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후 감시보단 잔혹성 초점… 또 되풀이된 아동학대 보도 공식
[구조적 분석보단 가해자 악마화 치중]
기획·탐사팀 '진단 보도' 필요한데
경찰팀이 속보, 기소 후엔 법조팀…
여론은 사회부·온라인팀이 챙기고
정치권 반응은 정치부서 처리하는
언론의 취재 관행과도 무관치 않아
양부모가 지속적 학대 끝에 생후 16개월 아기를 숨지게 한 ‘양천 아동학대 사건’으로 새해 벽두부터 여론이 들끓었다. 피해 아동의 입양 전 이름을 따 ‘정인이 사건’으로 불리는 이 참극은 지난 2일 SBS ‘그것이 알고 싶다’를 통해 사건의 전말이 알려지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그것이 알고 싶다’ 제작진의 제안으로 시작된 ‘정인아미안해’ 챌린지가 정치권, 연예계 등으로 확산하며 슬픔과 분노를 자극했고, 이런 공분이 다시 언론과 정치권에 영향을 미치며 “이번만큼은 달라야 한다”는 다짐과 실천으로도 이어졌다.
언론 보도도 폭증했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의 뉴스 빅데이터 분석 시스템 빅카인즈에서 ‘학대, 사망, 16개월(또는 정인이)’을 키워드로 검색한 결과, 정인이 사망 직후 약 3개월간 54개 언론사가 내놓은 보도는 약 450건이었는데 ‘그것이 알고 싶다’가 방송된 날부터 열흘 동안은 그의 배를 넘는 1000건 이상의 기사가 쏟아졌다. 보도 방식은 기존 아동학대 사건 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상당수가 학대 상황을 반복해서 묘사하거나,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 올라온 목격담을 확인 없이 기사화하며 가해자의 ‘악마성’을 부각했다. 경찰과 정치권, 정부 등에 책임을 묻고 제도 개선을 촉구하는 보도도 있었지만, 그 제도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얼마의 인력과 예산이 필요한지, 거기에 자원을 집중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충분히 설명하고 설득하는 보도는 많지 않았다. 지난해 6월 9세 아이가 여행용 가방에 갇혀 사망했을 때도, 9월 일명 ‘라면 형제’ 사건 때도 마찬가지였다. 아동학대 사건이 발생하면 언론은 그 비극성이나 잔혹성에 초점을 맞추는 것 이상으로 ‘사후 감시’에 공을 들이지 않는다. 구조적 원인 대신 특정 가해자의 악마성을 부각하며 ‘처벌 강화’ 목소리에 힘을 싣고, 이런 양상은 도돌이표처럼 반복된다.
이는 우리 언론의 취재 관행과도 무관치 않다. 아동학대 사건이 발생하면 경찰팀 기자가 속보 처리를 하고, 기소된 후엔 법조팀 기자가, 여론 반응은 사회부나 온라인 담당 기자가, 정치권과 정부가 내놓는 대책은 정치부 기자가 처리하는 게 통상적인 방식이다. 아동학대 사건을 구조적으로 진단하는 보도는 기획팀이나 탐사팀이 아니면 엄두를 내기 힘들다.
그러나 보건복지부와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이 만든 ‘아동학대 사건 보도 권고 기준’은 이렇게 설명한다. “아동학대 보도영역은 의료, 환경 보도와 마찬가지로 전문적인 취재영역이므로 아동에 대한 지식, 심리학, 상담학에 대한 지식, 철저한 인권의식, 윤리의식 등이 종합적으로 필요하다.”
아동학대 문제를 오래 취재해온 변진경 시사인 기자는 “아동보호 체계야말로 역사성을 모르면 계속 도돌이표 기사가 나올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면 독자도 스트레스를 받고, 바뀐 게 없다는 인상을 받게 되면 그 시스템에 돈을 들이는 게 쓸모없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변 기자는 그래서 “화내지 않고 다짐하는 보도, 같이 반성할 수 있게 하는 기사가 많아지길” 바란다. 일단 ‘아이는 또 죽는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싫지만 받아들여야 한다. “정인이 같은 일이 다시는 일어나면 안 된다는 각오로 바꿔내는 것과 이런 일이 또 일어난다는 걸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다르다. 그걸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건 시스템을 바꾸지 않고 이 사건만 해결하(고 잊자)는 셈이다. ‘악마’는 또 있을 것이고, 빈 구멍을 완벽히 다 막을 순 없다.”
지난해 영아학대 사망을 다룬 기획 ‘짧은 숨의 기록’으로 이달의 기자상 등을 수상한 조문희 경향신문 기자는 “아동학대는 복지 영역까지 연결되는 종합적 문제”라며 “선명한 대책에 집착하지 않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조 기자는 “아동학대 사건을 건별로 소화하고 기사 쓰는 것도 중요하지만, 뭔가가 벌어졌으면 한 번 더 들어가 보는 시도가 자리 잡았으면 좋겠다. 처벌 여론이 높으면 기사도 쉽게 쓰고 소위 ‘야마’가 잡히겠지만, 조금 복잡하더라도 더 취재해볼 만하다 싶으면 달려드는, 현장 기자들과 뉴스룸의 고민이 있어야 한다고 본다”고 밝혔다.
김고은 기자 nowar@journalis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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