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째는 ‘행운을 끌어당기는 힘’이에요. 술자리는 절대 피하지 마세요. 거절하면 두 번 다시 안 불러줘요. 행운을 만날 기회도 줄겠죠. 나 역시 ‘술자리를 절대 거절하는 않는 여자’로 여기까지 왔어요.”
지난해 6월, 야마다 마키코(60) 일본 총무성 총무심의관이 한 말이다. ‘청춘을 위한 메시지’라는 제목의 강연에서 자신이 터득한 출세 노하우를 소개했다. 앞의 두 개는 뉴 노멀, 인터넷 사회에 대비하라는 등 교과서 같은 얘기였다. 마지막은 뜻밖이었다. “술자리, 빼지 마라.”
야마다의 이력은 화려하다. ‘여성 최초 총리 비서관’(2013년), ‘여성 최초 총무성 국장’(2015년), ‘여성 최초 총무성 관방장’(기조실장·2016년). 이어 차관급인 ‘여성 최초 총무심의관’(2019년)이 됐다. 강연 석 달 뒤에는 스가 내각의 얼굴, 초대 내각 공보관으로 발탁됐다. 우리의 청와대 춘추관장 같은 자리, 역시 ‘여성 최초’였다.
하지만 ‘행운을 부른다’던 야마다의 처세는 결국 제 발목을 잡았다. 총무심의관이던 2019년, 스가 총리의 장남이 다니는 회사로부터 7만4023엔(77만원)짜리 식사를 접대 받은 일이 뒤늦게 드러났다. 도쿄의 한 고급 호텔에서 일본산 소고기인 와규(和牛) 스테이크와 해산물 요리를 먹었다 한다.
일본 기초생활수급대상자의 코로나19 지원금이 50만엔이니 입이 쩍 벌어질 액수다. 공보관 월급 117만5000엔(1225만원)의 60%를 토해내겠다며 반전을 노렸으나 여론을 식히지 못했다. 야마다는 3월1일 사표를 냈다. 77만원짜리 밥 한 끼의 대가는 비쌌다.
그의 사임을 계기로 일본에선 이른바 ‘명예 남성’(名譽男性) 논란이 일었다. 남성이 아닌데도 사실상 남성 권력을 대변하는 사상을 지닌 여성을 뜻한다. 이들은 주류 논리에 순응함으로써 대우받는다. 야마다가 ‘명예 남성’이었는지는 모르겠다. 한 사람의 삶을 한 단어로 규정짓는 것도 올바르지 않아 보인다.
다만 ‘명예 남성’을 만들어 내는 구조는 명확하다. 일본은 견고한 ‘오토코(男) 사회’다. 남성 중심의 질서가 뿌리 깊다. 수치가 보여준다. 기업의 여성 관리자 비율은 12%(세계 평균 27%·국제노동기구 2018년), 여성 국회의원(중의원) 비율은 9.9%(세계 평균 24.9%·국제의원연맹 2020년)밖에 안 된다. ‘할아버지-아들-손자’가 대를 잇지 않으면 정치가 굴러가지 않는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닛케이신문은 ‘세습 왕국 일본’이란 표현까지 썼다.
야마다가 사회 진출을 앞둔 청춘에게 ‘전략적 술자리’를 조언한 것도 이런 구조와 따로 떼어 생각하기 힘들다. 일본에선 일을 진행하기에 앞서 사전 교섭과 물밑 작업이 일상이다. 술자리나 흡연장, 골프장 등 비공식 자리마다 정보가 읽히고, 인맥이 얽히며, 의사 결정이 조율되는 일이 다반사다.
칼럼니스트 가와사키 다카키는 “이런 문화는 남자들이 만들었고, 그들이 좋아한다. 여자든 남자든 구조화한 ‘룰’을 받아들이고, 물들지 않으면 애초부터 게임에 참가할 수 없다. 여성은 특히 ‘명예 남성’ 반열에 올라야 겨우 경쟁 티켓 한 장 얻을 수 있는 시대”라고 지적했다.
‘오토코 사회’는 일반 여성과 일부 ‘명예 남성’을 갈라놓고, 후자만을 용인함으로써 옛 권력 집단의 균질성 유지를 지향한다는 측면에서 고약하다. 그러고 보니 야마다에게 행운을 가져다 준 권력자들, 그를 국회로 불러내 “도대체 뭘 먹었느냐”고 호통 치던 의원들, 그리고 그의 거취를 결정했던 인사권자 등은 늘 ‘남성’이었다.
야마다 사임 일주일 뒤, 3월8일은 ‘세계 여성의 날’이었다.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올해도 ‘여성이 일하기 쉬운 국가’, 이른바 ‘유리천장 지수’를 발표했다. 일본은 주요 29개국 가운데 28위였다. 그리고 그 밑에 나라, 한국이었다. 9년 연속 꼴찌다.
Copyright @2004 한국기자협회.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