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모텔서 아이 키우고 있을 가족 위한 서사

[인터뷰] '모텔살이 영아학대사건 숨겨진 이야기' 보도한 나경희 시사IN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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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경희 시사IN 기자는 인천의 한 모텔 창고에 있던 빨간 패딩을 잊지 못한다. 모텔에서 아빠가 두 아이를 돌보다 생후 2개월 아기를 탁자에 떨어뜨려 의식불명에 이르게 해 아동학대 혐의로 체포됐고, 알고 보니 아기 엄마는 사기 혐의로 지명수배를 받아 경찰에 체포돼 구속됐다는 사건. 그 사건을 취재하던 나 기자에게 한 모텔 주인이 보여준 빨간 패딩은 어느 추운 날 모텔 방 화장실에서 아기를 낳고 병원에 실려 간 아기 엄마가 놓고 간 것이었다.


“둘째 아기가 태어났을 당시에 모텔 사장님이 놀라서 올라가 보니 엄마가 피범벅에 얇은 모텔 가운만 입고 있었다면서 그 패딩을 보여주더라고요. 너무 얇은 걸 입고 갔다고 안타까워하면서요. 한겨울에 모텔 가운만 입고 병원에 실려가는 그 심정이 어땠을까 생각하니 마음이 아프더라고요. 아기가 태어났을 때부터 비극이 예견된 게 아니었을까 싶었어요.”

 

<’모텔살이’ 영아 학대사건의 숨겨진 이야기>를 보도한 나경희 시사IN 기자를 지난 14일 서울 중림동 한 카페에서 만났다. 나 기자는 “기사를 통해 ‘모텔 가족’이 죄를 저지르게 된 이유를 들여다보고, 우리 사회에 이런 가족이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지난 4월 ‘모텔 아기 가족’ 사건이 알려질 당시 무수한 사건 기사들이 쏟아졌다. 대부분 ‘엄마는 사기죄로 체포’, ‘아빠는 아동학대범’이라는 단편적인 내용이었다. 나 기자는 수많은 단건 기사 중 ‘아기 엄마가 지적 장애인인 것으로 알려졌다’는 대목이 눈에 걸렸다. 지적 장애인인데 무슨 일로 체포까지 됐는지, 아빠는 혼자 남겨졌을 텐데 어쩌다 이런 상황이 초래됐는지 사정이 궁금했다.


그렇게 나 기자는 아기 가족이 묵은 모텔 세 곳을 돌아다니며 모텔 주인들을 통해 이들 가족이 모텔을 전전하게 된 전후 사연을 들었다. 지적 장애를 갖고 있는 아기 엄마는 지인으로부터 빌린 생활비를 갚지 못해 고소당한 이후 세 차례 열린 재판에 한 번도 출석하지 않아 지명수배자가 됐고, 극한까지 몰린 어린 부부는 지난해 6월부터 모텔을 전전하다 아기를 낳았지만 비좁은 모텔방에서 그래도 어떻게든 애들을 키우려고 노력했다는 얘기들이었다.


사건이 일어난 지 한달 정도가 지나고, 관심도 사그라질 즈음 나 기자가 보도한 <‘모텔살이’ 영아 아동학대 사건의 숨겨진 이야기> 기사는 이 사건을 단지 또 하나의 아동학대 사건으로만 치부할 수 없다는 것을, 사회 복지 시스템에 여전히 빈 구멍이 있다는 사실을 조명했다. “기사를 잘 썼다고 보기보다 이 사건의 조각을 처음부터 끝까지 연결했다는 점에서 의미 있었다고 생각해요. 취재가 쉽지 않을 거라는 생각에 마음 준비를 단단히 하고 갔는데 모텔 주인들이 선뜻 나서서 되게 놀랐어요. 일이 비극적으로 됐지만, 그럼에도 이 가족을 돕기 위해서라면 자신은 뭐든지 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증언해주시더라고요.”


나 기자는 기사가 이들 가족만을 위한 서사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도 모텔에서 아이를 키우고 있을 가족들의 서사라는 점을 알리고 싶었다. 그래서 기사를 쓸 때도 최대한 감정적인 단어를 배제하고, 이들 부부의 사연을 담담히 풀어냈다.

 

시사IN <‘모텔살이’ 영아 아동학대 사건의 숨겨진 이야기> 기사 일부.

가족 비극의 맥락을 밝혀낸 기사는 많은 독자의 공감을 받았다. 기사가 보도된 직후 시사IN 편집국엔 가족의 근황과 도울 방법을 묻는 전화가 끊이지 않았다. 한 독자는 울먹이며 아기 엄마의 빚을 조금이라고 갚아주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고, 우편을 통해 10만원의 후원금을 보내온 독자도 있었다. 몰려오는 독자 문의에 시사IN 페이스북을 통해 후원 방법을 안내한 긴급공지를 띄울 정도였다.


뜨거운 반응에 아직도 나 기자는 얼떨떨하다. “우리 사회가 왜 이 가족을 놓쳤을까 미안함이 가장 컸을 것 같아요. ‘정인이 사건’ 같은 떠들썩한 아동학대 사건들은 명확한 타깃이 있어요. 악마 같은 부모, 무능한 경찰. 하지만 이 사건은 가족, 복지센터 공무원, 모텔 주인들이 다들 각자의 자리에서 최대한 노력했지만, 결국 아기는 병원에 누워있게 된 거죠. 이 사건엔 악마 같은 사람이 없으니까 우리가 진정하고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생각해 볼 수 있게 한 기사였다는 한 변호사분의 피드백이 기억에 남아요.”


사회팀 소속인 나 기자는 사건이 지나간 자리 사람의 이야기에 주목하고 있다. 이번 기사를 통해 나 기자는 대중들이 쉽게 흥분하거나 휩쓸리지 않는 존재라는 걸 알게 됐다. 정작 언론이 여러 사건사고 기사에서 파편화된 정보를 나르며 독자가 욕하고 끝나고 마는 기사를 쓰는 건 아닌지 생각이 드는 요즘이다. “학교폭력 이슈가 한창 시끌시끌했잖아요. 뜨거운 건 지나갔으니 우리가 차분히 볼 수 있는 건 뭘지 알아보고 있어요. 고 변희수 전 하사 재판을 유가족이 넘겨받아 첫 공판이 열렸는데 그것도 지켜보고 있어요. 이미 늦었어도 뭔가를 바꿀 수 있다면 남은 사람은 그 몫을 해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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