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여름 베이징에서 가장 가까운 해변인 허베이성 친황다오로 가족 여행을 떠났다. 짧은 물놀이를 즐기고 돌아왔는데 그 지역 공안이 기다리고 있었다. 대뜸 방문 목적을 묻고는 열차표 예매 현황과 동숙 인원까지 세세하게 살폈다. 중국 전현직 지도부가 친황다오에 모여 주요 현안을 논의하는 베이다이허 회의 기간과 여행 시기가 겹쳤던 탓이다. 그럴 계획도 없었지만, 지도부가 머무는 휴양지 근처로는 원래 발도 딛지 못한다.
북·중 접경인 지린성 투먼에 갔을 때는 두만강 건너 보이는 함경북도 남양시의 한 마을 전경을 카메라로 찍다가 국경 초소를 지키던 중국 군인들에게 봉변을 당할 뻔했다. 거친 언사가 쏟아졌지만 못 알아듣는 척 연기를 하고 사진까지 모두 삭제한 뒤에야 빠져나올 수 있었다. 아직도 그 공안과 군인이 어떻게 필자의 외신 기자 신분을 파악했는지 알 수 없다. 그저 주워들은 단편적인 정보를 토대로 짐작만 할 뿐이다.
지난달 말 영국 공영방송 BBC의 베이징 특파원 존 서드워스가 9년간 머물던 중국을 떠나 대만으로 갔다. 구체적인 이유는 밝히지 않았다. 서드워스는 취재의 위험과 어려움 때문이라고 했고, BBC 측은 “(그가) 중국 당국이 세계에 알려지길 원하지 않던 진실을 폭로해 왔다”는 내용의 짧은 성명만 냈다. 이 일로 논란이 생기자 중국은 BBC가 홍콩과 신장위구르자치구 문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와 관련해 허위사실을 유포하고 가짜뉴스를 양산해 왔다고 맞섰다. 화춘잉(華春瑩)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서드워스의 보도가 공정하고 객관적이었다면 두려워할 필요가 없었다”며 “우리가 반대하는 건 중국을 겨냥한 이데올로기적 편견과 신문자유(新聞自由)를 빙자한 가짜뉴스 조작”이라고 지적했다.
‘신문자유’는 언론의 자유를 뜻한다. 중국에서는 언론 대신 신문이라는 표현을 쓴다. 권력으로부터의 독립 혹은 비판 기능보다 새로운 정보의 전달이라는 업(業)의 특성을 더 부각하기 위한 장치다. 중국은 언론의 자유를 남의 일처럼 말한다. 주요 포털에서 언론 자유의 정의를 검색하면 근대 민주주의 제도의 산물이라는 식의 해석을 내놓는다. 제삼자 입장에서 사물을 객관화하는 화법이다.
한국을 비롯해 대부분의 국가에 존재하는 언론 윤리 강령이 중국에도 있다. 하지만 1991년 처음 제정돼 몇 차례 수정된 ‘중국 신문 종사자 직업 도덕 준칙’이라는 명칭의 긴 문장에서 언론의 자유 혹은 언론의 독립은 언급되지 않는다. 중국 특색 사회주의 사업의 중요한 구성 부분으로 공산당의 이론·노선·방침을 선전하고 사회주의 핵심 가치를 전파하는 게 언론의 사명이다. 당과 국가, 인민에 대한 충성도 명시돼 있다. 당의 규율을 준수하고 국가 이익과 안보를 수호하며 인민을 웃게 만들 뉴스를 적극 발굴해야 한다. 대외적으로는 국가 존엄을 유지하고 중화민족의 우수한 문화를 전파하는 게 주요 임무다.
언론은 사회주의 구현과 공산당 집권 유지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충실히 기능하면 된다. 전형적인 중국식 합목적적 사고 체계다. 코로나19 방역의 일환으로 인구 1100만명의 우한을 완전 봉쇄하고, 홍콩 안정을 도모한다는 이유로 거리낌 없이 선거 제도를 바꿔 버린 것도 같은 맥락이다. 화춘잉 대변인은 BBC와 서드워스를 비판하며 “한 매체가 이데올로기와 스스로 옳다고 믿는 바를 진실 그 위에 놓는다면 코로나19 방역 과정에서 정치가 과학을 압도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서구 민주주의는 혼란과 분열만 초래하고, 서구 언론은 쓸데없이 시끄럽고 비생산적이라는 게 중국의 인식이다.
당혹스러운 건 이 같은 인식을 체화한 중국 기자들과 맞닥뜨렸을 때다. 직업의식도, 일을 하며 느끼는 보람과 성취감도 엇갈린다. 지향이 다르니 소통이 원활할 리 없다. 더 곤혹스러운 건 중국이 전 세계에서 코로나19를 가장 성공적으로 막아내고, 올해 1분기에만 18.3%의 경제 성장을 이뤄내는 등 갈수록 할 말이 없어진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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