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으로서의 기자

[언론 다시보기] 권태호 한겨레신문 에디터부문장

권태호 한겨레신문 에디터부문장

수습 때부터 알고 지내며 지금도 종종 만나는 타사 동료기자에게 들은 말이다. “나이가 들어 (지방의) 고등학교 동문 모임에 몇 번 나간 적 있다. 처음엔 옛날 이야기 하다, 그 다음엔 주식 이야기, 부동산 이야기, 돈 번 이야기, 바람 핀 이야기, 내가 낄 곳이 없고 재미가 없더라. 우리는 그래도 나라 걱정, 세상 걱정 이야기 하지 않느냐”고. 세상의 모든 동문 모임들이 다 그러진 않으리라 생각한다.


기자 생활을 하며 많은 사람들을 만났지만, 가장 많이 만난 사람이 기자들이다. 기자들의 많은 특징 중 하나는 ‘잘난 척’이다. ‘잘난 척’에 남녀노소가 없다. 하도 많이 듣다보니, 이제 웬만한 자랑질이나 잘난 척은 나쁘게 보이지도 않고 귀여울 때가 더 많다. 또 하나는 평균적으로 ‘가장 똑똑한 집단’이라는 것이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늘 살펴보는 게 직업이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그래서 늘 ‘나라 걱정, 세상 걱정’ 하는 집단이다. 어찌보면, ‘꼰대’와 습성이 비슷하다.


꽤 오래 전, 국회를 출입할 때 막스 베버의 <직업으로서의 정치>를 읽으면서, 이 책이 다루는 정치가보다 기자에 대해 더 많은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책에서 정치가가 갖춰야 할 자질로 꼽는 것이 ‘열정, 책임감, 균형감각’이다. “권력을 추구하는 정치가의 열정은 바로 그가 가진 ‘합법적 폭력행사권’이라는 수단 때문에, ‘책임의식’으로 통제되고 조절되지 않으면 지극히 위험하고 파괴적이 될 수 있기 때문”이라 했다. 기자들에게 그대로 적용될 수 있는 말이다. 정치가가 ‘칼’을 다룬다면, 기자는 ‘펜’을 다루는 게 다를 뿐이다.


책에서 ‘저널리스트’에 대해 6쪽에 걸쳐 간략하게 정리한 대목이 있다. 책이 쓰여진 1920년의 기자와 지금의 기자가 별반 차이가 없다. 베버는 이렇게 설명한다. “저널리스트는 일종의 아웃사이더 계층에 속하며, 이 계층의 사회적 평가는 늘 이 계층에서 윤리적으로 가장 낮은 수준의 이들을 기준으로 내려진다”, “저널리스트는 재능을 필요로 한다. 기사는 지시에 따라 즉시 작성되어야 하며, 또 즉시 영향력을 발휘해야 한다”, “저널리스트들은 그 전보다 훨씬 더 여유가 없게 되었다”라고.


그리고 이 챕터의 마지막에서 기자들을 이렇게 묘사한다. “전 세계 유력자들의 살롱에서 외관상 그들과 대등한 입장에서, 흔히 모두에게서 아부를 받으며(왜냐하면 모두들 기자를 두려워 하니까) 그들과 교제한다. 그러면서도 저널리스트는 자기가 방을 나가기 무섭게 살롱 주인이 손님들에게 자신이 ‘신문기자 나부랭이들’과 교제하는 것을 특별히 변명해야만 한다는 걸 빤히 알고 있다.”, “이보다 더 힘든 일은, 시장이 그때그때 요구하는 모든 것에 대해 신속하고도 설득력 있게 자기입장을 피력해야 하고, 볼품없이 천박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라고.


이 책은 저널리스트가 아닌 정치가를 설명한 글이다. 정치란, 열정과 균형감각 둘 다를 가지고 단단한 널빤지를 강하게, 그리고 서서히 뚫는 작업이라고 표현했다. 뚫으려는 널빤지가 다를 뿐 기자의 책무도 비슷하다고 본다.


100년 전 책을 빌어 동료 기자들에게 위로를 전하고 싶다. 베버는 저널리스트에 대한 설명을 이렇게 끝맺는다. “인간적으로 탈선하고 쓸모없이 되어버린 저널리스트들이 많다는 게 놀라운 게 아니라, 오히려 이런 모든 상황들에도 이 계층에야말로 탁월하고 참으로 순수한 사람들이, 국외자들은 쉽게 짐작하기 어려울 만큼, 많이 있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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