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된 '거리두기' 취재… 기자들 "이대로 적응될까봐 걱정"

[코로나19와 기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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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와 함께 기자 생활을 시작한 이들, 일명 ‘코로나 세대’가 달라진 환경에 맨몸으로 내던져졌다면, 코로나 이전 세대들은 익숙했던 모든 것들과 결별해야 했다. 너무도 달라진 ‘비포 앤 애프터’에 적응할 수 없었고, 적응을 해야 하는 건지도 알 수가 없었다.


매일 출근하던 기자실이 방역을 이유로 문을 닫으면서 집이 일터가 됐고, 점심 식사나 술 약속이 눈에 띄게 준 것은 물론, 사람 만나 차 한잔하는 시간도 귀해졌다. 그만큼 전화기를 붙잡고 있는 시간이 늘어났지만, 어딘지 공허함을 떨칠 수 없다. 우리는 코로나19와 사회적 거리두기가 기자들의 일을 어떻게 바꿔놨는지 알기 위해 매체와 부서(출입처), 연차가 다른 기자 20여명의 이야기를 들었다. 현장에 가고, 사람을 만나는 당연한 것들이 당연해지지 않은 지난 1년. 코로나19는 어쩌면 기자라는 일의 본질에 대해 묵직한 질문을 던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꼭 밥이나 술을 먹어야 기사가 나오는 건 아니지만…”
‘마감만 없으면 기자도 좋은 직업’이라는 웃지 못할 농담이 있다. 취재를 핑계로 여러 곳을 다니고 다양한 사람을 만날 수 있으니 좋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러나 코로나19 이후 상황은 달라졌다. 많은 사람을 만나는 일의 특성상 ‘보호’와 ‘경계’ 사이의 애매한 대상이 되어 집에 머무를 것을 요구받았고, 그렇게 시작된 재택근무는 기약 없이 길어지고 있다. 출입처 기자실은 대부분 문을 닫았거나 한정된 인원만 받고 있고, 간다고 해도 사람들과 편히 얘기를 나눌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전화해서 만나자 해도 상대방이 꺼리는 게 느껴진다.


“(공무원들은) 위에서 밥 먹지 말라고 한다고, 걸리면 처벌한다고. 다들 몸을 너무 사려서 먼저 밥 먹자 하기도 좀 그런 상황이에요. 사람들이 코로나 핑계를 대 버리니까 만나는 게 제일 힘드네요.” (통신사 사건팀 4년차, A)


“5인 이상 모임이 금지된 이후엔 모든 약속이 취소됐어요. 지난 한두 달 사이에는 아무 약속도 없었어요.” (경제지 국회 출입 3년차, B)


“산업부 특성이기도 한데 ‘발생’이 너무 없어서요. 머리 굴리는 전망 기사, 업계 분석 같은 걸 써야 하는데 어려워요. 사람들끼리 모여서 얘기를 안 하니까요. 저녁 자리가 없어진 게 제일 큰 것 같아요. 5인 이상 규제 이후에는 저녁 모임이 아예 사라졌어요.” (종합일간지 산업부 3년차, C)


“부서 코너 중에 인터뷰가 있는데, 카페 영업 제한 기간에는 인터뷰할 곳도 없어서 자동차 안에서 인터뷰한 적도 있어요. 상당 부분 전화인터뷰로 전환되면서 아예 인터뷰 횟수가 줄어들기도 했죠.” (종합일간지 온라인뉴스팀 데스크, D)


‘거리두기 취재’, ‘랜선 취재’는 이미 일상이 됐다. 웬만한 정부 브리핑은 온라인으로 이뤄지고 시민단체의 기자회견이나 집회도 유튜브로 생중계되니 현장에 가지 않아도 기사 쓰는 데는 무리가 없다. 필요한 건 전화로 보완 취재를 하면 된다. “하지만,”이라고 기자들은 입을 모았다.


