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사 뉴스룸에서 탐사보도 DNA가 다시금 깨어나고 있다. 최근 1~2년 사이 탐사기획부, 이슈&탐사팀, 기획취재팀, 히어로콘텐츠팀 등의 이름으로 언론사마다 출입처를 벗어나 보도의 차별화·심층성에 주력하는 부서들이 생겨났다.
언론계에서 탐사보도 바람이 처음은 아니다. 그간 탐사·기획·심층보도 담당 부서는 천편일률적 보도에서 벗어나자는 취지로 신설됐지만, 부족한 편집·보도국 인력 운용 문제, 탐사보도물이 비용대비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부침을 반복해왔다. 하지만 최근 팀 운영 방식 변화, 부서 전반의 기획 기사 상시화 등 언론사들의 탐사보도 활성화를 위한 시도가 이어지고 있어 주목된다.
기자협회보 조사 결과 종합일간지 9개사, 지상파 방송 3사, 종합편성채널 4사, 보도전문채널 1개사 중 14곳이 탐사·기획 부서를 운영하고 있다. 실제로 이들 부서는 그동안 조명 받지 못한 한국 사회 속 다양한 소수자에 주목하고, 정·재계 의혹을 발굴하는 등 기존 출입처에서 주목하기 어려운 이슈에 천착한 기획을 선보여 호평받고 있다.
서울신문 탐사기획부는 지난 2018년부터 <간병살인 154인의 고백>, <당신이 잠든 사이, 달빛노동 리포트> 기획 등을 이어오고 있다. 국민일보는 2019년 이슈&탐사팀 신설 후 <정신질환자 장기수용 실태 추적기> 등의 기획을 내놨고, 지난해 2월 2팀을 추가해 <정부가 깔아준 다주택 꽃길>, <대한민국 데프블라인드 리포트> 등을 선보였다.
지난 2019년 당시 취임한 통합뉴스룸국장의 ‘출입처 폐지’ 선언으로 화제가 된 바 있는 KBS는 탐사보도부 인력을 늘리고, 일반부서 안에도 출입처를 따로 두지 않는 기획팀을 강화해 <공직자 부동산 재산 검증>, <국회감시 K> 보도 등으로 주목받았다. 지난해에는 사회부 이슈팀, 산업과학부 노동팀 기자들이 참여한 <일하다 죽지 않게> 연중 기획을 내놨다. 한국일보는 지난해 12월 어젠다기획부 산하 마이너리티팀을 신설해 <중간착취의 지옥도> 기획을 보도했다.
기자들은 차별화한 고품질 콘텐츠 제공과 긴 호흡의 취재 경험 측면에서 탐사기획부서가 언론사에서 꼭 필요한 조직이라고 말한다. 전웅빈 국민일보 이슈&탐사1팀장은 “그동안 매일매일 커버해야 하는 일 때문에 미처 다루지 못하고 아쉬웠던 것들을 이 팀에서 보도할 수 있었다”며 “취재기술도 나름대로 쌓아가고 있다. 팀 내, 회사 내에 취재경험을 교류할 수 있는 장이 마련되고 있다. 회사마다 상황이 다르겠지만 이런 팀이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조현일 세계일보 특별기획취재팀장은 “디지털이라는 미명하에 기자들의 미션은 점점 많아지고, 일반 부서에서는 이슈 따라가기도 버거운 게 현실”이라며 “언론사의 경쟁력은 콘텐츠에서 나오고 그걸 독자들이 평가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보면서 가치 있다고 판단할 만한 보도가 나오려면 탐사팀이 필요하고, 언론사 구성원의 자부심을 지키는 데도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14개 매체서 탐사·기획부서 운영... 정재계 의혹 발굴, 소수자 주목
탐사기획부서에서 낸 보도들이 주목받고 있지만, 이들에 대한 언론사 조직 내부의 불편한 시선이 존재한다. 현실적인 운영의 어려움과 고민도 크다. 실제로 지난해 국민일보 노조가 조합원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절반 이상이 이슈&탐사팀 확대에 동의’했고 ‘우리만의 기사가 많아졌다’고 응답했지만, 이슈팀 확대 움직임에 반발하는 목소리도 많았다. 국민일보 노조는 그해 9월 발행한 노보에서 “조합원들은 ‘타 부서 기자들이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이 크다’, ‘고질적인 인력 부족 문제를 더 심각하게 만든다’고 대답했다”고 밝혔다. 이처럼 상당한 인력이 탐사기획부서로 빠지면서 출입처 부서 기자들의 희생이 뒤따르는 상황이 지속되고 있고, 하나의 아이템을 취재하는 데 긴 시간을 소요했음에도 크게 주목받지 못할 수도 있다는 우려에 탐사기획부서 기자들이 받는 압박과 부담감도 상당하다. 뉴스룸 리더십이 바뀔 때마다 탐사기획부서가 줄어들고, 없어진 이유다.
