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대재앙 누가 책임져야 하나

[글로벌 리포트 | 남미] 김재순 연합뉴스 상파울루특파원

김재순 연합뉴스 상파울루특파원

“신(神)은 브라질 사람이다”. 브라질에 살면서 흔히 듣는 표현 가운데 하나이며, 일반인들도 큰 고민 없이 사용하는 말이다. 광활한 영토와 넘치는 자원, 풍부한 농축산물로 아쉬울 것 없으면서 화산이나 지진 등 자연재해는 거의 없는 ‘신이 내린 땅’에 대한 자부심에서 나온 것으로 생각된다. 2000년대 중반부터 대서양 연안에서 심해유전이 잇따라 발견되며 세계적인 산유국 대열에 들어설 수 있다는 꿈이 커지자 룰라 전 대통령도 같은 말을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당시 언론도 같이 춤을 췄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2007년 1월 ‘신은 브라질 사람’(God is Brazilian) 제목의 기사에서 브라질은 세계 최대의 삼림을 보유하고 토양은 더할 나위 없이 비옥하며 지하자원이 풍부하게 매장돼 있다고 보도했다. 그렇지 않아도 가진 게 많은데 신이 브라질 사람이라는 말을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 막대한 양의 석유와 천연가스가 매장돼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심해유전까지 발견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신의 국적까지 들먹이는 브라질의 자부심은 감염병 앞에서 속절없이 무너지고 있다. 브라질은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하계올림픽을 전후해 지카 바이러스 때문에 몸살을 앓았다. 모기를 매개로 한 지카 바이러스가 태아의 소두증을 유발하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여성들은 임신과 출산을 미뤘다. 이번엔 코로나19에 걸려 사망하는 임신부와 산모가 급증한다는 연구 결과가 나오면서 브라질 정부는 기혼 여성들에게 임신 계획을 미루라고 권고했다.


자이르 보우소나루 대통령은 코로나19가 본격화하기 시작하던 초기에 치료제가 이미 존재한다며 “신의 국적은 브라질인 것 같다”고 했다. 침체에 빠진 경제활동을 되살리기 위해 봉쇄에 반대하면서 자신의 주요 지지 기반인 복음주의 개신교계의 대면 예배 주장을 의식해 나온 의도된 말이었을 뿐 이를 믿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이후 코로나19 확진자와 사망자가 급격하게 늘어나면서 ‘신은 브라질 사람’ 따위의 말은 거의 자취를 감췄다.


코로나19 사태가 길어지면서 브라질 사회와 국민은 대재앙을 초래한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를 묻고 있다. 코로나19 대재앙을 인재(人災)로 인식하기 시작한 것이다. 브라질 상원은 지난달 말부터 정부의 코로나19 부실 대응을 따지기 위한 국정조사에 착수했다. 11명의 위원(여권 4명, 중도·야권 7명)으로 이루어진 국정조사위원회 활동은 90일간 계속되고 필요하면 연장될 수 있다.


보우소나루 대통령은 “코로나19 사태와 관련해 잘못한 것이 없으니 걱정하지 않는다”며 특유의 독단적인 행태를 계속했으나 상황은 간단치 않아 보인다. 보우소나루는 자신과 다른 방역대책을 주장한 의사 출신을 내치고 현역 군 장성을 보건장관에 앉혔으며, 전문가와 국제기구의 부작용 경고를 무시하고 말라리아약과 구충제를 코로나 환자 치료에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백신 외교에 실패하면서 접종이 늦어져 피해를 키운 점도 중대한 실책으로 지적된다.
한 위원은 “국정조사는 특정인을 정치적으로 압박하기 위한 게 아니라 대규모 인명 피해를 초래한 책임자들을 밝히고 처벌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국정조사위는 코로나19의 심각성을 부인하거나 방역에 역행한 대통령의 발언 200여건을 추려 조사 대상에 올렸다고 한다. 국정조사에서는 전·현직 보건장관을 비롯한 정부 고위 인사들과 주지사들이 줄줄이 증인으로 불려 나오고 전화 통화 내용과 금융거래 명세 등이 공개된다. 코로나19 부실 대응 혐의가 구체적으로 드러나면 사법 당국의 수사로 이어질 수도 있다.


국정조사는 필연적으로 정치적 갈등을 유발하고 내년 대선 판도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노동절인 5월1일 주요 도시에서 보우소나루 지지 시위와 반대 시위가 벌어졌다. 보우소나루 대통령은 헬기에 탄 채 시위 현장을 둘러보고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지지자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했다. 좌파와 중도 성향의 전직 대통령들은 보우소나루가 시위를 부추기고 증오를 확산한다고 성토했다. 코로나19와의 전쟁이 언제 끝날지 모르는 상황에서 대선 전쟁은 이미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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