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년 전에도 본 듯한 부수조작 의혹… 개선책도 답습할까

문체부 개선안 권고에도 싸늘한 반응… 개혁은 미진했고 문제는 지속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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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투명하고 부실한 부수공사 과정의 전면 개선.’ 지난 16일 문화체육관광부는 한국ABC협회를 사무 검사한 결과를 발표하며, 조치 권고사항으로 위 항목을 주요하게 제시했다. 신문사 부수보고부터 표본지국 선정, 공사원 배치, 지국 실사까지 여러 문제점이 확인됐고, 그 결과 ABC협회에서 발표한 유가율(발행부수 대비 유가부수 비율)과 실제 유가율이 상당한 차이를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체부의 권고가 향후 제대로 지켜질 거라고 생각하는 이들은 많지 않았다. “기다려 보겠지만 기대할 순 없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 정도로 반응은 싸늘하기만 했다. ABC협회가 설립된 이후 지속적으로 부수 부풀리기 의혹이 제기됐지만 그 때마다 개혁은 미진했고, 문제는 계속됐다는 이유에서다. 그동안 각 신문사의 유료부수가 실제와 다르다는 것은 업계 내 공공연한 비밀이었으나 지난해 11월, 협회 내부관계자가 문체부에 부수공사 과정을 조사해달라는 진정서를 제출하기 전까지 ABC협회의 부수공사는 오랫동안 문제시되지 않았다.

 

◇기시감 드는 ABC협회 부수 조작 의혹
ABC협회 부수 조작 의혹은 지금으로부터 약 13년 전에도 제기된 적이 있었다. 2008년 7월, 경향신문은 ABC협회가 2002년과 2003년 실사 당시 조선일보의 유료부수를 실제보다 부풀려 공식 발표했다고 보도했다. 이로 인해 큰 파문이 일자, 문체부는 ABC 공사제도 개선작업에 나섰고 2009년 5월 종합 대책을 마련해 발표했다. 대책엔 ABC협회의 신뢰성과 ABC 공사 제도의 전문성 향상을 위해 △이사회에서 검증하던 부수공사 결과를 외부 전문가로 구성된 ‘인증위원회’를 만들어 전담시키고 △협회 조사원을 증원해야 한다는 등의 내용이 담겼다.


가장 논란이 된 건 ABC 제도 개선을 위해 2010년부터 ABC협회 부수검증에 참여한 신문·잡지사에만 정부광고를 집행하기로 한 방안이었다. 신문광고 시장을 투명화하기 위한 조치였지만 ABC협회가 제대로 정비되지도 않은 상황에서 나온 대책이라 “본말이 전도됐다”는 비판이 거셌다. 당시 한겨레신문이 가장 강력한 반대 입장을 밝혔는데, 가뜩이나 판촉 등 과열경쟁이 난무해 신문 시장이 혼탁한데 ABC협회 공사의 공신력이 의문인 상황에서 시장 지배적 사업자만 강화될 수 있다는 게 주요 논거였다. 그러나 정부광고를 안 받을 순 없기에 결국 거의 대부분의 신문사들이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부수공사에 참여했고, 매해 수천억원의 정부광고가 신문사들에 집행됐다.


ABC협회 부수 인증 무용론은 이후에도 끊임없이 제기됐다. 광고 단가 산정과 집행 기준에 도움이 된다는 일각의 평가도 있었지만, 이미 광고 단가는 관행처럼 굳어져 수십 년간 이어져 오고 있었던 데다 매년 부수를 공개하는 탓에 신문사들 간 부수 경쟁이 더욱 치열해졌다는 비판도 컸다. 게다가 신문 부수를 각 사의 영향력으로 받아들이는 탓에 뉴스 소비가 종이신문에서 인터넷·모바일로 급변한 상황에서도 실익 없는 부수 경쟁이 해마다 되풀이되기도 했다.


이 때문에 이상 현상도 일어났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의 ‘2019 언론수용자 조사’에 따르면 신문 구독률은 2011년 24.8%에서 2019년 6.4%로 거의 4분의 1토막이 났지만 ABC협회가 공표한 유료부수는 같은 기간 9% 줄어드는데 그쳤다. 김승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언론재단에서 받아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정부광고비를 가장 많이 받은 상위 20개 언론사에서 절반이 이 기간 유료부수가 늘어났고, 국민일보(57.6% 하락)를 포함 4개 매체를 제외하곤 감소율도 한 자릿수에 불과했다.


전국언론노조는 지난 18일 낸 성명에서 “이 사태가 놀랍지는 않다. 언젠가는 터질 문제였기 때문”이라며 “유관 부처인 문체부는 이번 사안과 관련한 감독 권한과 책임을 지니고 있음에도 이에 소홀했다는 비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문체부 또한 이번 사태에 대한 책임을 통감하고, 신문 유가부수 산정 방식과 현장 조사 체계를 완전히 바꿔야 한다”고 밝혔다.

 

◇ABC협회 자체 혁신으로 문제 해결될까
문체부는 이번 조사 결과를 발표하며 2개월의 시한을 걸고 ABC협회에 부수공사 과정, 거버넌스 개선과 함께 통합ABC 제도 운영을 권고했다. ABC협회가 권고사항을 이행하지 않으면 부수공사의 정책적 활용을 중단하는 등의 추가적 조치를 취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문제 해결을 ABC협회에만 맡길 수는 없다고 입을 모아 말했다. ABC협회 해체에 준하는, 지금의 체제를 흔드는 방식을 마련해야 한다는 소리다.


