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엔 모두가 곧 끝날 거라고 생각했다. 이제는 상황이 언제 나아질 지 아무도 모른다. 더 괴로운 사실은 희망이 거의 없는 채로 이 시기를 견뎌내야 한다는 것이다.” 브라질 전국 27개 주 정부의 보건국장들이 참여하는 협의회 대표가 한 말이다.
남미대륙의 거의 절반을 차지하는 브라질이 ‘코로나19 혼돈’에 빠져 있다. 이 나라 보건부 집계를 기준으로 누적 확진자는 2월18일 1000만명을 넘어섰고, 그로부터 1주일 후 누적 사망자가 25만명을 돌파했다. 3월 첫 주말 뉴스의 헤드라인은 1주일 사이에 1만명 이상 숨지면서 누적 사망자가 26만4000여명으로 늘었고 누적 확진자가 1100만명에 육박한다는 우울한 내용이었다. 의료진과 병상, 의료용 산소 부족에 변이 바이러스까지 유행하면서 브라질은 코로나19 확산의 새로운 진원지이자 중남미 지역의 골칫거리가 되고 있다.
‘대통령의 언어’가 코로나19 사태 악화를 부추긴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현실을 무조건 부정하는 자이르 보우소나루 대통령의 발언과 행태가 방역 전선에 혼란을 초래하고 피해를 키운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사태 초기에 대통령은 코로나19를 ‘가벼운 독감’이라고 우겼다. “코로나19는 내리는 비와 같아서 전체 국민의 70% 정도가 젖어야 항체가 생겨 사태가 진정될 것”이라는 말도 했다. 물론 과학적 근거는 없었고, “코로나19는 가벼운 독감이 아니라 심각한 질병”이라는 세계보건기구(WHO)의 충고는 가볍게 무시됐다.
코로나19가 빠르게 퍼지자 이번엔 언론에 화살을 돌렸다. 코로나19 공포감이 커지는 것을 ‘언론의 히스테리’로 몰아붙였고, 지지자들에게 “코로나19가 언론에 의해 증폭되고 있다. 언론이 만든 패닉에 빠질 필요가 없다”는 말도 했다.
이후에도 대통령의 비상식적 언어는 이어졌다. 사망자가 25만명을 넘은 2월25일에는 소셜미디어(SNS) 동영상을 통해 마스크 착용과 봉쇄 강화가 코로나19 억제에 효과가 있는지 의문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마스크 착용이 어린이들에게 불안감, 두통, 집중력 저하 등을 유발한다는 조사 결과를 인용했으나, 이 조사는 표본이 크지 않아 신뢰성이 떨어지고 현실을 왜곡한다는 지적을 받았다. WHO와 브라질 의료단체들이 즉각 반박에 나서면서 대통령은 망신을 자초한 셈이 됐다.
백신 접종도 더디게 이뤄지고 있다. 대통령의 중국에 대한 거부감은 초기에 백신을 확보하는 데 걸림돌이 됐고, 뒤늦게 경쟁에 뛰어들었으나 사실상 여기저기서 백신을 구걸해야 하는 입장이 됐다. 올해 안에 전 국민에게 백신을 접종하겠다는 보건장관의 말을 믿는 사람은 별로 없다. 다급해진 주지사들이 “백신 접종만이 해결책”이라며 국제사회와 협력해 백신을 최대한 확보해야 한다고 촉구했으나 대통령의 반응은 “어리석은 자들이 백신을 사달라고 조른다. 언제까지 징징대기만 할건가”였다.
‘대통령의 언어’는 분노를 부르고 있다. 좌파 정당과 노동계, 시민단체들은 대규모 반정부 시위를 예고했다. 코로나19 억제를 위한 전국적 봉쇄와 신속한 백신 접종, 공공의료 시설의 병상 확대, 긴급재난지원금 지급 연장 등을 내걸었다. 대통령 탄핵을 촉구하는 목소리도 크게 들릴 것으로 보인다. 상파울루와 리우데자네이루 등 대도시에서는 냄비나 프라이팬, 주전자 등을 두드리며 ‘보우소나루 아웃’을 외치는 시민들의 자발적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보우소나루 대통령의 이름을 본뜬 ‘보우소카루’(Bolsocaro: ‘caro’는 포르투갈어로 ‘비싸다’는 뜻) 캠페인도 벌어지고 있다. 코로나19 사태 속에서도 생필품을 포함해 물가가 급등하는 데 대한 시민들의 집단적 항의의 표시다.
2019년 초 보우소나루 대통령 정부 출범 이후 ‘증오 내각’이라는 표현이 언론에 자주 등장한다. 보우소나루 정부에 반대하는 세력을 공격하기 위해 대통령 주변에서 활동하는 측근 그룹을 일컫는 말로 사용된다. 이들의 공격 대상은 정치적 성향을 가리지 않으며, 대통령의 뜻을 거스르면 모두 적으로 간주하는 행태까지 보인다. 코로나19가 확산하면서 고개를 드는 대통령 책임론에 부르르 떠는 이유다. 코로나19 확산을 남 탓으로 돌리는 발언도 이런 분위기에서 나온다. 대통령의 시선은 2022년 대선에 맞춰져 있다. 정치 전문가들은 분열과 갈등으로 지지세력의 결집력을 높이는 전략을 우려한다. 코로나19가 심각해질수록, 경제에 스태그플레이션(불황 속에서 물가가 치솟는 상황) 경고등이 선명해질수록 ‘대통령의 언어’는 거칠어지고 ‘증오 내각’에 힘이 실릴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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