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분이 저기압일 땐 고기 앞으로 가라’는 말이 있다. 우스갯소리지만 그만큼 우리 사회 만연한 육식 문화를 잘 설명하는 말 중 하나이기도 하다. 이 공고한 문화에 균열을 내는 이들이 있다. 바로 채식을 지향하는 사람들이다. 양껏 고기를 먹기 위해 자행되는 대규모 살생과 기후변화의 주범으로 지목되는 공장식 축산을 없애기 위해 이들은 신념을 갖고 육식을 거부하고 있다. 특히 최근 기후위기 문제가 심각해지며 학교와 군대 등에서 채식 식단 제공이 공론화되는 등 사회 전반적으로 채식에 대한 관심과 지원 역시 활발해지고 있다.
기자 사회에서도 “옳은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나쁜 일을 덜 한다”는 마음으로 채식을 실천하는 이들이 있다. 박소영 TV조선 기자가 한 예다. 박 기자는 2016년 고양이를 반려동물로 맞으면서 자신이 애지중지하는 고양이와 다른 동물들이 본질적으로 차이가 없다는 생각에 1년 만인 2017년 여름, 고기를 끊었다. 처음에는 해산물과 계란, 우유 등은 먹는 ‘페스코 베지테리언’이었지만 이젠 그조차 먹지 않는 ‘비건’ 생활을 집에서나마 완벽하게 유지하고 있다. 박 기자는 “회식 자리 등 밖에서 먹을 땐 메뉴 선택권이 없어 해산물이나 계란 정도는 먹는다”며 “원칙은 내가 있는 자리에서 가장 폭력적이지 않은 음식을 선택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영경 경향신문 기자도 2018년 초부터 채식을 실천하고 있다. 평창 동계올림픽 당시 비건 패션을 접하고 이후 채식 기획기사를 쓰면서 어느 순간 더 이상 고기를 먹을 수 없었다고 했다. 이 기자는 “동물들이 공장식 축산시설에서 겪는 일들도 끔찍했지만, 도살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잔인한 노동 환경 속에서 인간성이 망가지는 모습이 충격으로 다가와 고기를 끊었다”고 했다. 같은 회사의 최미랑 기자도 지난해 2월부터 채식을 시작했다. 10년 전쯤 채식을 하다 사회생활 때문에 포기했는데, 기후위기 문제 등에 심각성을 느끼고 다시 채식을 결심했다. 페스코로 시작했지만 지난달부턴 계란과 우유도 먹지 않고 있다. 두 기자는 사내 다른 채식 지향 동료들과 함께 ‘경향채식회’를 꾸려 정기적으로 채식 식당 탐방도 하고 있다.
남들에게 불편 줄 수 있지만... 고기 소비 줄일 수 있다면
사람 만나는 게 일인 기자에게 다만 채식은 ‘난제’일 수밖에 없다. 코로나19가 확산하며 만남과 모임이 줄어든 요즘에야 채식 유지가 수월하지만, 그 이전이든 앞으로든 취재원과 만날 때나 선·후배와 식사할 때 매번 누군가는 불편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최미랑 기자는 “뭘 먹고 먹지 않는 걸 사람들은 보통 기호로 보기 때문에 남에게 그걸 요구하는 건 어려운 일”이라며 “남을 불편하게 만들거나 폐를 끼친다는 걸 감내해야 한다. 저는 취재원을 만날 때 피차 실례가 되지 않기 위해 채식을 한다는 사실을 밝히는데, 저 역시 상대방에게 혹시 알레르기나 건강상의 이유로 안 드시는 게 있는지 좀 더 물어보게 됐다”고 말했다.
박소영 기자도 취재원이든 회사 사람들에게든 채식을 한다는 사실을 밝히고 있다. 박 기자는 “처음에는 알리는 게 어려웠는데 저만 용기를 내면 저와의 식사 자리에선 고기 메뉴를 피하시니 다들 고기를 안 먹게 되더라”며 “제가 불편을 드릴 수도 있고 그런 시선도 받을 수 있지만 결과적으로 조금이라도 고기 소비를 줄이는 데 도움이 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게다가 몇 년 전만 해도 무수한 편견과 맞서야 했지만 지금은 많이들 공감을 해주신다”고 말했다.
육아나 경제적인 데서 오는 어려움도 작지 않다. 아이에게 채식을 강요할 순 없기에 실제 육아 도중 채식을 그만둔 기자들도 더러 있고, 채식에 관한 정보나 경험이 쌓이지 않으면 식비 역시 만만찮게 들 수 있어서다.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기획기사를 준비하며 지난달 2주간 채식을 체험했던 안지산 경남도민일보 기자는 “대체육은 육류보다 가격이 비싸고 또 채소, 과일 값이 오른 시기여서 그런지 평소 식비의 2배 정도를 사용했다”며 “취재, 마감 등에 쫓기는 상황에서 채식을 유지하기 위해선 그만큼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다”고 말했다.