신미희 민주언론시민연합 사무처장은 “정부광고비나 신문 유통 지원금이 합리적으로 투명하게 집행되기 위해선 신문사의 영향력 지표를 민간기구에 위임할 게 아니라 공적 기관에 맡겨야 한다”며 “정권의 영향을 받지 않기 위해 시민사회 주도로 운영될 수 있는 기구 설립 등 근본적 대책 마련에 나서야 한다. 또 기구 설립뿐만 아니라 신문시장 정상화를 위해 신문 지원 관련 법과 제도도 이번 기회에 전면 개편해 지역이나 소규모 매체가 자립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준형 언론노조 전문위원도 “부수가 신문사의 영향력을 평가하는 지표로서 유명무실한 측면이 있어 신문유통원 등을 발전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안 등을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


다만 ABC협회의 부수 인증으로, 폭행·협박이 난무했던 지자체 홍보비나 정부광고 집행의 폐단이 상당 부분 사라졌기에 그 기능 자체는 남겨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홍문기 한세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는 “언론재단을 중심으로 ABC협회를 포함, 광고와 연계된 기관들을 통폐합해 가칭 ‘통합정부광고기구’ 등을 만들 필요가 있다”며 “해당 기구에서 광고 집행 범위를 결정하기 위해 ABC협회의 기능을 가져올 필요가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현재 발행부수나 유료부수 외엔 사실상 기준이 없기 때문에 ABC협회를 중심으로 정부광고가 ‘나눠주기 식’으로 운영되고 있다”며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성적 평가기준을 마련해야 한다. 지역신문발전위원회가 지역신문발전기금 우선지원 대상을 선정하기 위해 다양한 관점에서 지역 언론을 평가하고 있는 데 착안해, 정량적 평가를 기준으로 하되 공정성을 실현할 수 있도록 정성적인 부분도 평가해 정부광고를 집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번 사태에서 빠질 수 없는 신문사들의 자성을 촉구하는 목소리도 컸다. 문체부의 발표 이후 한겨레는 독자에게 사과하고 발행부수의 투명성을 끌어올리는 내부 혁신에 나서겠다고 했지만, 그 외 대부분의 신문사는 침묵하거나 의혹을 부인했다. 조선일보는 노보에서 “유료 부수를 조작했다는 의혹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했다. 허찬행 청운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본인들의 이해관계에 맞춰 협회에 센 입김을 불어넣었던 신문사들이, 자성하고 자발적으로 개선 역할을 해야 한다”며 “이사회를 개최해 협회장을 새로 선출하든 정관을 개정하든 주도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 신문사들은 이 사태에 있어 어디까지나 당사자들이기에 이사회 구성이나 운영에 있어 개혁 의지를 갖고 실천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부수·트래픽 함께 조사’ 통합ABC 제도, 대안 될까

문체부가 권고한 통합ABC 제도는 불투명한 부수 공사의 대안이 될 수 있을까. 문체부는 지난 16일 ABC협회 사무 검사 결과를 발표하며, 매체 환경 변화를 반영하기 위해 종이신문 부수와 온라인신문 트래픽을 함께 조사하는 통합ABC 제도 도입을 ABC협회에 권고했다.


그러나 언론사들은 통합ABC 제도가 포털에 대한 신문사의 종속을 심화시킬 거라며 부작용을 우려했다. 한국일보는 기사를 통해 “언론사를 어뷰징과 조회 수 경쟁에 내몰아 오히려 미디어 시장의 난맥상을 부를 수 있다”고 경고했고, 문화일보도 기사에서 “인터넷 트래픽이 정부 및 공공기관의 광고 단가 및 보조금과 연동될 경우, 언론은 자극적이고 과장된 기사를 경쟁적으로 쏟아낼 우려가 있다”고 밝혔다.


다만 통합ABC 제도를 어떤 방식으로 도입할 지는 아직 상세히 결정된 바가 없다. 문체부 관계자는 “온라인 영향력이 강세인데 그 부분에 대한 자료는 없고, ABC협회에서도 거의 손을 놓고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권고를 한 것”이라며 “저희도 연구를 할 예정”이라고 했다. 앞서 ABC협회는 지난 2012년 온라인ABC를 계획해 발표하고 2013년 웹-모바일 공사를 시작했지만, 유인책이 전혀 없어 그동안 극소수의 매체만 온라인ABC에 참여해왔다.


지난 2017년 언론재단의 ‘디지털 언론매체 ABC 제도 도입 방안’ 연구에선 디지털ABC 도입방안을 크게 세 가지로 정리해 제안하기도 했다. △현재 디지털 형태로 서비스되고 있는 PDF 서비스를 조사해 디지털ABC를 도입하고 확대하는 방법 △기존 인터넷 신문이용행태를 조사하는 조사업체의 자료를 바탕으로 인터넷신문의 노출기록을 접목해 새로운 인터넷 뉴스 이용행태 지표를 개발하는 방법 △현재 정부광고를 집행하고 있는 언론재단이 이를 애드서버 또는 애드네트워크 형태로 확장해 인터넷신문의 이용행태를 우선 조사하는 방법 등이다.


허찬행 청운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단순히 클릭 수를 가지고 영향력을 평가한다면 우려할 수 있지만 실제 그렇게 도입되진 않을 것”이라며 “신문사의 뉴스가 얼마만큼 온라인상에서 읽히는지 더욱 정교하게 측정해 그걸 인증하는 방안들이 논의될 것”이라고 말했다.

 

강아영 기자 sbsm@journalis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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