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중재위원회가 31일 창립 40주년을 맞았다. 1980년 악법으로 평가받는 ‘언론기본법’ 제정을 계기로 1981년 3월 중재위가 출범했다. 언론통제 장치란 의심에 오랜 기간 사회의 시선은 냉랭했지만 1987년 언론기본법 폐지 와중에도 언론중재 제도는 살아남았다. 그리고 현재 한국적 언론피해 구제 제도이자 세계에서 드문 대체적 분쟁해결 제도(ADR)로서 자리매김했다. 다만 이제 ‘불혹’을 맞은 중재위의 역할을 두고 언론계에선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중재위의 조정·중재 과정이 너무 행정 편의주의적이고 바뀐 시대상을 반영치 못한다는 지적은 대표적이다. 중재위에 수차례 가본 종합일간지 한 기자는 “중재위는 과거 언론이 힘이 셌던 시기 언론을 상대하던 관성대로 여전히 일하는 거 같다”며 “중재 신청만 하면 약자로 보고 터무니 없는 말에도 기계적으로 판단한다. 조정에 성공했다는 성과에만 신경 쓰면서 관료적인 판단을 한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고 평했다. 그러면서 “언론의 위상이 낮아지며 정치인 등 스피커를 가진 사람들, 기관 중에선 잘못된 보도라는 알리바이로 중재위를 이용할 때가 많다. 애초 취지가 언론에 의한 부당한 피해 구제였다면 이젠 시대에 따른 성격 변형을 고려해야 할 때”라고 부연했다.
“언중위 조정·중재 과정, 바뀐 시대상 반영 못 해”
심석태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 교수는 “중재위 조정 과정에서 약간씩 원칙보다는 당장 눈앞에 있는 사건의 조정과 합의를 우선시하는 바람에 기존 원칙과 맞지 않는 결론을 내리기도 하고 직권조정을 하는 경우가 있다. 언론 관행 개선에 도움 안 되는 일”이라며 “준국가기관의 작동은 명확한 기준에 따라야 선례로서 언론이 취재관행을 고치고 소비자들의 오해를 줄이는데 도움이 될 수 있는 만큼 정말 준사법기관처럼 엄밀히 운영돼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는 중재위가 그간 준사법기구란 기관 성격에 걸맞은 행보를 보이지 못했다는 비판이기도 하다. 언론보도에 대한 조정·중재 과정은 많은 경우 ‘언론피해 구제’와 ‘표현의 자유’ 사이 줄타기가 되기에 지난한 데 이에 대한 고민은 적었고 ‘신청인’과 ‘피신청인’ 간 타협이란 가장 손쉬운 방법만을 택했다는 의미여서다.
이와 관련해 중재위가 매년 결과보고서 차원에서 내놓는 통계는 개선이 필요한 사례다. 예컨대 ‘2020년 연간보고서’ 등엔 조정사건을 신청인 유형에 따라 구분한 자료가 포함됐는데 개인, 국가기관, 지자체, 공공단체, 일반단체, 종교단체, 기업체, 언론사, 교육기관 등 유형만 있을 뿐 정치인이나 공공기관의 중재위 재소 여부 등을 파악할 수 있는 내역은 기록하지 않고 있다. 법적으로 국가기관인 국회의원 역시 ‘개인’에 포함되며 기관의 성과를 넘어 ‘표현의 자유’ 등 맥락에서 사회적으로 의미를 갖는 자료제공이 못되는 것이다. 중재위 관계자는 “국회의원 개인 명의로 신청하면 개인으로 기록된다. 지자체는 단체명으로 신청하면 단체로, 단체장 개인이면 개인으로, 단체장과 개인 연명이면 단체로 하는 식”이라며 “세부 통계는 없다”고 설명했다.
“과정·결과 기록해 경험 축적하고, 위원들 판단 일관성 유지할 필요”
조정·중재의 과정과 결과를 보다 면밀히 기록해 사회적 경험으로 축적하고 언론중재위원들에 대한 교육으로 판단 일관성을 유지할 필요성도 제기된다. 중재위원을 역임한 최영재 한림대 교수는 “법원은 심층적으로 들여다 본 결과로 피해구제의 논리나 인과관계를 판결문에 남긴다면 언론중재제도는 신속함 등 편의가 있는 대신 많은 부분이 생략된다. 체계적으로 정리되지 않는 면이 있다 보니 신청인이나 언론사 입장에선 어떻게 대응하고 뭘 주의해야할지 막연해 하고 결국 감정적 언사와 무마 노력만 반복되는 것”이라고 했다. 이어 “유사한 사안이 중재부에 따라 결과가 들쭉날쭉 해지는 부분도 고민할 지점”이라고 덧붙였다. 지상파 방송사 한 기자는 “중재위원들이 기자를 훈계조로 꾸짖을 때가 있다. 신청인을 두둔하는 게 합의에 용이하다고 판단하는 분위기가 있는 듯한데 상호 간 감정만 남기고 선순환 구조도 아닌 만큼 감정적 언사 표현에 교육이 필요하다고 본다”고 했다.
최근 중재위는 ‘열람차단 청구권’ 등 정치권에서 나온 법안 통과에 사활을 걸고 있다. 이 법안은 △언론보도 등의 주요한 내용이 진실하지 않거나 △언론보도 등의 내용이 사생활의 핵심영역을 침해하거나 △그밖에 언론보도 등의 내용이 인격권을 계속적으로 침해하는 경우 피해를 주장하는 이가 인터넷신문이나 인터넷뉴스서비스 사업자에 기사열람 차단을 청구할 수 있게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오랜 기간 중재위는 ‘업무 영역(댓글, 유튜브 등)’과 ‘관여 수준(기사 수정·삭제 등)’을 확대하려는 시도를 이어왔는데 이번 ‘열람차단 청구권’은 ‘관여 수준’과 연관이 있다.
해당 법안을 두고 방송통신심의위, 중재위, 법원 등을 통한 구제가 이미 가능하다는 점을 들어 언론계 안팎에선 중복입법 지적이 나왔다. 오픈넷은 “공인이나 기업들이 자신에 대한 의혹 제기나 비판적 내용의 보도에 대해 열람 차단 청구를 남발할 수 있다”는 악용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다만 시대상을 반영한 피해구제는 분명 필요한 만큼 이를 위한 언론계, 여러 기관 간 논의는 시급해 보인다. 미디어 산업 위기와 맞물려 문제적 뉴스를 줄이지 못하고 있는 언론계로선 자성의 지점이기도 하다.
김준현 변호사(언론인권센터 미디어피해구조본부장)는 “열람차단은 신문 지면으로 치면 사실상 기사 삭제와 같다”면서 “언론 피해자 권리 확대 차원에서 취지에 공감하지만 신청 남발이 우려되고 너무 섣부른 방식이라 본다. 언론사들의 자율적인 해결에 방점을 두고 답을 모색하는 게 바람직하지 않을까 싶다”고 했다.
최승영 기자 sychoi@journalis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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