오승훈 한겨레 탐사팀장은 “미국 언론사 탐사보도팀은 1년, 몇 년 이상 하나의 아이템을 깊숙이 취재해 보도하는 경우가 많은데 국내 언론사에선 2~3달이 넘어가면 ‘다들 뭐해’라는 식의 반응이 나올 수밖에 없다”고 했다. 오 팀장은 “탐사보도는 먹잘 건 별로 없고 버리자니 아까운, 여전히 그렇게 대하는 풍토가 남아 있는 것 같다”며 “남다른 뉴스콘텐츠는 결국 탐사에서 나오기 때문에 포기하진 못 하지만 그렇다고 전사적인 지원을 하기엔 어려운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의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이전에 탐사기획부서를 담당했던 한 종합일간지 기자는 “다른 언론사 탐사기획팀 기자들과 얘기해보면 공통적으로 시간이 갈수록 어떤 아이템을 선정해야 하는지, 이 사안을 이 시점에 내는 게 적절한지 판단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며 “아무래도 기자들이 소진되는 게 있다. 팀의 빠른 순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뉴스 소비가 포털 중심으로 이뤄지는 언론 환경에서 공들여 준비한 기획이 쉽게 묻히는 현실도 탐사보도팀 유지를 어렵게 만든다. 이재석 KBS 사회부 이슈팀장은 “뉴스 유통구조가 이렇다 보니 굉장히 좋은 보도들이 이달의 기자상 출품작으로만 남게 된다”며 “우리 삶을 실질적으로 바꾸는 기획보도들보다 단편적이고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보도만 눈길을 끄는 상황에서 악순환이 반복된다”고 말했다.
다만 탐사 기획의 경험이 오랜 기간 이어져 오면서 뉴스룸 전체로 확산하는 흐름도 포착된다. 서울신문의 경우 지난해 <2020 부동산 대해부>, <노후자금 착취 리포트-늙은 지갑을 탐하다> 등 기획 보도를 한 경제부 다수가 이전에 탐사기획부를 경험한 기자들이다. 한겨레신문에서도 사건팀 기자들이 <텔레그램에서 퍼지는 성착취>, <대한민국 요양보고서> 등 출입처를 탈피해 차별화한 보도를 할 수 있었던 것도 일반 취재부서 있다가도 기획에 투입되는 게 낯설지 않은 한겨레만의 문화 덕분이다.
남다른 콘텐츠, 탐사에서 나오지만... 공들여 준비해도 포털선 묻혀버려
안동환 서울신문 탐사기획부장은 “고정 출입처에서 데일리 기사를 쓰면서 별도로 탐사기획을 준비하려면 개인이 자기 시간을 더 투입할 수밖에 없다”며 “그럼에도 서울신문에는 탐사기획부 명맥이 이어지면서 기자들이 ‘이거 해보고 싶다’고 하면 담당 부장들이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문화가 분명히 있다”고 말했다. 안 부장은 “탐사기획부뿐만 아니라 경제부, 사회부에서 잇따라 좋은 기획을 내놓으면서 지면을 잡기 위한 내부 경쟁이 치열해지기도 했다”고 전하면서 “굉장히 바람직한 현상이고, 이런 경험치가 단절되지 않고 다음 탐사기획부로 이어지고 또 이어지는 게 중요한 과제”라고 강조했다.
하나의 프로젝트마다 팀을 결성하고, 시리즈가 끝나면 기자들이 원래 출입처로 복귀하는 동아일보 히어로콘텐츠팀의 운영 방식은 탐사 경험이 편집국 전반에 자리 잡게 만들 수 있는 좋은 사례로 꼽힌다. 히어로콘텐츠팀은 동아미디어그룹의 뉴스룸 혁신 전략 보고서인 ‘레거시플러스’에서 제안된 조직이다. <증발> 기획을 선보인 1기, <환생> 시리즈를 보도한 2기에 이어 현재 3기가 기획을 준비 중이다. 기수마다 인력 구성은 국장단 의견 수렴을 통해 모든 부서가 공평하게 돌아갈 수 있도록 각 부서마다 인원을 차출하는 방식으로 인선한다.
