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이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5·18 계엄군으로 빗댄 만평을 게재해 논란이 되고 있다. 매일신문은 해당 만평을 온라인에서 삭제하고 입장문을 냈지만 5·18민주화운동을 모욕했다는 비판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대구경북지역 일간지 매일신문은 지난 19일 정기 만평코너인 '매일희평'에 '집 없이 떠돌거나 아닌 밤중에 두들겨 맞거나'라는 제목의 만평을 실었다. '토지 공개념 독재'라는 설명과 함께 '재산세', '종부세', '건보료' 이름표를 단 무장 군인들이 '9억 초과 1주택자'를 곤봉으로 내리치는 모습이다.
만평은 1980년 광주에서 일어난 5·18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이 한 시민을 무력 진압하는 사진을 묘사했다. 재산세·종부세 인상 등 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9억 초과 집 한 채'를 소유한 시민들에게 무력을 가하는 것과 다름 없다는 취지를 표현한 것이다.
해당 만평을 두고 5·18민주화운동을 폄훼했다는 비판이 잇따랐다. 지난 19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5·18 민주화운동을 모욕한 매일신문을 처벌해달라'는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22일 오후 기준 2만3000여명이 동의했다. 더불어민주당 소속 대구 지방의원들과 민주당 광주광역시당, 대구경북지역 시민단체들도 비판 성명을 내고 매일신문의 사과를 촉구했다.
광주전남지역 일간지 전남일보는 22일 1면 머리기사 <'5·18 모욕' 신문 만평 일파만파… 청 국민청원까지>와 4면 전면에 배치한 기사, 사설 <정부 비판에 5·18 계엄군 폭력 빗댈일인가> 등을 통해 "(정부 정책과) 공수부대의 무자비한 폭행을 동일시하는 것은 5·18 광주 민주화운동에 대한 멸시와 오욕, 역사왜곡"이라고 비판했다.
이날 전남일보는 <매일신문 만평 논란, 처음 아니다> 기사에서 지난해 8월24일자 지면에 실린 매일희평 만평도 5·18 기록사진을 차용해 '광복절 집회를 허용한 법원에 폭행을 가하는 코로나 계엄군'을 묘사했다고 지적했다.
매일신문은 만평 게재 이튿날 온라인에서 이를 삭제한 뒤 21일 공식 입장문을 냈다. 매일신문은 만평 취지에 대해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 실패에 따른 재산세와 종부세, 건보료 인상의 폭력성을 지적한 것"이라며 "갑자기 집값이 급등해 세 부담이 폭증한 현실을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광주시민들에게 가해진 공수부대의 물리적 폭력에 빗댄 내용"이라고 설명했다.
청와대 청원인이 '만평 장면은 5·18민주화운동 정신을 정면으로 훼손하는 동시에 전두환 군사정권과 현 정부를 같은 수준으로 비유했다'고 지적한 것에 대해선 "동의할 수 없다"고 반박했다.
매일신문은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앞으로도 광주민주화운동과 그 정신을 폄훼할 의도는 추호도 갖고 있지 않다"며 "대한민국 현대사의 가장 아픈 기억인 광주민주화운동의 역사성과 무게감을 저희들도 전적으로 공감하고 그 아픔도 함께 하려 한다. 그런데 광주시민의 명예를 훼손하려 했다는 건 얼토당토않은 주장"이라고 했다.
매일신문은 광주시민들을 향해선 "이날 만평이 아물지 않은 상처를 다시 소환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고 정치적으로 왜곡되고 변질될 수 있겠다는 우려도 했다. 그래서 바로 그 다음날 인터넷에서 내린 것"이라며 "보도 취지와는 전혀 다르게, 광주시민들의 아픈 생채기를 조금이라도 건드리고 들춰낸 점이 있다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매일신문 관계자는 22일 기자협회보에 "만평 게재 당시 비판의 강도가 너무 세다는 의견은 있었지만 이런 문제까지 미처 고려하진 못했다"며 "매일신문 기자들도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그 아픔을 공유하고 있다. 광주시민들의 명예를 떨어뜨리거나 민주화운동을 폄훼할 의도는 전혀 없었다. 다시 한 번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매일신문 노조는 "광주시민들에게 머리 숙여 깊은 사죄를 올린다"며 재발 방지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약속했다. 전국언론노조 매일신문지부는 22일 발표한 성명에서 "이 만평은 넘어선 안 될 선을 넘었다"며 "여전히 누군가의 기억 속에 생생할 폭력적인 장면을 끄집어내 정권 비판의 도구를 삼는 것은 도를 넘어도 한참 넘은, 명백히 광주민주화운동 피해자와 유족들을 모독하는 행위나 다름없다"고 비판했다.
매일신문지부는 "매일희평이 광주민주화운동을 모욕한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8월24일자 만평도 계엄군이 시민을 폭행하는 모습의 사진에서 그대로 따와 논란이 되기도 했다"며 "누군가의 처절한 고통이 우리의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이 돼서는 안 된다"라며 만평 작가 교체를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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