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기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지난달 29일 3년의 임기를 마치고 물러났다. 그러나 5기 방통심의위는 몇몇 인사들의 내정설만 파다할 뿐 아직 추천 절차도 마무리되지 않아 출범까지 장기간 공백이 생길 가능성도 있다. 앞서 4기 방심위는 7개월이나 지각 출범했고, 3기 방심위도 출범까지 한 달간의 공백이 있었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는 지난 1일 전체회의를 열어 방심위 추천 건을 논의할 예정이었으나, 여야 간사 협의로 안건 상정은 미뤄졌다.
방심위는 형식상 ‘민간 독립기구’이지만 방송사 재허가·재승인 심사에 영향을 미치는 보도·방송 프로그램 심의뿐 아니라 광고 심의, 인터넷 게시글과 사이트 차단까지 전 방위적인 규제 업무를 수행한다. 이 때문에 2008년 출범 이래 ‘방송 길들이기’ 시도에 방심위가 도구적으로 활용되기도 했고, 이를 위해 정치권에서 ‘자기 사람’을 밀어 넣으려는 시도도 끊이지 않았다. 방심위원으로서 직무를 수행하다 특정 정당에 공천을 신청하거나, 반대로 낙천·낙선 인사가 방심위원으로 추천되는 일이 벌어지는 것도 이런 배경과 무관치 않다. 방심위의 정치적 독립을 위해 여야가 6대3으로 나눠서 위원을 추천하는 방식부터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 지 오래지만, 이에 관한 논의는 정치권은 물론 언론시민단체들 사이에서도 크게 주목받지 못하고 있다. 이번에도 여야 추천 인사로 특정 단체나 특정 정당 인사가 거론되자 서로 상대 진영을 향해 ‘편향 인사’라고 손가락질만 하는 형국이다.
4기 방심위를 이끈 강상현 위원장은 이임사에서 “심의의 공정성과 심의 업무의 독립성을 기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위원 구성에 있어 정치권의 개입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치권 인사들이 오면, 모든 것을 정치적 관점에서 당리당략의 눈으로만 보게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치권 출신 인사가 아니더라도 추천 정당이나 주체에 따라 정치적 성향이 나뉘는 것도 사실이다. 강 전 위원장은 4기 위원회에서 ‘정치심의’ 등의 비판은 듣지 않았다고 자부했지만,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에서 위원 간 합의제 원칙 대신 다수당의 입장이 관철된 사례도 있었다. 대표적인 것이 KBS ‘뉴스9’의 정경심 교수 자산관리인 보도에 내린 중징계였다. 특히 특정인의 의견 진술만 믿고 제재 수위를 높이는 등 절차상 오류를 범하기도 했다.
지난해 10월엔 “한글 파괴에 앞장섰다”며 예능 프로그램들에 무더기 법정 제재를 예고했다가 반발을 사고 행정지도로 수위를 낮춘 적도 있다. ‘과잉심의’의 대표적 사례다.
물론 4기 방심위 들어 양성평등 관련 심의가 늘어나고, 디지털성범죄심의소위원회가 출범해 디지털 성범죄 피해에 신속히 대응하는 등 성과도 있다. 그러나 ‘허위조작정보 엄정 대응’을 이유로 통신심의가 강화되면서 부작용은 없는지 등 생각해볼 지점도 있다. 또한 ‘규제 사각지대’에 있는 라이브 커머스 등 미디어 환경 변화에 따라 대두되는 새로운 이슈에 대응해야 할 과제도 남았다. 강상현 전 위원장은 “방송통신 기술과 미디어 환경은 날로 새로워지고 있는데 이러한 변화를 심의가 제대로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하며 “특히, 개인방송이나 OTT, 미디어커머스와 같은 방송과 통신의 경계영역 혹은 신융합 서비스에 대해 어떤 내용 규제를 가져가야 할지, 좀 더 거시적인 규제 로드맵 설정이 아쉽다”고 말했다.
김고은 기자 nowar@journalis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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