동아일보 관계자는 “레거시플러스 보고서에서 히어로콘텐츠팀을 제안한 기자가 이 팀을 어떻게 운영하면 좋을지 다양한 기자들, 내부 조직원을 만나 인터뷰했다. 지난한 질문의 과정에서 지금 같은 운영 방식이 나왔다고 보면 된다”며 “1기가 5개월, 2기가 4개월 동안 운영됐다. 1기, 2기가 전혀 새로운 기자 집단이라는 점에서 매번 새로운 문제의식과 관점을 끌어낼 수 있었고 더 많은 기자가 임팩트한 방식으로 멀티미디어 스토리텔링 경험을 단기간에 익히는 게 가능하다는 장점도 있다”고 말했다.
박지은·김달아 기자 jeeniep@journalist.or.kr
탐사·기획보도 전성시대… 이슈별 부서 세분화가 트렌드
지금 언론계는 ‘탐사·기획보도 전성시대’로 불릴만하다. 주요 언론사 대부분이 탐사기획보도 전담 부서를 운영하며 보다 공들인 콘텐츠를 선보이고 있다.
언론사별 탐사기획부서의 역사를 되짚으면 수십년을 거슬러 올라간다. 부서가 사라졌다 다시 생겨났다를 반복하는 동안 명칭, 운영 방식 등이 여러 차례 변해왔다. 종합일간지 가운데 같은 부서명을 가장 오래 유지하고 있는 곳은 세계일보다. 세계일보는 2001년 당시 미국 탐사보도 시스템을 적용한 특별기획취재팀을 신설한 뒤 20년이 넘은 현재까지 동일한 이름으로 운영 중이다. 한겨레신문 탐사팀도 2011년부터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한겨레는 홈페이지에 ‘탐사보도’ 섹션을 둬 예전 기사들을 모아뒀다.
최근 신설된 탐사기획부서들은 과거보다 다양한 주제를 다룬다. 권력을 비판하고 비리를 들추는 전통적인 개념의 탐사기획보다는 우리 삶에 더 밀접한 이슈, 디지털 친화적인 접근이 돋보인다. 중앙일보가 대표적인 사례다. 중앙일보는 지난 2019년부터 정치국제기획팀과 사회기획팀을 운영하고 있는데, 이들은 전통적인 탐사기획부서와는 거리가 있다. 각각 5~6명으로 구성된 두 기획팀은 해당 분야의 디지털 콘텐츠 제작에 특화돼 있다. 이 중 사회기획팀은 동물·자연에 특화한 유튜브 채널 ‘애니띵’과 젊은 기자들이 만드는 콘텐츠 ‘밀실’ 등을 담당한다.
탐사기획부서를 세분화하고 언론사마다 운영 부서 수가 늘어난 것도 요즘 트렌드다. 취재에 소요되는 시간(중단기, 중장기)이나 주제에 따라 여러 부서를 두는 식이다. SBS는 2019년 조직개편에서 탐사보도 코너 ‘끝까지판다’ 담당팀을 탐사보도부로 승격하고, 이듬해 중단기 기획과 팩트체크, 데이터저널리즘을 아우르는 탐사보도2부를 추가 배치했다. JTBC도 지난달까지 탐사기획팀을 1팀, 2팀으로 나눠 운영했다.
국민일보는 이슈&탐사1팀과 2팀을 운영하고 있지만 현안이 많은 정치부 산하에 정치이슈팀도 가동하고 있다. 시시때때로 발생하는 이슈에 민감하게 대응하면서도 이와 관련해 깊이 있는 기획보도를 만들겠다는 취지다. 조선일보의 사회부 산하 기획팀, 한국일보의 사회부 산하 탐사팀도 비슷한 목표로 지난해 신설됐다.
KBS 사회부 산하 이슈팀은 다음달 예정된 조직개편으로 탐사보도부에 흡수될 가능성이 크다. 이재석 KBS 이슈팀장은 “기획보도를 축소하는 것이 아니라 뉴스룸 전반의 기획성을 강화하자는 취지”라며 “데일리부서도 이슈팀처럼 출입처와 무관한 기획물을 선보여야 한다는 공감대에 따라 부서와 인력 조정이 이뤄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달아·박지은 기자 bliss@journalist.or.kr
Copyright @2004 한국기자협회.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