 꿈에서라도 답장을 주실 것 같거든요.


“선배, 이제 안 아프시죠? 다행입니다. 선배, 후배들한테 왜 그렇게 잘해주셨어요? 저희가 귀여우셨나요. 선배처럼 막 다 퍼주는 사람이 없어서, 선배 뒤만 졸졸 따라다녔습니다. 이제 저희가 늙어가도 선배는 계속 마흔 살이겠네요. 영원히 젊고 아름답고 빛나는 모습일 겁니다. 제가 ‘정준영계’ 후배들이 한 트럭 있다고 했잖아요. 선배, 나중에 우리 다 모이면 그땐 저희가 밥과 술 살게요. 보고 싶고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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