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선기자·데스크 불통 드러난 '한겨레 성명'
[한겨레, 오늘 사내 토론회 열기로]
정치권에까지 공방 이어지며 확전
익명의 '성명 반박글'로 다시 논쟁
편집국장 "제도 개선안 마련할 것"
한겨레신문 현장기자들이 낸 자사 법조보도 비판 성명서는 지난 한 주간 언론계 안팎에서 큰 이슈였다. 한겨레에선 성명의 대상인 사회부장과 법조팀장이 보직을 사퇴했고, 성명에 언급된 오보에 대해 뒤늦게 회사 차원의 공식 사과문이 나왔다. 성명 내용은 언론계 세대 간 논쟁거리로 비화하는가 하면 정치권으로도 번져 검언유착 의혹 논란까지 불렀다. 후폭풍을 겪은 한겨레는 성명이 제기한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구성원들이 참여하는 토론회를 열기로 했다.
한겨레 기자 41명은 지난달 26일 ‘법조기사가 친정부적으로 쓰인다, 현장기자들과 데스크의 소통이 원활하지 않다’ 등 내용을 담은 성명서를 편집국 구성원들에게 이메일로 전달했다.
기자들은 “무리한 정권 편들기로 오보를 냈다”면서 이용구 법무부 차관의 택시기사 폭행 논란을 다룬 기사를 지적했다. 해당 보도는 ‘사건이 검찰에 송치됐어도 특가법을 적용하기 어렵다’는 취지였는데, 사실관계가 틀린 자료를 근거로 삼았다. 성명에 따르면 “(당시) 추미애 법무부 장관 라인 검사에게 받은 자료를 확인도 하지 않고 받아써 준 결과”였다.
성명 전문이 타사 언론보도로 공개된 뒤 정치권에서도 이 사안이 거론됐다. 기자들의 문제 제기 자체가 정치 이슈화됐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지난달 28일 비상대책위 회의에서 “한겨레 일선 기자들의 용기에 비로소 추 전 장관의 검언유착 의혹이 한 꺼풀 벗겨지고 있다”며 “추 전 장관과 (자료를 건넨 추라인 검사로 지목된) 이종근 검사장은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용구 차관’ 기사를 둘러싸고 논란이 커지자 한겨레는 이날 공식 사과문을 냈다. 한겨레는 “해당 보도는 사실관계를 충분히 확인하지 않았고 사안의 본질과 정확한 진실을 전달하는 데 미흡했다”며 “결과적으로 맥락을 왜곡, 오도할 수 있었다는 점도 부인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지난해 12월21일 보도 이후 한 달여 만의 사과였다.
이튿날에는 한겨레 내부 인사가 익명으로 작성한 성명 반박글 ‘젊은 기자들의 성찰을 바랍니다’가 언론계에 공유돼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이 글에 동조한 강기석 뉴스통신진흥회 이사장은 자신의 SNS에 “한겨레 현장기자들은 공정성을 전혀 다른 시각에서 바라보고 있다”고 공개 비판하기도 했다.
성명에 이름을 올리지 않은 한겨레 한 구성원은 성명을 향한 안팎의 비판에 “성명 반박글은 한겨레 고참기자들의 공통적인 의견도 아니고 한 사람이 자기 생각을 노조게시판에 밝힌 것이다. 오히려 회사 외부와 정치권에서 해석을 크게 하면서 문제를 키우는 것 같다”며 “한겨레에는 누구나 자기 입장을 내고 성명을 쓸 수 있는 문화가 있고, 이번 성명도 기사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불거진 문제를 제기하는 수단 중 하나라고 본다”고 말했다.
임석규 한겨레 편집국장은 기자들의 성명에 입장문을 내고 대화 자리와 함께 내부 목소리를 콘텐츠에 반영할 수 있는 제도와 기구, 조직 등을 마련하겠다고 약속했다. 임 국장은 지난달 28일 “(임기 10개월 동안) 특정 정당, 정치세력을 이롭게 하려는 목적으로 기사를 다루지 않았다는 점만은 분명하게 말씀드릴 수 있다”면서 “콘텐츠 최종 책임자로서 현장기자들의 성명을 무겁게 받아들이며, 공정 보도를 위한 후속 조처를 책임 있게 추진하겠다”고 했다.
한겨레는 성명에 따른 사내 토론회를 3일 개최할 예정이다. 성명에 참여한 한 기자는 “몇 달째 노조가 공석이고 사내 소통데스크 역할도 축소된 상황이라 저희 목소리를 전할 수 있는 통로로 성명을 택했다. 이런 대화에 열린 조직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 기자는 “문제 해결의 가장 큰 걸림돌은 내부가 아니라, 정당한 문제 제기인데도 정치적 논쟁이나 신구 갈등으로 치부하는 타사의 보도 행태”라며 “그런 태도가 저희뿐 아니라 언론계 전반에서 젊은 기자들이 자기 목소리를 내는 데도 악영향을 끼칠 것 같아 우려스럽다”고 했다.
김달아 기자 bliss@journalist.or.kr
김달아 기자의 전체기사 보기Copyright @2004 한국기자협회.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