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의 탄핵이 남긴 것들

[글로벌 리포트 | 미국] 이태영 텍사스대 저널리즘 박사과정

이태영 텍사스대 저널리즘 박사과정

▲이태영 텍사스대 저널리즘 박사과정

지난 13일 미국의 40년 전통 코미디쇼 SNL(Saturday Night Live)은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두번째 탄핵 기각에 관한 내용으로 오프닝을 채웠다. 보수성향의 폭스뉴스 채널에서 방영되는 토크쇼(Tucker Carlson Tonight)를 패러디해, 진행자인 터커 칼슨이 린지 그레이엄, 테드 크루즈 상원의원 등을 인터뷰하는 내용이었다. 정치 풍자가 단골 소재인 SNL에서 방송 당일 결정된 탄핵심판을 다룬 것이 놀랄 일은 아니다. 특히 지난 정권 동안 알렉 볼드윈의 트럼프 모사로 다시 한 번 명불허전의 정치 코미디쇼로 자리매김한 것을 감안하면, SNL에서 탄핵 심판을 다루지 않는 것이 도리어 이상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SNL이 지난달 트럼프 퇴임 이후 정치적 소재의 오프닝과 거리를 둬 온만큼 이는 언론과 시청자들의 주목을 받았다.


내란 선동 혐의로 추진된 트럼프 전 대통령에 대한 두번째 탄핵안이 상원에서 부결됐다. 이로써 트럼프 전 대통령은 임기 중 두 번이나 하원에서 탄핵된 첫 대통령이 됐다. 퇴임 후 상원에서 심리가 이뤄진 것도 처음이며, 상원에서 두 번 다 구제된 첫 사례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대통령의 탄핵 사유로 내란 선동(incitement of insurrection) 혐의가 제기된 것은 미국 헌정 사상 초유의 일이다. 그는 대선결과에 대한 불복을 주장하며 지지자들에게 의회 난입을 선동한 혐의로 임기 만료 1주일을 앞두고 하원에서 탄핵됐다.


상원에서 탄핵안이 부결될 것이라는 점은 예견된 결과였지만, 이로 인한 여파는 결코 작지 않아 보인다. 탄핵심판 과정에서 생중계된 10여분 상당의 의회 난입 영상은 미국의 민주주의가 무참히 훼손되는 장면을 국민들에게 적나라하게 보여줬고 깊은 트라우마를 남겼다. 이를 보고도 탄핵안을 부결시킨 공화당 의원들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 또한 예상된다. 법적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워진 트럼프가 본격적으로 차기 대선을 향한 정치적 행보를 시작할 가능성도 점쳐진다. 실제로 트럼프는 부결 직후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큰 마녀사냥의 하나였다”고 탄핵심판을 비난하며 정치 복귀를 암시했다. 공화당 상원의원 7명이 탄핵에 찬성하는 초당파적 선택을 했음에도, 탄핵심판을 계기로 한 미국 내 양극화와 분열은 더욱 심해질 것으로 보인다.


“민주주의는 버티고 설 토대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 토대는 바로 진실이다.” 제이미 래스킨 하원 탄핵소추위원장이 상원에서 탄핵소추 심리를 열며 한 말이다. 그는 “누군가는 이 재판이 변호사 혹은 정당 간의 싸움이라고 생각하겠지만 둘 다 아니다. (이 재판은) 미국을 위한 진실의 순간” 이라고 말한 뒤 자신의 부친의 말을 빌어 민주주의에서 진실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트럼프 취임 이후 미국 사회는 당파적 갈등을 넘어 각자 다른 진실을 두고 분열해왔다. ‘탈진실(post-truth)’ ‘대안적 사실(alternative fact)’과 같은 어휘들이 유행한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진실의 순간은 결국 같은 사실을 보고도 다르게 인식한 각자의 진실 앞에 무력했다.


정치 풍자는 전통적으로 불편한 진실을 웃음과 함께 에둘러 비판하는 공적 담론의 하나다. 비록 과장과 해학이 담기긴 했지만 사회적 진실에 다가가려는 목적이 있다는 점에서 저널리즘과도 많은 속성을 공유한다. 바이든 정부는 취임 이후 트럼프 이전의 상식과 사회적 진실을 회복하고자 노력해왔다. SNL이 최근 풋볼과 같은 비정치적 소재로 오프닝을 대신했던 것도, 이전 정부와 비교해 마땅히 풍자할 만한 소재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탄핵안 부결을 계기로 SNL이 노선을 선회한 것처럼 다시 정치 풍자의 황금기가 도래하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공화당에 대한 트럼프의 영향력과 탄핵안 부결로 그의 재선 출마가 가능해지면서 이런 지적이 어쩐지 설득력 있게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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