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랜스젠더 변희수 전 하사가 지난 3일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우리 공동체 일부가 자신의 ‘존재’를 부정당하고 결국 ‘사회적 타살’을 당한 이 사건 앞에 남겨진 과제가 적지 않아 보인다. 성소수자, 특히 트랜스젠더를 다뤄온 언론의 방식을 반성적으로 돌아볼 필요성이 크다.
국내 언론 전반에서 나타나는 성소수자 보도의 가장 큰 문제점은 ‘소극적인 의제화’다. 국내 1호 트랜스젠더 군인이자 군과 맞섰던 변 전 하사의 경우 그 화제성 때문에 많은 언론의 관심을 받아왔음에도 이벤트로서만 다뤄진 측면이 컸다. 한국언론진흥재단 뉴스 빅데이터 분석시스템 ‘빅카인즈’에 기사를 제공하는 54개 매체가 지난해 1월22일(최초 기자회견일)부터 사망 이후인 지난 7일까지 낸 기사 중 ‘변희수 하사’란 단어가 포함된 경우는 총 732건이었다. 하지만 같은 조건으로 기자회견일 이틀 후부터 사망 전일까지 살펴보면 기사 수는 341건으로 줄어든다. 이마저도 변 전 하사의 전역 취소 인사소청 기각, 이에 대한 행정소송 제기 기자회견 등 ‘사건’을 다룬 기사가 포함된 수다.
지속적인 의제화 여부를 엿볼 수 있는 ‘트랜스젠더’란 단어 포함 기사 수를 같은 기간 동안 세보면 매체별 격차가 도드라진다. 기사가 많은 쪽이었던 경향신문(143건), 한겨레(104건)는 인터뷰, 기획 등을 지속해온 반면 기사가 적은 축인 조선일보(38건), 동아일보(25건), 문화일보(15건)에선 문화예술 작품, 해외 유명 성소수자의 커밍아웃이나 정부요직 영입 관련 기사가 주를 이뤘다. 변 전 하사의 사망 후 주요 일간지 중 사설로 이를 다룬 매체 역시 경향, 한국, 한겨레, 서울 등에 불과했다.
미진한 의제화는 목소리 배제로 직결된다. 당사자들의 얘기 없이 타자화된 방식으로, 논란의 대상으로서만 성소수자가 다뤄지는 일은 흔하다. ‘선거’나 ‘퀴어 축제’ 시기에 갑자기 입길에 오르는 경우는 대표적이다. 미디어에선 접할 수 없는 트랜스젠더 등을 부정적인 사건사고와 연관해서만 접할 때 대중의 편견은 강화될 수밖에 없다. 권순택 언론개혁시민연대 활동가는 “미디어에서 성소수자를 접할 기회가 사람들에겐 거의 없다. 존재가 지워지니 ‘이태원 클럽’ 사건 같은 논란, 사망사건 등을 통해서만 얘기가 된다. 기본적으로 함께 같은 공간에서 숨 쉬며 살아가는 존재라는 걸 시민들이 인지하지 못하게 되는 건데 이 구조를 바꾸지 못하면 문제는 계속 될 것”이라고 했다.
LGBT를 다루는 언론들이 여전히 무지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여성주의저널 ‘일다’는 지난해 말 <엘리엇 페이지의 커밍아웃 다룬 언론보도의 문제점> 보도를 통해 “남자 됐다” “커밍아웃 이어 성전환” 표현을 담아 트랜스젠더에 대한 오해와 편견을 부추긴 국내 언론보도를 지적했다. 실제 ‘트랜스젠더’는 신체적으로 드러나는 성별과 본인이 인식하는 성별이 다르다고 느끼거나, 불일치하거나, 불편하다고 느끼는 사람을 의미할 뿐이다. 남자란 선언도 아니고 수술을 통해 성전환을 하겠다거나 했다는 의미도 아니다.
미국 성소수자 미디어 운동단체인 GLAAD는 트랜스젠더 묘사 시 ‘정확한 용어 사용’ ‘커밍아웃 이야기를 넘어선 주목’ ‘남자로 태어난 같은 단순화와 표현 지양’ ‘화장, 면도 같은 외양 묘사 피하기’ ‘비트랜스젠더 이야기와 함께 다루기’ 등을 제안하고 있다. 기사를 쓴 박주연 일다 기자는 “트랜스젠더 개념은 여전히 변화되고 확장되고 있는데 해오던 방식으로 다뤄선 안된다. 성소수자들은 이성애 중심 사회에서 그들을 설명할 언어가 원래 없었던 이들이기에 자신을 표현할 정확한 언어가 누구보다도 중요한 사람들”이라고 했다.
개선에는 언론사의 노력 이상이 필요하다.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가 지난달 공개한 ‘트랜스젠더 혐오차별 실태조사’에 따르면 설문참여 590명 중 지난 12개월 간 인터넷에서 혐오표현을 접한 경우는 97.1%, 언론에선 87.3%, 영상매체에선 76.1%였다. 심의기관이나 플랫폼 사업자의 혐오표현 규제 또는 가이드마련이 요구된다. 연구를 진행한 홍성수 숙명여대 법학부 교수는 “기사에 붙은 댓글을 하나의 세트로 보는 인식이 크고 여긴 여전히 노골적인 혐오가 난무한다. 언론이 단순히 우리 문제가 아니라고 해선 안 된다”고 했다.
그는 “트랜스젠더를 주인공으로 하거나 등장인물 중 하나가 트랜스젠더인 드라마 등을 통해 일상을 사는 동료시민의 하나로서 조명되고 더 가시화돼야 한다”고도 했다. ‘스포츠경기에 참여한 트랜스젠더’ 등 야기될 논란 등에 대해선 “기존 양성 이분법 체제에 균열이 생기는 것이기에 혼란이 없을 순 없다. 하지만 불가피한 혼란이자 과제일 뿐”이라며 “IOC만 해도 스포츠선수(선천적으로 남성이고 스스로 여성으로 인식할 경우 남성 호르몬 수치 기준치 이하 입증)에 대한 대책을 마련했다. 의외로 남녀가 명확히 구분돼야 할 공간은 많지 않다. 화장실과 군대 등에 대해서도 먼저 혼란을 겪은 나라들은 자체 기준이 있다. 별 일 아니란 걸 잘 소개하고 알리는 게 중요한 과제”라고 했다.
결국 문제는 ‘정치’로 돌아온다. 지난해 변 전 하사를 인터뷰하고 지난 5일 <‘차별 없는 세상’ 변희수의 꿈을 이룰 수 있을까요?> 기사를 쓴 김종철 한겨레 선임기자는 이날 기자협회보와 통화에서 “지난달 초 문자를 했다가 ‘앗… 넴넴 잘 지내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란 답을 받아 ‘잘 있구나’ 했다. 봄이 되면 점심이라도 사야겠다 했는데 비보를 듣게 됐다”고 했다. 그는 “마음이 아팠고 슬픔과 분노가 같이 왔다. 인권위 권고에도 요지부동이던 군과 정부, 다수 의석으로도 차별금지법을 국회 상임위에 상정조차 하지 않는 여당, ‘안 볼 권리도 있다’는 정치인의 혐오발언이 변 하사를 죽음으로 몰고 간 것”이라며 “더 힘이 되지 못해 후회가 든다”고 부연했다.
최승영 기자 sychoi@journalis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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