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이 ‘언론개혁’이란 이름으로 추진하고 있는 언론 규제 법안들에 대해 언론법학자들이 우려의 목소리를 나타냈다. 지난 7일 ‘언론법학자, 저널리즘의 길을 묻다’란 주제로 열린 한국언론법학회 정기학술대회에서 다수의 참석자는 언론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도가 ‘옥상옥’ 규제가 될 수 있다며 입법의 목적과 구조에 관한 치밀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현재 민주당이 주도하는 자칭 ‘언론개혁’ 법안은 언론중재위원회 기능을 확대·강화하고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도입하는 등 ‘잘못된 언론’을 규제하는 데 방점이 찍혀 있다. 벌을 준다는 의미의 ‘징벌’이란 단어부터가 그렇다. 지성우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징벌이라고 언급되는 순간 언론이 뭔가 잘못했다는 걸 전제하고 시작하는 것으로 오해될 수 있다. 용어부터 배액 배상제도나 책임 강화 이런 식으로 먼저 정리할 필요가 있다”고 한 이유다.
징벌적 손배제를 도입할 경우 ‘악의’를 어떻게 입증하고, 입증의 책임을 누구에게 지울 것인지 등 논의할 쟁점이 많은데 지금의 입법 과정은 속도전과 여론전 흐름을 타고 있다. 징벌적 손배제에 찬성하는 쪽에서 흔히 예로 드는 미국의 경우 공인이나 공적 인물이 징벌적 손배뿐 아니라 전보적 손배를 구할 때도 현실적 악의(actual malice)를 원고가 입증하는 부담을 진다. 미국에서 언론법을 전공한 김민정 한국외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이 ‘actual malice’는 ‘진실에 대한 피고의 태도’로 번역되는데, 허위로 볼 많은 증거가 있음에도 무시하고 (기사를) 썼느냐가 핵심 질문이다. 그런데 한국에선 ‘진실’에 대한 피고의 태도가 아니라 ‘원고’에 대한 태도란 의미로 가져와서 언론이 (원고에) 극심한 피해를 줄 목적으로 보도했다면 당연히 가중 처벌해야 한다는 식으로 여론이 형성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다시 말해 현재 논의되는 징벌적 손배는 허위임을 충분히 인식하고 취재를 제대로 안 한 것을 넘어서 원고(상대)에 ‘앙심’을 품고 허위사실을 유포했는지를 따지는 것인데, 이는 미국식 징벌적 손배와 다를 뿐 아니라 앙심을 어떻게 판단할 것인가 하는 근본적 의문과도 연결되는 것이다.
자칭 ‘언론개혁’ 법안들, 언론 문제 놔두고 ‘규제 더하기’ 효과만
언론에 문제가 있으니 법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식의 논리는 그래서 재고돼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다. 이미 우리는 형법, 민법, 언론중재법 등 언론을 규제하는 다양한 제도를 두고 있다. 그런데도 왜 언론은 문제인가, 하는 물음에 집중해 저널리즘적 대안을 찾기보다 규제를 강화하는 쪽으로 가는 건 “위험한 사고”라고 지성우 교수는 지적했다. 언론중재위원회의 권한을 지금보다 강화하는 데 반대한 것도 그래서다. 그는 “언중위가 중재 기능을 넘어 국가 권력기구화되는 것은 존립 근거를 희석할 위험이 있다”며 “언중위에도 독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민정 교수도 언중위를 언론위원회로 개편하고 시정명령권을 부여하는 언론중재법 개정안 등에 대해 우려를 표하며 구체적인 적용에 있어 제한을 둬야 한다고도 밝혔다. 예를 들어 반론보도청구권만 해도 국회의원이 취재 당시에는 응하지 않다가 보도가 나간 뒤 반론보도를 청구하고, 반론보도가 나간 뒤엔 마치 잘못된 보도였던 것처럼 선전하는 사례가 있다며 “공인의 오남용 방지 장치를 넣는 식으로 언중위 제도가 개선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심석태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 교수도 기존의 언론중재 제도가 사건을 ‘봉합’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언론 관행 개선에 아무 도움이 안 된다며 “(당사자가 만족하는 해결보다) 원칙에 맞게 판단을 내리고 그 결과를 공표해 비슷한 상황에서 선례로 작동되도록 해주는 게 필요하다”고 밝혔다.
현행 제도하에서 언론 피해구제를 현실화할 수 있는 대안들도 제시됐다. 문재완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반론·정정보도에 인센티브를 줘서 잘못을 시인하면 손배액을 깎아 주는 방법”을 제안하며 “소위 가짜뉴스나 이미 나타난 정보가 지워지지 않고 왜곡된 채 흘러가서 문제가 되는 만큼 정정보도를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최우정 계명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방송심의 자율규제 원칙을 전제로 “오보나 악의적 허위보도를 한 경우 그 보도가 나가는 내내 정정보도 내용을 줄광고로 넣어야 (피해가) 원상회복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황성기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잘못된 언론을 처벌하는 것보다 좋은 언론이 더 잘 되게 하는 방식으로 논의를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황 교수는 “하자 있는 상품의 유통을 금지하는 네거티브 방식에 반대한다”면서 “품질 좋은 언론 상품이 가능한 많이 양산될 수 있도록 하는 포지티브 방식의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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