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널리즘과 '먹고살리즘'

[언론 다시보기] 김하영 ROBUTER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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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하영 ROBUTER 편집장

▲김하영 ROBUTER 편집장

<스포트라이트>나 <포스트>처럼 저널리즘을 다룬 헐리우드 영화를 보면 가슴이 벅차다. 그에 비해 우리나라 대부분의 영화나 드라마 속 기자들은 주인공은커녕 협잡꾼이거나 세상 물정 모르고 설치는 철부지 조연이다. 하도 답답해 1억원 정도 상금을 걸고 훌륭한 기자를 주인공으로 한 시나리오 공모전이라도 열자고 기자협회에 건의할까 고민한 적도 있다. 그런데 그런 갈증을 어느 정도 해소시켜주는 드라마가 나왔다. 정진영의 소설 <침묵주의보>를 바탕으로 한 드라마 <허쉬>.


16회 이상의 장편 드라마는 첫 인상이 중요하다. 이를 업계 용어로 “멱살 잡는다”고 한다. 첫 회에 따라 흥행의 성패가 좌우된다. <허쉬> 첫 회에서 인턴 기자인 이지수(임윤아)는 면접에서 ‘좌우명’이 뭐냐고 묻자 이렇게 답한다. “‘펜은 총보다 강하지만 밥은 펜보다 강하다’ 입니다.” 그리고 말한다. “거짓말을 하지 않고 월급을 받을 수 있는 직업이 기자라고 생각합니다.” 이 장면이 내 멱살을 잡았다. 20년 전 대학 졸업반이던 내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20대에 으레 그러하듯 패기와 호기로 뭉쳐 있던 나는 나름의 직업 선택 원칙을 세웠었다. 그 첫 번째는 “사주(社主)의 이익이 아닌 사회(社會)의 이익에 봉사한다”였다. 의사, 변호사, 교사, 군인, 공무원 등 그런 직업이 뭐가 있을까 죽 뽑다가 기자가 됐다. ‘사회의 이익’을 위해 불철주야 현장에서 맨 땅에 헤딩하며 뛰어다녔다. 그렇게 8년이 흐른 어느 날, 무엇에 홀린 듯 ‘독자 배가’ 아이디어가 떠올라 리포트를 만들어 회사에 제출했다. 리포트를 본 대표는 ‘전략기획팀장’ 자리를 제안하며 나더러 직접 해보지 않겠냐고 했다. 매너리즘에 빠져들고 있던 나는 덥석 제안을 받았다.


업무의 특성상 경영 사정을 들여다보게 됐다. 법조 담당 시절 기사만 쓰면 기사 내용과 상관없이 ‘이혼 전문 변호사’ 구글 광고가 따라 다녀 투덜대곤 했는데, 경영실에 와서 구글에서 매달 보내오는 거액의 수표 실물(그 때는 종이 수표를 보내왔다)을 보게 됐다. ‘철이 드는’(?) 묘한 경험이었다. 이른바 ‘어뷰징’이라는 걸 테스트 해보고 불과 몇 분 만에 조회수 몇 만이 오르는 ‘기적’(?)을 봤다. ‘아, 이렇게들 돈을 버는구나’라는 유혹을 느꼈다. 지저분하게 덕지덕지 붙어 있는 광고들도 달리 보였다. “저 자리에 저 거 하나만 붙이면 기자 O명 월급인데.” 어느새 나는 ‘저널리즘’ 대신 ‘먹고살리즘’을 좇고 있었다.


막상 해보니 언론만큼 비즈니스하기 지랄 맞은 산업도 없지 싶었다. 공기업도 아니면서 공공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 자체가 고난이도 비즈니스다. 과거 언론이 비즈니스적으로 유의미했던 이유는 정보와 의견을 독과점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언론 시장이 포털 중심으로 재편되면서 언론사는 플랫폼 지위를 잃었고, 소셜미디어 시대가 도래하면서 정보와 의견 독과점력도 잃었다. ‘저널리즘’도 ‘먹고살리즘’도 모두 길을 잃었다.


세상 탓, 세월 탓할 필요는 없다. 어차피 세월은 흐르고 세상은 계속 변할 것이다. 다시 기회는 찾아온다. 아니, 만들 수 있다. 제대로 된 지도 하나와 나침반만 쥐고 있으면 길을 잃지 않는다. 새 길을 만들 수도 있다. 그런데 우리 언론은 저널리즘과 먹고살리즘 사이에 38선 같은 적대적 갭이 있다. 지도를 쥔 사람, 나침반 쥔 사람이 따로 논다. 같이 놀자. “거짓말 하지 않고 월급을 받는” 이 매력적인 직업을 잃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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