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언론을 신뢰한 적이 있기는 했을까?”
지난 14일 한국언론학회 정기학술대회에서 한국언론학회 산하 저널리즘 신뢰위원회와 한국기자협회 공동 주최로 열린 ‘저널리즘을 다시 생각한다’ 세미나는 위와 같은 도발적인 질문으로 시작됐다. 앞서 위 질문을 던졌던 미국의 언론사학자 마이클 셔드슨은 여기에 ‘아니다’라고 스스로 답했는데, 이날 발제를 맡은 박진우 건국대 신문방송학과 교수가 다시 이 말을 꺼내든 건 ‘언론 신뢰도’라는 개념 및 현상에 대한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는 판단에서다.
박 교수가 지적한 대로 “뉴스 신뢰도 하락은 국내만의 현상이 아닌, 글로벌 차원의 현상”이다. 특히 디지털이란 조류가 저널리즘 전반에 미친 영향은 생각보다 훨씬 큰데, 박 교수는 “오랫동안 전제됐던 언론사와 대중, 수용자의 관계가 심각하게 균열되거나 파괴됐고, 어떤 형태로든 시작된 상호불신이 디지털 국면에서 점점 심화된다고 가정할 때, 제대로 된 언론사가 올바른 메시지를 제대로 보도하면 단번에 해결될 수 있다는 접근은 해법이 될 수 없다”고 말했다.
특히 ‘한국 언론 신뢰도 세계 꼴찌’라는 조사결과가 유행어처럼 전파될 정도로 한국 언론과 언론인에 대한 낮은 신뢰도는 문제적 현상으로 꼽힌다. 박 교수는 “2000년대 이후 한국 언론의 위기 담론은 ‘경영상의 위기’(환경변화, 디지털화)와 ‘독자 신뢰도 위기’(낮은 품질, 정파성)에 걸친 것이었다”면서 “사실상 한국 언론의 모든 것이 위기였다는 뜻”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전자(경영)만큼 후자(신뢰)에 관한 연구는 충분치 않았고, 신뢰도 평가나 조사의 일관된 기준이 없어 원인 진단부터 해석까지 동상이몽인 경우도 많았다. 한국언론학회 산하에 저널리즘 신뢰위원회가 꾸려진 이유가 여기에 있다.
민영 고려대 교수는 “신뢰가 이렇게 중요한 화두가 된 것은 언론이 관계 맺어야 하는 대상이 이용자라는 것을 확인시켜 주는 것”이라며 “언론이 그동안 상상해온 독자는 이용자, 시민이 아니었고 정치 엘리트, 권력 집단이었을 수 있다. 상상된 독자, 관계의 대상을 재정의할 의지와 성찰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민 교수는 “언론에 대한 불신과 이용자에 대한 불신이 상호 병행되는, 이중의 불신 과정에 있다”고 현재를 진단한 뒤 “불신하는 이용자를 불신해봤자 해법이 안 나오고 정파적 성향의 불신도 보편적인 만큼 문제가 안 된다”며 언론의 가치나 유용성을 거부하는 생각들이 부정적 인식의 기저에 있다는 게 더 큰 위험신호라고 지적했다.
보지 않는데 신뢰할 수 있나
김위근 한국언론진흥재단 책임연구위원은 신뢰도를 ‘임계점’과 관련 있다고 했다. 김 위원은 “내가 A라는 언론사를 신뢰한다는 건 그들이 조금 오보하거나 동의하지 않는 보도를 하더라도 신뢰하는 것”이라고 설명하며 “임계점을 넘어서는 순간 불신으로 넘어가고 신뢰로 끌어들이기 힘들어진다”고 말했다. 지금 우리 사회의 낮은 신뢰도는 “임계점을 넘어선 영역이나 그런 언론사, 언론인이 많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김 위원은 특히 “신뢰도는 이용량과 절대적인 상관관계가 있다. 이용하기 때문에 신뢰하고 신뢰하기 때문에 이용하는 것”이라며 “언론 관련 선택지가 너무 많아지면서 특정 언론의 신뢰가 점점 낮아지고 있다”고 밝혔다.
박재영 고려대 교수는 결국 “제품(뉴스)을 잘 만드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 미국과 우리나라 뉴스 생태계 환경이 크게 다르지 않은데 뉴욕타임스는 어떻게 성공적인 모델을 만들어냈는가, 이유는 ‘품질’에 있다는 것이다. 그는 또 “언론사가 시민을 이해시켜야 한다”면서 “뉴스를 왜 이렇게 만드는지, 게이트키핑의 이유가 무엇인지, 투명하게 공개하고 설명함으로써 (뉴스의) 품질과 이해 수준이 높아지면 신뢰 수준도 어느 정도 회복되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한편 이날 기자협회 측 패널로 참석한 기자들은 언론에 대한 불신을 돌파할 묘안을 찾기 힘든 현실적인 한계 등을 토로하며 제도적 환경 개선 등이 병행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찬정 기자협회 언론개혁실천추진단장(MBC)은 “뉴스 매체가 늘어나고 독자와 시청자층이 세분화하면서 소위 중립적 보도는 굉장히 불리하고 정파적 선명성이 강할수록 확실한 독자층을 확보하는 장점이 있다”며 “디지털화가 진행되는 상황에서 언론이 선택하는 정파성은 생존을 위해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방송사 지배구조 등의 한계 때문에 게이트키핑 의도, 통제에 대한 불신이 큰 것도 무시할 수 없다며 “디지털 시대의 큰 파고에 맞서서 기성 언론들이 자기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제도적 환경도 개선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천종 보도자유분과위원장(세계일보)은 “‘이달의 기자상’ 같은 상을 받는 수작일수록 페이지뷰(PV)나 댓글 반응은 별로 없어서 현장 기자들이 허탈함을 많이 느낀다”며 “이런 탐사, 심층 보도나 수상작들이 신뢰 확보에 기여하는지, 해당 매체의 신뢰를 어떻게 끌어올리는지에 대한 연구도 필요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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