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팩트가 뭐야?” 1989년 12월, 수습기자 첫 날을 그는 이 질문으로 기억했다. 경찰서에서 들은 내용을 선배에게 보고했더니 툭 나왔던 말이었다. 당시에도 “그것만큼 어려운 질문은 없다”고 생각했다. 동아일보에서 19년간 기자 생활을 하고 이후 다시 언론학을 공부하면서도, 그리고 지난 2017년부터 약 4년간 SNU팩트체크센터장을 맡으면서도 정은령<사진> 센터장은 그 생각에 변함이 없다고 했다. 그는 “기자는 ‘100도가 되면 물이 끓는다’는 물리적 사실을 다루기보다 이해관계가 상충하고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변동될 수 있는 사회적 사실을 다룬다”며 “결국 그 순간에 가장 가닿을 수 있는 진실을 추구할 수밖에 없는 존재다. 그러나 사실을 추구하는 것은 언제나 쉽지 않은 일”이라고 말했다.
특히 2016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 이후 ‘가짜뉴스’가 세계적인 유행어가 되고, 탈진실의 시대가 되면서 객관주의를 내세웠던 근대적 언론은 큰 도전에 직면했다. 진실을 추구해도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거나 오히려 공격을 당하기도 했다. 그런 때 SNU팩트체크센터가 출범했다. 이미 유럽과 미국에선 허위조작정보에 대응하기 위해 시민단체나 기자들을 중심으로 팩트체크 협업 시스템이 활성화한 상태였다. 특정 언론사가 주도할 수 없다면 중립적인 대학이 팩트체크 플랫폼을 제공하자는 취지로 센터 운영이 시작됐고, 정 센터장은 그 일을 총괄하는 중책을 맡게 됐다.
처음엔 회의감도 느꼈다. 가장 먼저 팩트체크를 시작한 미국에서도 ‘팩트체크 자체가 정파적’이라며 공격을 당하거나 ‘정치적 수사는 팩트체크를 못 하기에 기본적으로 성립할 수 없다’는 주장 등이 나오며 여러 논란을 낳기도 했다. 국내에선 허위조작정보를 차라리 법으로 규제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았다. 정 센터장은 그러나 “박정희 정권 시절 재갈이 물려본 경험을 민주화로 극복한 우리가 표현의 자유를 보호하면서 사실을 추구할 수 있는 방법은 팩트체크 뿐이라고 생각했다”며 “2019년 10월엔 저희와 제휴한 언론사들 전체가 독회하며 팩트체크 원칙을 만들었다. 제1 원칙이 불편부당성과 비 당파성을 견지해야 한다는 것인데 지금 완전히 잘 되고 있다고 말하진 못하지만 언론사들이 정파성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가장 큰 성과는 현재까지 이 플랫폼이 지속되고 있다는 점이다. 초반 16개사로 시작했던 팩트체크 제휴 언론사는 현재 30개사로 늘어났고, 지난 10일 기준 누적된 팩트체크 콘텐츠만 2500여개에 달한다. 투명성의 원칙이 조금씩 쌓여오고 있는 것도 성과다. 어떤 취재 과정을 통해 해당 결론에 이르게 됐는지 전체적인 맥락을 설명하고, 검증에 사용한 근거를 최대한 구체적으로 밝히는 작업들이 조금씩 진화해오고 있다. 이젠 팩트체크 기사 한 개에 10개가 넘는 근거들이 붙기도 한다.
다만 앞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들도 적지 않다. 정 센터장은 “팩트체크 콘텐츠 특성상 들이는 노력에 비해 결과물이 적어 언론사에선 비용이 많이 드는 일이라 생각하고 지원을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방송사들 중심으론 팩트체크팀이 생기고 역량이 쌓이고 있는데 특히 신문사들이 그렇다”며 “게다가 사후적으로 팩트체크를 하는 과정엔 사람들이 관심을 잘 안 가진다. 축구로 치면 좋은 수비수의 역할을 하는 셈인데 누구나 다 특종기자 같은 스트라이커가 되고 싶지, 좋은 수비를 했지만 인정은 못 받고 그냥 넘어가는 팩트체크를 하고 싶어하지 않는다”고 했다.
SNU팩트체크센터가 최근 지원 사업을 늘리고 좋은 팩트체크 보도를 대대적으로 시상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언론사에서 여력이 없다면 팩트체크센터가 지원해서 팩트체크 경험을 쌓게 하자는 취지다. 올해 상반기 팩트체킹 취재보도 지원 사업은 아예 지원 최고 한도액을 대폭 증액하기도 했다. 기획취재 지원사업의 경우엔 기존 2000만원에서 3000만원으로, 시스템 개발 사업의 경우 기존 4000만원에서 1억원으로 상한액을 늘렸고, 다년간 지원도 가능케 했다.
정 센터장은 “팩트체크는 누가 틀렸다고 지적하는 작업이 아니라 언론이 지금 현재, 사실 확인을 얼마나 엄격하게 하고 있는가를 스스로 묻는 작업이라고 생각한다”며 “우리가 저널리즘의 기본 원칙을 얼마나 단단하고 정밀하게 지키고 있는가 반성하기 위해 팩트체크를 하는 것이다. 언론사들이 그런 작업을 통해 뉴스 소비자들과 소통하고, 신뢰를 되찾을 수 있도록 팩트체크센터가 지속적으로 도움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강아영 기자 sbsm@jouranalis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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