“현장에 가서 사람들 만나는데 제약이 있어요. 이전에 들렀던 곳에서 확진자와 접촉이라도 있었으면 제가 피해를 줄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현장 방문도) 더 생각하게 되고, 가서 물어볼 것도 전화 취재로 하게 되고요. 현장을 가고 사람들도 만나야 자료도 세밀하게 받고 얘기도 할 수 있는데 전화로 하면 취재할 수 있는 범위가 좁아지죠. 현장을 생생하고 역동적이게 전달하기도 어렵고요.” (종합일간지 사회부 3년차, E)


“주요 대기업들 C레벨은 만나는 게 어려워서 보통 기자들이 행사 가서 뻗치기를 많이 하거든요. 예를 들어 ‘디스플레이의 날’ 이런 행사 때 삼성디스플레이, LG디스플레이 대표들 오면 가서 기다렸다가 한마디 듣고 이런 건데. 요즘엔 그런 행사들마저 다 비대면으로 하다 보니 만날 기회조차 없어요.” (경제지 산업부 13년차, F)


“꼭 밥이나 술을 먹어야만 기사가 나오는 건 아니지만요. 전화 취재에는 한계가 있잖아요. 사람들과 만남이 줄다 보니 아이템 발굴에 애로점도 있고, 기사의 깊이나 보도의 다양성 면에서 아무래도 아쉬움이 있어요.” (경제지 정치부 기자, G)


항상 있던 취재 현장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오고, 그래서 현장이 닫히면 기자들도 ‘코로나 블루(코로나 우울)’ 비슷한 증상을 겪기도 한다.


“스포츠 기자들은 스포츠와 같이하는 운명공동체라고 생각하거든요. 코로나19에 감염된 선수가 나오거나 경기 일정이 중단돼서 스포츠가 멈추면 마치 내 삶도 멈춘 것 같은 감정을 느끼는 기자들이 많아요. 코로나 블루를 독특한 형식으로 겪는 거죠.” (방송사 스포츠부장, H)


사람을 만나고 취재원 ‘인맥’을 만드는 게 기자들의 능력치로 인정받는 현실에서 연차가 낮을수록, 출입처가 바뀐 지 얼마 안 될수록 어려움을 겪는다. 코로나19 때문에 취재원을 만나 명함 교환 한 번 못 해본 기자들은 보도자료에 기재된 담당자 유선 연락처에 의지해 취재하거나, 그마저도 안 되면 인터넷에서 기사를 보고 베껴 쓰는 일도 있다.


“사안이 있을 때마다 보도자료에 있는 담당자에게 연락하는데 자리에 없으면 직접 묻기도 어렵고 전화가 매번 되는 것도 아니니까요. 하루 만에 연락이 안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 그런 상황까지 고려해 아이템을 발제하고 다른 방법을 찾아 취재하고 했어요. 선배들이 (취재원을) 만나야 한다고 말하는 이유를 나중에야 알겠더라고요. 진짜 급한 취재가 있을 때 한 번이라도 인사를 나누고 명함이라도 나눴으면 바로 연락할 수 있을 테니까요.” (종합일간지 2년차, I)



◇“이게 독자에게 할 짓인가 싶어요”
현장에 가지 못하는 기자들만큼이나 기자들을 현장에 보낼 수 없는 데스크 이상 간부들도 고역이긴 마찬가지다. 현장에서 멀어질수록 기사의 질이 떨어진다는 아쉬움도 크지만, 어쩔 수 없다. 지금은 방역이 최우선이고, 기자들의 안전을 지키는 것도 이들의 역할이기 때문이다.


“꼭 필요한 현장은 가지만, 예전 같으면 최대한 접촉해서 물어보고 취재하라고 지시할 것도, 이제는 최대한 방역을 지키면서 취재하라고 하죠. 이러면 예전에 현장 취재에서 100을 했던 게 똑같은 노력을 투입해도 10~20 정도밖에 안 나와요. 일차적으로는 현장 기자의 감염 걱정이 가장 큰 거고, 또 한 매체가 가지고 있는 방역의 민감도나 기준을 보여줄 수 있는 계기이기도 하니까 신경을 쓸 수밖에 없어요. 옛날보다는 스스로 선을 긋고 조금 더 깊이 있게 하라고 지시를 못 하죠.” (통신사 사회부장, J)


“예전 같으면 바로 현장 섭외해서 기사 써보자 할 것도 이제는 쉽게 그러지 못해요. 지금 요양원과 요양병원에서 코로나19 사망자가 많이 나오고 있잖아요. 그런데 거기는 더 접근이 어려워요. 전화통화로 이런저런 얘기를 물어보지만, 전언으로 기사를 크게 쓰거나 할 수 없어요. 요양병원 같은 데야말로 현장 기사가 필요한 상황인데, 전혀 접근할 수가 없는 거죠. 브리핑에 나오는 데이터를 보고 접근할 수밖에 없고, 발제도 위축되기도 하고요.” (종합일간지 팀장, K)


