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현지 시각) 미국 뉴욕증권거래소의 오프닝 벨을 울리며 화려하게 데뷔한 쿠팡. 이미 국내 고용 규모로 삼성전자, 현대자동차에 이어 3위에 오르며 유통 대기업으로 성장한 쿠팡이 언론 대응 면에선 오히려 퇴보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자사의 보건안전·노동실태를 비판적으로 보도한 언론에 잇달아 거액의 손해배상청구소송을 하면서 과잉 대응을 한다는 지적이다. 언론·노동계는 물론 법조계도 이를 전형적인 ‘입막음’·‘괴롭힘’ 소송으로 보고 부적절한 법적 조치를 철회하라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한국기자협회·방송기자연합회·전국언론노조 등 14개 언론 단체는 지난 17일 쿠팡 본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쿠팡은 ‘노동인권 보도’ 봉쇄소송을 당장 멈추라”고 촉구했다. 쿠팡은 지난해 7월 천안 물류센터 식당 하청업체 노동자의 심정지 사망 사건을 보도한 대전MBC 기자를 상대로 1억원의 손해배상청구소송을 냈다. 언론중재위원회를 통한 정정보도 청구를 거치지 않고 기자 개인에게만 거액의 소송을 걸었다. 지난 2월엔 동탄 물류센터에서 일하다 숨진 노동자 소식을 보도한 일요신문과 기자를 상대로 기사 삭제와 1억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1월엔 프레시안에 기사 삭제를 요구했다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역시 소송을 제기했다.
방식은 대체로 비슷한 것으로 전해졌다. 취재 단계에선 기자의 연락에 잘 답하지 않다가 기사가 나간 뒤에 서면 자료를 통해 반박하고, 정정보도 청구나 기사 삭제 요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소송을 제기하는 식이다. 언론 단체들은 “이러한 쿠팡의 언론 대응은 정당한 비판 여론을 소송 등으로 막기 위한 ‘전략적 봉쇄’로 볼 수밖에 없다”며 “모두 13회에 걸쳐 쿠팡의 노동안전 문제를 심층 보도한 대전MBC 기자는 쿠팡의 제소 이후 압박을 느껴 후속보도를 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쿠팡의 소송 위협이 언론 취재와 노동인권 보도를 틀어막는 실체적 위험이라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준다”고 밝혔다.
지난해 5월 쿠팡 물류센터에서 코로나19 집단감염이 발생하고 노동자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쿠팡은 자체 뉴스룸을 통해 각종 반박자료를 ‘팩트(facts)’란 이름으로 내며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대구 물류센터에서 20대 노동자가 숨졌을 당시에는 쿠팡의 책임 인정을 요구하는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위원회’ 주장을 “성실히 일한 고인의 죽음을 악의적으로 이용하려는 시도”라고 비난하며 “고인의 주당 평균 근무시간은 약 44시간”이고 “직원의 근로 강도가 높아지지 않도록 관리”하고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4개월 뒤 근로복지공단은 산재 사망을 인정했다. ‘쿠팡발 코로나19 피해자 지원대책위’는 지난달 22일 성명을 내고 “사람이 5명이나 죽는 동안에도 노동자들의 고통을 외면하고 책임을 방기하더니, 사회적 책임을 다하며 피해실태를 가감 없이 보도한 언론사에 명예훼손을 운운하며 소송을 제기하는 것이 쿠팡이라는 기업의 기업윤리이며 경영방침인지 되묻고 싶다”고 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노동위원회·미디어언론위원회도 지난 18일 성명을 통해 “이번 쿠팡의 소송은 승소를 염두에 둔 것이 아니라, 소 제기 자체로 언론사와 기자 개인을 압박하려는 괴롭힘과 보복에 목적을 둔 것으로 보인다”며 “쿠팡은 언론의 정당한 보도내용에 대한 부적절한 법적 조치를 즉시 중단하라. 사법부는 이번 쿠팡의 소송제기를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전략적 봉쇄소송’으로 보고, 소권을 남용한 것이라고 적극적으로 판단하라”고 촉구했다.
김고은 기자 nowar@journalis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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