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완서 작가의 저작들은 2011년 1월22일 작가가 타계한 이후 매년 기일 즈음 새 옷을 입고 다시 세상에 나온다. 올해는 10주기를 맞아 맏딸 호원숙 작가의 에세이 ‘엄마 박완서의 부엌 : 정확하고 완전한 사랑의 기억’이 나와 반가움을 더했다. 개정판을 검색하던 중 의외의 곳에서 작가의 글을 발견했다. 페이스북 계정 ‘서울대 대나무숲’의 패러디 글이었다. 한 학생이 캠퍼스 내에서 적응의 어려움을 겪는 ‘아웃사이더(아싸)’ 학생들의 생활상을 유튜버들이 콘텐츠로 만들어 소비하는 것을 비판한 것이다. ‘도둑맞은 가난’(1981년)을 비튼 ‘도둑맞은 아싸’에는 댓글 수백 개가 달리며 공감이 결여된 세태에 대한 일침이 이어졌다.
지난해 말 한 부동산 인터넷 카페에는 ‘서울 사람들’(1984년)이 올라왔다. 부동산 논객으로 필명을 떨친 주부 ‘삼호어묵’이 올린 글이었다. ‘“우리 아파트는 6억에 팔라고 자꾸만 졸라서 귀찮아 죽겠어.” “뭐, 6억? 너 그거 작년 이맘 때 3억 주고 산 거 아냐? 지지리도 안 팔리는 아파트라 분양가만 주고 층수도 마음대로 골라서 산다더니 그게 그렇게 올랐어? 말도 안 돼.”’ 세월은 훌쩍 흘러 작가의 원작에 등장한 서울 집값은 당시의 열 배를 넘어섰지만 변두리 미분양 아파트 매입 여부를 두고 운명이 뒤바뀐 두 주부의 이야기에 ‘벼락 거지’ 시대를 사는 사람들은 공감했다. ‘도둑맞은 가난’은 지난해 병무청 국정감사장에서도 등장했다.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1976년)는 자녀를 위해 ‘스펙 품앗이’에 나선 의혹을 받은 조국 전 법무장관 부부 관련 칼럼에, 부동산 시장의 대 혼란기 ‘영끌’로 간신히 서울에 내 집 한 칸을 장만한 이들 사이에서는 ‘엄마의 말뚝’(1982년)이 다시 회자됐다.
박완서 문학의 힘은 경험과 통찰력에서 나온다. 일제강점기와 해방, 전쟁과 빈곤, 좌우 이념 갈등과 같은 거대한 시대의 변화, 그리고 서민과 중산층의 욕망, 이중성을 예리하게 그려낼 수 있었던 것은 작가가 그 시대를 직접 경험했기 때문이다. 또 동시대를 함께 복작대며 살아낸 사람들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거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의 작품들이 여전히 살아 숨쉬며 현재의 위선과 부조리를 통렬하게 비트는 것이 놀랍고 반갑기도 하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작가가 그려낸 1970~80년대와 비교해 과연 우리 사회의 알맹이는 얼마나 성장한 것일까 하는 씁쓸함도 남는다. 누군가 작품이 지닌 중산층적 한계에 대해서 지적했을 때 작가는 이런 답변을 했었다. “저는 중산층이야말로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최저 계층이라고 봐요. 다만 조건이 있다면, 그것은 중산층의 허위의식, 안이한 태도, 속물근성, 기회주의적 속성 등을 극복해야 한다는 것이에요.”(‘박완서의 말’ 中)
그는 “작가는 사랑이 있는 시대, 사랑이 있는 정치, 사랑이 있는 역사를 꿈꾸는 사람”이라는 말도 했다. 올해는 그가 꿈꾸던 ‘사랑이 있는 시대’가 도래하기를, 수많은 작품 중 따뜻한 구절들만 회자되기를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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