“출입처 커뮤니케이션도 줄면서 지금은 거리 두며 취재하는 방법들을 찾긴 했어요. 하지만 과연 지면 퀄리티는 높아졌나? 의문이 들 수밖에 없는 거죠. 이게 독자에게 할 짓인가 싶어요. 어떻게 보면 검색해서 쓰는 인터넷 기자와 뭐가 다른가 싶고요.” (종합일간지 사회부장, L)


문제는 이런 상황이 금방 끝나지 않을 거라는 데 있다. 확진자가 줄어 거리두기 조치가 완화된다고 해서 기자들이 모두 출입처와 현장으로 뛰쳐나갈 수 있는 건 아니다. 이미 대다수 언론사는 정부 방역보다 높은 기준을 두고 재택근무를 시행 중이고, 기자회견을 비롯한 각종 행사도 비대면 개최가 어느 정도 자리 잡은 분위기다. 지난 18일 대통령 신년기자회견은 온·오프라인 화상 연결 방식으로 열렸고, 해마다 수십명의 산업부 기자들이 출장을 갔던 미국 CES(국제전자제품박람회)는 지난 11~14일 사상 첫 온라인으로만 개최돼 세계 어디서나 참관할 수 있었다. 코로나19로 이렇게 세상이 달라졌는데, 과연 기자들이 예전 방식대로 다시 일할 수 있을까, 그래도 되는 걸까. 그런 고민을 조금씩 시작한 이들도 있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출입처에 가지 않고도 기사는 내고 있잖아요. 대통령 기자회견도 보면 집에서 질문하는 기자도 있었고, 정부 브리핑은 온라인으로도 받아볼 수 있고요. 출입처에 가야 기사를 낸다는 건 이미 어불성설이 돼가고 있는 겁니다. 새로운 뉴노멀이 확립된 거예요. 언론사도 변화가 불가피하다고 봅니다. 코로나19 이후 출입처에 못 가고 재택근무하는 인력 현황과 실태 등을 중간 점검할 필요가 있다고 봐요. 그래서 출입처 축소랄지 여러 판단을 했으면 해요.” (방송사 기획조정실, M)



◇“이대로 적응이 될까 봐, 그게 제일 걱정이에요”
기자들도 나름대로 살길을 찾고 있다. 현장이 없어진 만큼 증권가 보고서나 통계, 전자공시 등을 자주 들여다보고, 이를 활용해 기획성 아이템을 찾기도 한다. 5인 이상 모임을 금지하니 4인 이하로라도 어떻게든 자리를 만들어 사람을 만나고 얘기를 들으려 애쓴다. 그래도 가끔 불안하고 종종 초조해진다. 메신저나 줌으로 틈틈이 회의도 하고 전화통화도 어느 때보다 많이 하고 있지만, 사람들과의 물리적 거리를 메우기엔 역부족이다.


“회식을 안 하니까 서로 얼굴 볼 일이 전혀 없더라고요. 회식 안 하는 건 좋은데 일을 잘 하고 있는 건지 몰라서 아쉬워요.” (통신사 사건팀, A)


“술자리가 없어진 건 괜찮은데, 그래도 회사의 정보 교류나 선배들과의 대화는 필요하니까 온라인으로 미팅을 한다거나, 회사에서 대안을 찾아갔으면 좋겠어요.” (경제지 국회 출입, B)


“원래는 1~2주에 한 번은 필수로 대면 회의를 했어요. 서면이나 온라인으로는 확인할 수 없는 게 있잖아요. 이 친구가 어떤 상태인지 만나서 표정도 보고 고민이 뭔지도 어느 정도 알 수 있었는데 지금은 거의 못 하고 있죠. 팀원 전체가 다 같이 회의를 할 순 없으니까 요즘은 개별적으로 팀원과 만나서 얘기를 듣고 있어요. 1대1로 만나서 얘기하고 하면 개인적인 얘기도 더 많이 할 수 있고 오히려 좋은 것 같아요.” (종합일간지 팀장, K)


현장도, 사람도 다 멀어진 지금. 제일 걱정이 되는 건 여기에 익숙해지는 거다.


“1년 정도 되니까 이게 적응이 될까 봐 걱정이에요. 이러면 안 되는데. 집에 앉아 있는 게 체화될까 봐. 아침에 출근하면 무조건 기자실 가서 보고하고 그게 우리 일상이었는데, 집에서 일하니 일과 생활의 구분이 모호하기도 하고요.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방향이 맞는 건지 모르겠어요.”(경제지 산업부, F)


김고은 기자 nowar@journalist.or.kr
박지은 기자 jeeniep@journalis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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