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 you wanna work in China?”(중국에서 일하고 싶나요?) 2015년 겨울, 코리아헤럴드 3년차 기자 석지현씨는 이런 제안을 받았다. 중국에 있는 헤드헌터가 링크드인(글로벌 비즈니스 SNS)으로 보내온 메시지였다.
스팸이라고 생각한 지현씨는 장난처럼 답장했다. “네. 중국에서 일하고 싶어요.” 짐작과 달리 제안은 진짜였다. 그는 여러 차례 면접을 거쳐 이듬해 세계 1위 드론 업체인 ‘DJI’에 입사했다. 지금은 홍콩에 거주하며 ‘알리바바’의 글로벌 PR 콘텐츠 에디터로 일하고 있다.
지난날을 돌아보면 지현씨에게 언론사 퇴사는 도전이었고 어떤 탈출구이기도 했다. 꿈에 그리던 기자가 됐지만 3년 만에 사표를 낼 때 “모든 걸 다 버리고 번지점프하는 기분”이었다.
“네이버 뉴스스탠드 입점에 맞춰 온라인팀 발령을 받았어요. 트래픽을 유도하는 한글기사를 썼는데 제가 뭘 썼는지 기억이 안날정도였죠. 목표가 생기면 실행에 옮기고 성과를 내야 하는 성격이라 처음엔 올라가는 숫자에 희열을 느꼈어요. 그런데 자극적인 소재를 찾아다니다보니 점점 성격이 어두워지고 회의감이 들더라고요. 그때 마침 이직 제안이 온 거예요.”
PR업무 경험은 없어도 뭐든 해낼 수 있다는 ‘깡’은 있었다. 3년 남짓한 기자생활이 새로운 분야에서 가치 있는 일로 여겨지는 것도 고마운 일이었다. 당시 DJI가 한국지사를 막 설립한 상황이어서 지현씨와 동료들은 하나부터 열까지 새로 만들어갔다.
“중국 기업이라는 정체성과 당시만 해도 생소했던 드론을 라이프스타일에 녹여내야 했기 때문에 스토리텔링 고민을 많이 했어요. 아티스트들과의 협업이나 페스티벌, 스포츠 등과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기존 PR업무에서 영역을 넓혀간 시기였어요.”
지현씨는 중국의 실리콘밸리로 불리는 심천 본사로 자리를 옮겨 더 큰 무대를 경험했다. 담당 지역도 아시아 태평양에서 전 세계로 넓어졌다. 글로벌 전략 수립 과정에 참여하면서 굵직한 경력을 쌓아갔다. 그러다 지난해 알리바바에 스카웃됐다. 자체 사이트 구성과 콘텐츠 전략을 짜고 비디오·오디오 팟캐스트, 블로그 포스트 등을 통해 알리바바를 알리는 일이 그의 주요 업무다.
“DJI는 드론과 짐벌 카메라가 메인 제품이자 서비스여서 마켓을 이해하고 콘텐츠화하는 데 비교적 수월했던 것 같아요. 알리바바는 자회사를 다 기억하기 힘들 정도로 다양한 산업에 걸쳐있거든요. 각 산업에서 빠르게 변화하는 트렌드를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벅찬 경우가 종종 있어요.”
해외에 살며 성장하는 산업에 몸담고 있다 보니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도 달라졌다. 한국 언론사에 있을 땐 수직적인 선후배 관계, 기자와 기업 PR담당자의 관계 속에서 스스로를 가두려 했다. 지금은 전혀 그렇지 않다. 여기선 연차, 성별, 나이, 직군 상관없이 능력 있는 사람에겐 더 많은 기회와 보상이 주어진다. 책임감을 가지되 자유롭게 일할 수 있는 환경에서 그는 능력을 맘껏 발휘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요즘 지현씨는 ‘그때 번지점프하길 잘했다’고 생각한다. 번지대에 섰을 땐 두려웠지만 막상 뛰어보니 “하늘을 날고 있는 기분”이라고 했다. 기자를 그만두는 걸 걱정했던 가족과 기자 동료들에게 이젠 자신 있게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다.
“한 선배가 ‘나가면 시베리아지만 3년만 버티면 걱정 없을 거라’고 해서 정말 3년만 해보자는 생각이었어요. 그 시간을 지나 벌써 PR업무 6년차네요. 다양한 일을 경험하면서 또 다른 환경에 놓이더라도 잘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어요. 어디에 있든 내가 즐거운 일을 찾는 게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지현씨의 커리어 목표는 ‘PR·브랜딩 전문가 되기’다. 기존 PR산업과 소셜미디어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상황에서 가장 효율적이고 효과적인 홍보 전략을 세우고 싶어서다. 직책을 떼고선 ‘누군가에게 쓸모 있는 사람’이고 싶다.
“기자였을 땐 취재와 기사쓰기를 배웠고 DJI에선 PR 전략을 연구하기 시작했어요. 지금은 소셜미디어와 PR을 어떻게 잘 연결할 지 고민하고 있어요. 그동안 쌓아온 능력을 또 다음 단계에서 어떻게 우려먹을지 차근차근 생각해나가야죠.”
Copyright @2004 한국기자협회.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