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어진 미국 언론사 내 디지털 유리천장

[글로벌 리포트 | 미국] 신현규 매일경제신문 실리콘밸리특파원

신현규 매일경제신문 실리콘밸리특파원

▲신현규 매일경제신문 실리콘밸리특파원

필자가 있는 미국 실리콘밸리는 지금 개발자와 데이터 사이언티스트를 구하는 것이 매우 어렵다. 최고의 명문대학을 나온 것도 아니고 사회 무경험자인데도 개발자를 채용하려면 최소한 연봉 1억2000만원 이상은 줘야 하니 회사 입장에서는 부담이 있다. 미국 노동통계청이 내놓은 자료를 보면 지난해 컴퓨터공학 관련 인력은 140만명 가량이 모자랐다고 한다. 이 상황은 올해도 내년도 계속될 것 같다.


당연히 미국 언론사들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2010년 초반부터 미국 언론에도 디지털 전환의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서 개발자들을 채용하려는 움직임들을 보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문제는 천정부지로 치솟은 개발자들의 몸값이었다. 저널리즘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구성요소인 기자들의 몸값에 비해 더 높은 연봉을 받아야 하는 그들을 기자사회가 용납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디지털 기반으로 시작한 실리콘밸리의 테크 언론사 ‘더인포메이션’도 개발자 채용과 유지가 가장 힘든 일이라고 털어놓는다.


그나마 명성이 있는 뉴욕타임스 같은 언론사들에는 뛰어난 이들이 입사했다. 하지만 심지어 그 뉴욕타임스 같은 곳에서 개발자들은 뉴스룸에 녹아들기 어려웠다. 2014년 발간됐던 뉴욕타임스의 혁신보고서를 보면 기자들이 개발자들을 보고 “당신들은 영업 쪽에서 온 사람들이니” 환영하지 않겠다는 뜻을 표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디지털 유리천장’은 분명히 존재했고, 그 두께는 모르긴 몰라도 미국-한국 어느 나라 언론사에서건 비슷했을 거라 생각한다.


6년이 지난 지금, 우리가 이름을 알고 있는 미국 언론사들의 상황은 어떨까?


조사를 해 봤다. 미국은 개발자와 기자들의 연봉이 비교적 투명하게 공개돼 있다. ‘글래스도어’라는 사이트 한 곳에만 들어가도 회사의 연봉이 대략 보이는데, 뉴욕타임스 같은 경우 개발자의 연봉(11만9000달러)이 편집자의 연봉(11만4000달러)을 넘어섰다. 워싱턴포스트와 월스트리트저널의 경우도 개발자(9만달러) 기자(8만달러)로 개발자가 많다. 디지털 활용을 많이 하고 있는 쿼츠, 엑시오스 등과 같은 매체들은 개발자(12만~12만 5000달러)가 기자(6만~6만 2000달러)보다 2배 가량 많은 연봉을 받는다. 뉴스룸의 권력은 여전히 기자가 잡고 있는지 몰라도, 적어도 연봉으로는 개발자들이 기자를 넘어섰다.


당연한 현상이다. 오늘날 최고의 개발자들이 언론사에 합류해야 할 이유는 너무나 명백한데, 그 개발자들이 언론사에 자발적으로 발을 들여놓을 이유는 전혀 없기 때문이다. 언론사가 아니라도 훌륭한 대우와 훌륭한 동기부여를 해주는 조직이 수두룩 한데 입사 이후 자신이 할 수 있는 일도 제한돼 있고 연봉도 제한돼 있다면 입사를 할 이유가 있을까? 미국 언론사들은 연봉이라도 높이 주는 방법 외에는 답이 없었을 것이다.


이 현상이 한국 언론계에 시사하는 점은 무엇일까. 결국 한국의 기자들도 개발자와 디자이너들과 함께 일하는 데 익숙해 질 수밖에 없다는 현실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닐까 한다. 과거에는 기자가 혼자 글도 쓰고 그림도 그리고 편집도 하던 모습이 뉴스룸의 풍경이었다면, 앞으로는 기자가 기획하고 디자이너가 그림을 그리고 개발자가 이를 고객에게 맞는 형태로 구현해 내는 모습으로 변화해 나가지 않을까. 아날로그 악기가 있던 시절에는 혼자서 북 치고 장구 치고 피아노 치면서 노래도 부를 수 있었지만, 전자악기가 도입되고 난 이후에는 기타, 드럼, 베이스, 보컬 등이 나뉘어서 밴드가 구성돼야 했던 것처럼, 신문과 방송을 생산하기에 최적화되어 있었던 컨베이어벨트 같은 뉴스생산방식 역시 새로운 시대에 맞게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그런 길을 열어가는데 있어서 디지털 유리천장이 걸림돌이라면 그건 과감히 깨야 하는 게 맞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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