완벽한 비건 1명보다 10명의 불완전한 비건이 세상을 바꾼다
그러나 이런 어려움을 감내하면서도 기자들은 그 이상의 변화를 경험했다고 했다. 먹고 싶은 대로 먹었던 과거와 달리 관리와 조율을 통한 식단을 통해 신체적 균형을 찾고, 정신적으로도 만족감을 느꼈다고 했다. 박소영 기자는 “제가 사회생활 막 시작하고 표면적으로 제일 말랐을 때 신체검사에서 내장지방 때문에 체지방 과다가 나온 적이 있다. 그런데 채식을 시작하고 나선 밸런스가 훌륭하다고 의사가 말할 정도로 신체적 효과가 있었다”며 “정신적으로도 밥을 먹을 때 다른 생명을 해치지 않는다는 즐거움이 크다”고 말했다.
지난해 9월 초부터 약 3개월간 채식을 경험하고 지난 1월 체험기를 썼던 하주희 월간조선 기자도 이 기간 자신의 식습관을 관찰하고 가공식품에 들어간 성분표를 보는 습관을 기르게 됐다고 했다. 하 기자는 “채식은 이제 단순히 식단의 문제가 아니다. 젊은 친구들 사이에 비건이 늘고 있고 이런 현상은 곧 사회나 세상을 보는 가치관이 달라졌다는 걸 의미한다”며 “단순히 육식이 싫다는 게 아니라 생명, 환경과 공존하자는 것이다. 이런 태도 자체는 분명히 우리가 주목할 점이 있다고 생각하고, 기자로서 이런 시각을 공유해보는 것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어떻게 채식을 시작해야 할까. 기자들은 단계적으로 기간을 두고 실천하되, 주위 조언을 많이 구하라고 입을 모아 말했다. 이영경 기자는 “채식 스펙트럼이 참 넓은데 ‘플렉시테리언’이라고 비건 지향이지만 상황에 따라 고기를 먹거나 ‘비덩’이라고 해서 고기 덩어리는 먹지 않고 고기를 우린 육수 정도는 먹는 사람들이 있다. 그 두 개념을 접하니 저도 처음에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처음부터 완벽하게 채식을 하려고 동물성 식품을 아예 먹지 않으면, 밥과 상추만 먹다 몸이 안 좋아져 포기할 수도 있다. 어차피 고기를 덜 먹자는 것이 우리의 목표니까 지속 가능한 수준으로 하면 된다”고 말했다.
하주희 기자는 “단백질을 어떻게 보충할 것인지가 관건이다. 저 같은 경우 두유나 두부를 아무리 먹어도 힘들었다”며 “자기에게 맞는 식물성 단백질 보충제를 찾고 나서 시작해보는 게 좋을 것 같다. 또 비건이 아닌 취재원과도 갈 수 있는 식당을 미리 가서 먹어보고, 목록으로 만들어두는 것도 추천한다”고 했다.
“이걸 먹어도 채식?”… 의외로 다양한 대체식
채식을 실천하는 기자들은 평소 무엇을 먹을까. 사실 고기만 먹지 않는 페스코 베지테리언만 돼도 먹을 수 있는 것이 많다. 굳이 채식 요리를 직접 만들 필요 없이 외식으로도 쉽게 한 끼를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생선회, 잔치국수, 조개나 새우가 들어간 파스타도 가능하고, 두부 요리나 가쓰오부시로 국물을 낸 샤브샤브 역시 먹을 수 있다. 최미랑 기자는 “인도 카레 전문점이나 태국 음식점에서도 좋은 선택지들이 있다. 중국집에서도 표고탕수나 마라가지, 또 식물성 짜장면과 짬뽕을 만들어주는 곳들이 있다”며 “샌드위치나 햄버거 프랜차이즈에서도 머쉬룸 버거나 베지 샌드위치 등을 판다. 다만 우유와 계란을 먹지 않는 비건 단계로 오면 간식까지 먹을 수 없는 것이 많기 때문에 밖에서 사먹는 건 제한될 수 있다”고 말했다.
시중에 파는 비건 관련 상품을 적극 활용하기도 한다. 최근 각종 기업에선 콩고기를 이용한 후라이드, 너겟, 함박스테이크, 만두 등 비건 관련 냉장·냉동 상품을 다양하게 출시하고 있다. 비건식 반찬을 배달해주는 전문 쇼핑몰이 생기는가 하면 비건 조미료부터 버터, 아이스크림까지 다양한 대체식이 선을 보이고 있다. 박소영 기자는 “비건 요리라고 해서 고기를 덜어낸다는 마이너스의 개념으로 보면 안 된다”며 “비건 재료들을 활용해 정말 맛있는 음식들을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채식에 관한 지식을 얻기 위해 기자들은 네이버 카페 등 커뮤니티나 채식 관련 카카오톡 오픈 채팅방, 어플리케이션 등을 이용한다. 내가 먹는, 또는 먹을 음식이 채식이 맞는지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고 채식 지향이 아닌 친구와 함께 갈 수 있는 식당까지 손쉽게 알 수 있어서다.
서울에 거주하는 기자라면 올해 초 서울시가 발간한 ‘서울시 채식식당 가이드북’을 활용해도 좋다고 기자들은 조언했다. 가이드북엔 서울시가 식재료·조미료에 동물성 성분을 첨가했는지 등을 면밀히 조사해 발굴한 채식식당 948곳의 내용이 담겨있다. 안지산 기자는 다만 “지역의 경우 채식식당이 많이 없다”며 “미리 채식 요리 레시피를 숙지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조언했다.
강아영 기자 sbsm@journalis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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