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 경제지에서 <“누가 왕이 될 상?” AI 관상가가 본 윤석열·이재명> 기사를 냈다가 비판을 받고 “함량 미달”을 사유로 뒤늦게 삭제한 일이 있었다. 사주나 관상을 뉴스 재료로 삼는 일은 민주공화국 내 유권자에게 올바른 정보를 전달해야 할 언론의 역할에 비춰볼 때 명백히 옳지 않다. ‘킹메이커’로서 역할을 자처했든, 조회 수가 목적이었든, 언론으로서 합당한 방식은 아니었다.
미신을 뉴스 영역으로 가져와 기사로 써온 역사는 유구하다. 포털만 살펴봐도 대선·총선·지선 등과 관련해 약 20년 전에도 후보들의 사주 관상을 기사화한 뉴스가 있었다. ‘버닝썬’ 등 연예인 성폭력 사건이 터졌을 땐 ‘그럴 관상이었다’는 기사가 쏟아지기도 했다. 언론이 할 짓이 아니란 건 분명하지만 나는 사주나 관상이 어떤 형태로든 언론에 들어와 있었고 계속 읽혀왔다는 점에 주목하고자 한다. 여기 국내 언론이 디지털 전환 과정에서 고민할 한 방향이 깃들어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사주·관상과 비슷한 맥락에 놓이면서 여전히 신문에서 볼 수 있는 코너로 ‘오늘의 운세’가 있다. 이 코너가 콘텐츠로서 왜 인간에게 꾸준히 소구할 수 있는지는 모두가 안다. 현재 서울신문·세계일보·한국일보·매일경제는 본지에, 동아일보·조선일보·중앙일보는 별도 섹션지에 띠별 운세를 싣고 있다. 지난 2019년 왜 운세 코너를 유지하냐는 기자협회보 질문에 한 종합일간지 편집국장은 ‘나이 드신 고정 독자층이 상당하다’ ‘없애면 항의가 들어온다’고 답했다. 여전히 특정 연령층에 어필하는 콘텐츠란 의미다.
중요한 지점은 ‘운세’가 신문에서 점한 포지션이다. ‘운세’는 언론사가 제공하는, 얼마 남지 않은 ‘비뉴스 콘텐츠’다. 전성기를 구가할 때 신문은 사람들에게 콘텐츠 전부였다. 뉴스는 물론 연재소설·만화, 재미를 담당하는 예능, 교양, 문화 콘텐츠 모두를 제공했다. 지금은 나머지 역할을 모두 빼앗겼고 뉴스만 간신히 언론에 남았다. TV편성표나 운세 코너에 공을 들이는 곳은 없다. 간신히 유지되는 왕년의 흔적이지 시도의 자취가 더 이상 아니다.
이 맥락에서 뉴욕타임스(NYT)의 최근 시도는 흥미롭다. 2020년 4분기 기준 NYT의 전체 디지털 구독자(669만명) 가운데 비뉴스 구독자(160만명)의 비중은 23.92%다. 디지털 뉴스 구독 성장세가 5% 내외라면 2017년 이래 크로스워드, 게임류, 오디오, 쿠킹 등 비뉴스 구독 상품 성장률은 10%를 상회했다. 지난해 EA와 징가 등에서 일한 조나단 나이트를 게임 총괄 매니저로 영입하고, 롱폼 저널리즘을 읽어주는 구독 기반 오디오앱 Audm을 인수하기도 했다. 미디어전문지 미디어고토사는 최근 기사에서 “뉴스 상품의 구독은 일정 시점을 통과하면 플래토 구간에 진입할 수밖에 없다”며 “디지털 구독의 지속적인 성장을 위해 포트폴리오의 다각화를 추진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결국 국내 언론에 남는 질문은 이렇다. 디지털 전환에 관련해 언론사들의 노력은 충분했는가. 전성기 이후 뉴스 이외 콘텐츠 영역으로 지평을 확장하려는, 또 다른 ‘오늘의 운세’를 찾으려는 시도는 적극적이었나. 많은 노력이 있었다는 것은 알지만 우리 언론에서 사주·관상 기사나 보게 될 때 드는 생각은 ‘이게 다 무슨 의미인가’ ‘이럴 때가 아닌데’다. 현재 국내 언론의 여러 버티컬미디어나 뉴스 서비스 중엔 발전 가능성을 갖춘 곳들이 있다는 걸 안다. 문제는 세상이 더 빠르게 변하고 있다는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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