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털 뉴스서비스의 기사 배열 알고리즘은 감정이 결여된 채 기사를 분류하고 이용자들에게 맞춤형 기사를 추천한다. 조회 수와 체류시간, 이용자 집단 구성을 통한 동일화 작업 등을 수행할 뿐, 알고리즘에겐 어떤 정치적 판단이나 이용자의 감정적 반응도 의미가 없다. 그런데 이런 알고리즘의 언어와 저널리즘의 교과서가 말하는 언어가 명백히 다르다는 주장이 나왔다.
29일 서울·부산시장보궐선거 미디어감시연대가 주최한 ‘서울시장 보궐선거, 포털은 어떤 뉴스를 많이 보게 했나?’ 토론회에선 “네이버 알고리즘의 기사묶기(클러스터링)와 노출 순위 결정, ‘많이, 그리고 오래 볼 기사’가 좋은 기사라는 품질 평가, ‘비슷한 관심사를 가진 이용자 집단’의 구성에 따른 맞춤형 기사의 추천이 이번 서울시장 보궐선거 보도에 있어 한계를 드러냈다”는 평가가 나왔다. 선거 보도에서 평균 조회 수 이상의 기사와 상위 20위 기사를 보면 “‘저널리즘의 언어’가 어떻게 ‘기계의 언어’인 알고리즘에 적응하는지가 드러났다”는 것이다.
이날 발제를 맡은 김동원 전국언론노조 정책협력실장(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강사)은 “알고리즘의 언어에 저널리즘의 언어가 적응할 수는 없다”며 “정치적 외압과 대기업의 압력보다 더 중요한 압박이 바로 여기서 온다”고 지적했다.
선거 보도 많이 본 뉴스 57.9%…라디오, SNS 등 인용 기사
이번 선거보도 분석을 위해 언론노조는 3월8일부터 4월8일까지 한 달간, 언론사별 많이 본 기사 중 상위 5개 기사에서 서울시장 선거 관련 키워드가 제목에 포함된 기사 558건을 추출했다. 대상은 네이버 뉴스서비스 채널제휴 언론사 중 구독자 100만명 이상인 48개 언론사였다. 김동원 정책협력실장은 “언론사가 뉴스채널로 구독자를 확보하고 있고, 뉴스채널에 언론사가 일정한 시간차로 하루 6~7개의 기사를 업데이트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면서도 “2019 언론진흥재단의 '알고리즘 배열 전환 이후 모바일 뉴스 행태' 보고서에 따르면 네이버 이용자의 76.1%가 뉴스채널을 구독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네이버의 뉴스추천 알고리즘 내 기사 배열이 뉴스 이용에 더 많은 영향을 끼친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언론노조는 이렇게 1주차부터 4주차까지 모니터링을 한 결과, 심층적인 기획·해설기사보다 후보자나 정치인의 발언 및 동향을 중심으로 하는 이벤트형 기사가 주를 이뤘다고 분석했다. 김동원 실장은 “‘많이 본 뉴스’ 목록엔 자극적인 제목과 여론조사 결과 전달이 주를 이뤘지만 적어도 2주차까진 좋은 관점을 제시한 기획형 기사도 많이 본 뉴스에 포함될 가능성을 보여줬다”며 “그러나 3주차부터 정치인이 페이스북이나 블로그에 올린 글을 빠르게 보도한 기사가 높은 조회 수를 보이는 추세가 시작됐고, 앞서 2주간 간헐적으로 보이던 심층·기획기사가 상위권 기사에서 사라졌다. 언론사별 많이 본 뉴스 중 57.9%의 기사가 라디오 인터뷰, 후보자나 관계인의 SNS, TV로 중계된 토론회 발언, 유튜브 영상 및 타사 보도를 인용한 기사였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SNS나 라디오 인터뷰 인용 등의 기사는 거의 비슷한 시간대에 동일한 단어와 문장으로 쏟아져 나온다”며 “이럴 경우 ‘비슷한 시간대에 많은 언론사가 같은 주제로 생산하는 기사가 많다면, 이 기사들은 대중적으로 관심이 많고 중요한 이슈일 것’이라는 알고리즘의 가정이 클러스터에 작동한다. 동일한 클러스터라도 시간대 기사 양과 최신 기사 양의 우선 노출 기준에 의해 속보경쟁도 유발된다”고 분석했다. 즉 “네이버 알고리즘의 ‘약점’을 보여주는 결과”가 나왔다는 것이다.
김동원 실장은 “선거 보도 기간 가장 많은 조회 수를 기록한 기사 20건을 살펴보면 여론조사 기사가 5건, 후보 관련 논란 3건(오세훈 성폭행 의혹, 박영선 혼자 투표, 오세훈 페라가모 구두 흰색), 정치권 반응, 후보 단순 발언, TBS 등이 높은 조회 수를 보였다”며 “기획·심층 보도가 포털에서 결코 주목을 받지 못하며, 정치인 및 유명 인사의 발언을 전달하는 것만으로 ‘성과’를 거둘 수 있다는 ‘품질 평가 기준’을 알려주고 있다”고 말했다.
"포털, 10% 쓰레기 기사 아니라 10%의 좋은 기사 노출해야"
토론에 참여한 이들은 이 같은 분석 결과에 공감했다. 양진하 한국일보 디지털전략팀 기자는 “현장에 있으면서 단순 SNS 발언이나 라디오 내용을 쓸 수밖에 없는 순환 고리에 올라 있다고 생각한다. 심층보도가 아님을 알면서도 조회 수 등에서 바로 확 반응이 오기 때문에 쓰는 경우들이 있다”며 “주로 언론이나 기자 탓을 많이 하지만 포털 알고리즘이 근본적인 원인을 제공하지 않나 생각한다. 현장에서 특히 정치부에서 발제를 할 땐 사실 다른 회사에서 안 쓰는 기획이나 분석 기사를 생각하며 발제하지만, 그럼에도 독자 공감 측면에서 조회 수 역시 완전히 무시할 수 없는 지표가 된다”고 말했다.
이어 “이번 연구를 통해 네이버 상위권에 놓인 기사들이 무조건 독자 공감을 많이 받았다고 그대로 믿어도 되는지 의심을 가져봐야 할 것 같다”며 “독자들도 내가 보는 기사가 어떤 기준에서 나온 것인지 고민을 해봤으면 한다. 네이버 알고리즘의 수정 요구를 언론사가 할 수 있는지, 네이버와 같이 논의해볼 수 있는지도 고민했으면 한다”고 했다.
이정환 미디어오늘 대표도 “전체 기사 중 10%가 좋은 기사, 80%가 그저 그런 기사, 10%가 쓰레기 기사라고 한다면 독자가 포털에서 마주치는 뉴스는 조영남 발언 같은 쓰레기 기사이고 그렇기에 언론에 절망하고 혐오하게 된다”며 “10%의 좋은 기사를 더 많이 노출시켜야 하는데 지금 포털은 그렇지 않다. 끊임없이 포털 알고리즘을 감시하고 검증하며 공정한 편집을 요구하고, 최소한의 알고리즘 원칙을 공개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준일 뉴스톱 대표도 “저널리즘의 품질을 얘기하려면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포털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를 넘어 포털을 어떻게 벗어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며 “다만 언론사가 한꺼번에 빠져나오지 않는 한 불가능하기에 포털에 책임을 묻는 방식을 생각해야 한다. 포털이 결단을 내릴 수 있도록 사회적 압력이 필요하고 여론 조성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강아영 기자의 전체기사 보기Copyright @2004 한국기자협회.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