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야말로 주식투자 열풍이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지난해 연말 기준 국내 상장법인 투자자 수(중복 제외)가 약 920만명을 기록했다. 1년 사이 300만명(48.5%)이 늘어났다. 이 추세대로라면 주식투자 인구는 이미 1000만명을 넘어선 것으로 점쳐진다. 경제활동인구의 절반 가까이는 주식투자를 하고 있다는 의미다.
주식 투자자가 많아지고 그만큼 대중화되면서 투자정보에 대한 수요도 급증하고 있다. 서점가에선 주식투자 비법을 알려주는 책이 베스트셀러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고, 유튜브엔 ‘주린이’(주식 초보자를 어린이에 빗댄 말)를 겨냥한 강의 영상부터 해외증시 정보, 투자 성공담까지 관련 콘텐츠가 넘쳐난다. 유례없는 주식 열풍에 전문 유튜버들의 인기와 영향력도 수직 상승했다. 경제·금융 전문 유튜버인 ‘슈카’는 지난해 8월 세계적인 투자자 짐 로저스를 인터뷰해 화제를 모으더니, 140만 구독자를 발판삼아 다수의 TV 프로그램 등에 출연하며 맹활약 중이다. 경제 전문 채널 ‘삼프로TV’도 동학 개미 운동과 주식 열풍에 힘입어 급성장했다. 지난해 1월 초만 해도 10만명 수준이었던 구독자는 올 1월 100만명을 넘었다.(23일 기준 128만) 얼마 전 벤처캐피탈에서 수십억원의 투자를 받은 삼프로TV(기업명 이브로드캐스팅)는 상장을 위해 IPO(기업공개)를 추진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한경 주코노미TV, 구독자 12만... KBS·매경·이데일리 등 각축 양상
이에 질세라 기성 언론들도 주식·금융 콘텐츠 시장에 뛰어들었다. KBS는 박종훈 경제전문기자를 내세워 지난해 9월 ‘박종훈의 경제한방’ 채널을 만들었는데, 4개월 만에 구독자 수가 10만명을 돌파했다. 한국경제신문이 만든 밀레니얼을 위한 주식콘텐츠 ‘주코노미TV’도 주 4회 정도 꾸준히 콘텐츠를 선보이며 12만 구독자를 확보했다.
다른 경제 매체들도 이 대열에 합류했다. 이데일리는 지난 1월 증권시장부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주톡피아’를 시작했고, 매일경제는 주린이를 대상으로 한 주식 공부 콘텐츠 ‘샌타샤와 놈놈놈’을 지난 12일 처음 선보였다. 연합인포맥스는 지난 16일부터 평일 밤 9시 주식 시장과 금융 이슈를 다루는 생방송을 유튜브에서 진행하고 있다.
이런 열풍의 이유는 간단하다. ‘클릭수’가 나오기 때문이다. 게다가 취재원들도 최근엔 언론 인터뷰보다 유튜브 출연을 더 선호한다는 얘기가 있다. 특정 종목을 직접 언급하거나 추천하는 게 기사에선 금기시되지만 유튜브에선 가능하고 파급력도 더 크기 때문이다. 실제로 다수의 자산운용사, 증권사 등 관계자들이 유튜브 주식 관련 콘텐츠에 출연하거나 직접 채널을 운영 중이고, 그중 몇몇은 스타덤에 올라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취재원도 인터뷰보다 유튜브 선호... 일각 “언론사까지 투자 열풍 조장”
물 들어왔을 때 노 젓는 것이야 당연한 생리겠지만, 언론사까지 나서서 주식투자 열풍을 조장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 섞인 시각도 있다. 투자정보를 빙자해 주가 조작 세력이 형성될 가능성을 경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경제 관련 분야만 20년 가까이 취재해온 한 중견 기자는 “예전에 증권방송에서 전문가란 사람이 어떤 목적을 가지고 주식 추천을 하고, 그게 주가에 영향을 미치면서 문제가 된 적이 있다”며 “그런 사람은 늘 있었다. 자기가 막 떠들어서 사람들이 (주식을) 사서 주가가 올라가면, 그걸 이용하고 싶은 유혹이 있지 않겠냐”고 말했다. 실제로 몇 년 전 케이블TV의 증권방송에 출연해 자신이 미리 사둔 특정 종목의 주식을 매수하도록 추천하여 부당이득을 챙긴 투자전문가가 실형을 받은 일이 있었다. 며칠 전에도 한국거래소 시장감시위원회가 온라인카페(SNS) 리딩방을 이용한 사기적 부정거래 행위를 적발했다고 밝혔다. 거래소는 “최근 SNS(인터넷카페, 톡방 등), 유튜브 등을 이용한 불공정거래 발생 개연성이 증가하고 있다”며 “유명 인플루언서의 추천종목만을 맹신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나쁜 면만 부각해선 안 된다는 의견도 있다. 경제지 한 증권부 기자는 “대중은 무지몽매하고, 언론은 피리 부는 사나이처럼 그 사람들을 잘못된 길로 이끈다는 시각 자체가 이젠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용자들이 능동적으로 정보를 수집하는 시대에, 언론이 준엄하게 정반합을 얘기해주는 것만이 정답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면서 “똑똑한 개인들도 많고 자기 돈이 걸려 있는 일이기 때문에 열심히 한다. 이제는 시각을 달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언론사가 만드는 주식콘텐츠라면 다른 유튜버들과 차별화를 고민할 필요는 있다. ‘주코노미TV’를 진행하는 허란 한국경제신문 기자는 “우리의 경쟁력은 절대적으로 취재에 있다”고 했다. “업의 본질에 맞춰 콘텐츠를 만들면 유튜버와 경쟁해도 승산이 있고, 콘텐츠로서 우위에 있다”는 것이다. 주코노미TV가 투자전문가를 불러서 만드는 인터뷰 영상 대신 한국경제신문 기자들이 출연해서 취재 정보를 풀어내는 ‘오리지널 콘텐츠’ 제작에 힘을 쏟는 이유다. 허 기자는 “하반기만 돼도 사람들의 바깥 활동도 많아질 거고, 여행 시장이 열리면 유튜브도 예전만큼 많이 안 볼 것 같다. 따라서 다음 전략은 달라져야 한다”면서 “초창기 ‘양떼기’ 전략이었다면 이젠 퀄리티 전략이다. 고퀄리티 영상을 지속적으로 만들면서 구독자와의 소통을 통해 친밀감을 형성하고 신뢰 관계를 구축하는 방향으로 가려고 한다”고 말했다.
김고은 기자 nowar@journalist.or.kr
Copyright @2004 한국기자협회.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