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스파이 양성소?

[글로벌 리포트 | 일본] 황현택 KBS 도쿄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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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현택 KBS 도쿄특파원

▲황현택 KBS 도쿄특파원

남학생 104명. 전교생 210명의 소규모 학교다. 산간이나 해안 마을이 아니다. 일본 제2의 도시 오사카 중심에 있다. 남학생 중 39명은 럭비부원이다. 입학 후 처음 공을 만진 초짜도 있다. 이들은 올 초, 제100회 일본 전국고교럭비대회 4강에 올랐다. 오사카 조선고급학교(조고) 이야기다. 일본에서 럭비는 ‘3대 스포츠’로 꼽힌다. 전국 고교 럭비부는 800개가 넘는다. 다들 쟁쟁하다. 준결승 상대인 도인가쿠인의 럭비부원은 102명. 전교생은 3400명(남학생 1977명)이나 된다. 럭비부원 평균 몸무게는 오사카 조고를 약 10kg 웃돈다. 도인가쿠인은 이후 대회 2연패를 일궜다.


권창수 오사카 조고 럭비부 감독(사회과 교사)에게 전화했다. 무엇보다 어린 선수들이 이번 대회 구호를 ‘사명’(使命)으로 정하고, 죽기 살기로 부닥친 이유가 궁금했다. 묻고 듣고 기사를 썼다. 기사에 댓글이 달렸다. 평소 보지 않으나 이번엔 눈길이 갔다. “김씨 삼부자, 북괴 찬양 학교”, “사회주의 공부하는 북한 아이들”, “전쟁 나면 우리에게 총 겨눌 아이들”, “노동신문이나 다룰만한 기사”라는 식이었다. 어딘가 낯익은 공격. 악명 높은 일본 극우단체 ‘재일 특권을 용서하지 않는 시민 모임’(재특회)의 논리와 닮았다. 이들은 조선학교를 ‘북한 스파이 양성소’라 매도한다.


아이들에게 상처가 될까 속상했다. 조선학교에서 ‘조선’은 북한을 뜻하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아니다. 분단 전, 남·북한을 합한 ‘우리’라는 뜻이 강하다. 굳이 국적을 따져야 하나 싶었으나 다시 물었다. 오사카 조고 전교생 210명 중 한국 학생은 150명쯤 된단다. 절반 넘는다. 한국 국적의 럭비부원도 있다. 이게 팩트다.


민족주의와 국가주의가 가장 극심하게 투영되는 스포츠는 축구다. 럭비는 반대다. 지난해 일본에서 처음 열린 럭비 월드컵. 일본 대표팀 31명 중 외국 출신은 7개 나라, 15명이었다. 이들은 ‘원팀’(ONE TEAM)이란 구호로 사상 첫 8강에 올랐다. 열도 전체가 들썩였다. 지난해 일본의 신조어·유행어 대상 역시 ‘원팀’이었다.


럭비는 그렇게 편을 가르지 않는다. 치열하고 폭력적으로 보이기까지 하는 경기가 끝나면 심판은 반드시 ‘노 사이드’(No Side)를 선언한다. 그 순간부터 ‘네 편, 내 편’ 구분이 없어진다. 함께 교류하고 더불어 즐긴다. 오사카 조고의 아이들, 특히 럭비부원의 국적을 갈라야 하는 상황이 서글펐다.


물론 선입견과 편견은 자연 발생적이지 않다. 1세대 재일교포 고향은 대부분 경상·전라·제주 등 남쪽이다. 해방 직후 일본에 남은 조선인 60여만명은 가장 먼저 국어강습소를 세웠다. 조선학교의 시작이다. 북한은 1957년부터 교육원조비를 보냈다. 총련은 조선학교를 체계화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여기까지만 알면 반쪽이다. 역사에는 순서가 있다. ‘조선학교=총련 학교’라는 시각은 1990년대까지라면 유효하다. 이후 재일조선인 상황에 따라 교육 과정은 줄곧 변해왔다. 교과서는 2003년 개정판을 쓴다. 2000년 6·15 남북 공동선언 분위기가 반영된 통일 지향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짚어야 할 게 또 있다. 과거 한국은 “일본 동포의 문제는 일본 동포가 알아서 하라”는 식의 태도를 고수했다. 조선학교를 전혀 돕지 않았다. 지금도 그렇다. 아베 정권은 2013년 2월, 조선학교만 콕 집어 ‘고교 무상화 대상’에서 제외했다. 이후 한국 정부가 일본 측에 이를 문제 제기했다는 말은 들어본 일이 없다.


현해탄 넘어 70여 년 동안 우리말을 지켜오고 있는 학교. 일본 우경화 사회에서 극심한 차별을 버텨내고 있는 학교. 조선학교의 오늘을 들여다보려는데 소홀했다. 도쿄특파원인 필자 또한 이번 일을 거치고서야 편견과 선입견에 금이 갔다. 그리하여 반성한다.


다시 오사카 조고 이야기. 10년 전 남학생은 209명(여학생 183명)이었다. 그 사이 절반 가까이 줄었다. 올해 럭비부원 중 3학년생 21명이 졸업하면 18명(2학년 7명·1학년 11명)이 남는다. 럭비는 15명이 뛴다. 대회 출전조차 장담할 수 없게 된다. 권 감독은 “가슴 펴고, 전력으로 싸우겠다”고 했다. 오사카 조고의 ‘사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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