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부터 피신시켜야 하는 거 아냐.”
코로나19 얘기인줄 알았다. “매일 1만명 가까이 확진자가 나오고 있으나 조심하고 있다”고 답했다. 웬걸, 지난달 수화기 너머 선배의 짐짓 진지한 걱정은 예상 밖이었다. “자카르타가 물에 잠긴대.” ‘아직 멀었다’는 요지로 설명한 뒤 전화를 끊었다. 공교롭게도 며칠 뒤 쏟아진 폭우로 자카르타 일부 도심이 실제 물에 잠겼다.
강 13개가 교차하는 늪지대 해안에 위치한 자카르타는 도시 일부가 60㎝가량 침몰한 상태다. 상수도 보급률이 60%에 불과해 곳곳에서 지하수 개발이 계속되면 120㎝ 넘게 내려앉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북부 자카르타는 최근 10년간 2.5m 정도 가라앉아 해수면 아래에 있다. 지금도 매년 1㎝ 이상 낮아지고 있다. 우기엔 홍수에 시달린다. 기후변화에 의한 해수면 상승(연 4~6㎝)까지 겹쳐 자카르타는 세계에서 가장 빨리 침몰하는 도시 중 하나(세계경제포럼)다. 이는 수도 이전의 주요 명분으로 꼽힌다.
사실 인도네시아가 수도를 옮겨야 하는 이유는 차고 넘친다. 시내 차량 주행속도는 시속 8~10㎞, 교통 체증으로 인한 생산성 손실은 연간 70억달러(약 8조3000억원)에 달한다. 1000만 도시 자카르타의 인구밀도는 ㎢당 1만5000명으로 인도네시아 전체 평균(140명)의 100배가 넘는다. 폐수는 약 4%만 처리돼 지하수와 도시를 오염시키고 있다. 지역 균형 성장을 위해서도 자카르타의 인구 과잉은 풀어야 할 숙제다.
조코 위도도(조코위) 대통령은 재선이 확정된 직후인 2019년 8월 수도 이전 부지를 공식 발표했다. 넉 달 뒤 취재를 위해 칼리만탄섬 신(新)수도 부지를 찾았다. “밀림만 잔뜩 볼 것”이라는 주변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 이틀간 길이 끊기거나 막힌 곳까지 훑은 덕에 신수도 위치를 구체적으로 파악했고, 뜨거운 현지 분위기를 체감했다. 인근 땅값은 10배 이상 올라 있었다. 보상용 마을을 만들기 위해 이슬람사원을 짓는 곳도 있었다. 마을을 벗어나면 자갈길이 펼쳐졌지만 신수도 부지를 감싸는 2차선 도로는 확장 및 보수 공사가 한창이었다. 조코위 대통령의 대선 경쟁자 프라보워 수비안토 국방장관이 사용권을 가진 농장 일부가 신수도 부지에 포함된 것도 확인했다. 수도 이전의 정치적 동력인 셈이다. 조코위 대통령은 기자가 다녀간 며칠 뒤 현장을 방문했다.
다만 두 가지 걱정이 앞섰다. ‘근방 삼림보호구역과 오랑우탄 서식지는 온전할까, 공사 연기가 일쑤인 나라에서 완공을 제때 할 수 있을까’ 하는 물음은 현지에서도 나왔다. 조코위 대통령은 “녹색 수도 건설” “2024년 신수도 집무실에서 업무” 의지를 앞세워 부정 여론을 잠재웠다.
작년 초까지만 해도 분위기는 좋았다. 손정의, 아랍 왕자 등 세계적인 큰손들이 앞다퉈 투자를 약속했다. 본보기 1호로 우리나라 세종이 언급되기도 했다. 그러나 코로나19 사태가 이 땅에 닥친 3월부터 이상 신호가 감지되더니 7월 착공이 물 건너갔다. 큰손들도 발을 뺐다. 부처 간 엇박자, 주도권 다툼까지 겹치면서 부지 위치도 오락가락했다. 공무원들은 이전 반대 속내를 드러냈고, 조코위 대통령의 남은 임기를 감안하면 이번에도 어렵다는 분위기가 팽배했다.
그나마 올 초부터 긍정적인 신호가 보이기 시작한다. 신수도 관련법이 국회 우선 처리 목록에 잡혀 7월 통과가 예상되고, 신설 신수도부 장관이 내정됐다는 소식이 들린다. 국부펀드 활용 등 구체적인 재원 마련 계획도 거론된다. 조코위 대통령 역시 의지를 꺾지 않고 있다. 현재로선 올해 7월이 인도네시아 수도 이전 여부를 판가름할 분수령이다.
우리나라의 역할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다른 나라들이 외면하는 동안 우리는 작년 2월부터 전문가 3명(최형욱, 임채욱, 윤희엽)을 파견해 인도네시아 정부를 상대로 지식 공유, 한국식 성공 모델 전파, 민관협력사업(PPP) 제안 등을 묵묵히 수행하고 있다. 현지 진출 한국 기업들과 관계 기관이 팀 코리아도 꾸렸다. 당장 돈이 되지도, 누가 알아주지도 않지만 인도네시아의 60년 난제를 풀기 위해 함께 고민하고 있는 것이다. 인도네시아 수도 이전은 우리에게도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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