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품 용기·햇반 그릇으로 기후위기 파헤치다
일상 문제로 기후위기 다루는 언론
한국일보 소비재 포장 문제 분석한 '제로웨이스트 실험실' 격주 연재
한겨레 기후위기 뉴스 쉽게 읽어주는 유튜브 콘텐츠 '싸이렌' 선보여
최승영 기자
sychoi@journalist.or.kr
2021.01.12 10:21:55
기후위기와 쓰레기 문제 등 환경 이슈가 언론사들의 주요한 어젠다로 부상하고 있다. 거대담론 중심이 아닌 생활밀착형 아이템으로, 시청각적 충격을 의도한 사진‧영상의 적극 활용으로 시민들의 공감을 얻으려는 시도가 속속 이어진다. 지난해 코로나19와 물난리 등 환경 재난을 거치며 시민들의 높아진 관심에 언론사가 걸맞은 대응을 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한국일보는 지난 5일 신규 코너 ‘제로웨이스트 실험실’을 통해 <두께 3㎝ 플라스틱… 화장품이 아닌 예쁜 쓰레기를 샀다> 등 보도 4건을 선보였다. “주로 소비자들에게 전가해 온 재활용 문제를 생산자 및 정부의 책임 관점에서 접근”하겠다는 코너는 ‘화장품 용기’를 해부했다. 기초 화장품 6가지를 골라 용기를 분해하고, 저울에 달고, 심지어 반으로 잘라 업체명까지 공개한 실험 과정 전체를 독자에게 전하는 식이었다. 한 기사에선 GIF이미지 등 사진만 15장을 사용했다. 일상에 기초한 환경 뉴스에 이목을 끌 사진들을 더하고 과정을 보여주는 방식으로 전한 것이다. 어젠다기획부는 올해 어젠다 중 하나를 ‘기후위기’로 정하고 기후대응팀(기자 2인, 인턴기자 1인)을 꾸려 코너를 준비해 왔다.
▲한국일보가 소비재 포장문제를 생산과 책임의 관점에서 짚는 '제로웨이스트 실험실'. 1월5일자 한국일보 1면
이진희 한국일보 어젠다기획부장은 “기존 기후 기사는 거대담론 위주였다. 사람들에게 당장 바꿔야한다는 인식을 줄 일상 아이템을 선정, 직접 눈으로 보고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도록 하는 게 기자들만의 방식이라 봤다”며 “2주에 한 번씩 연중기획을 할 생각”이라고 했다. 이어 “사진이 중요하고 기사량도 많은 코너인데 (신문과 디지털을 분리한 조직개편으로) 온라인이 활성화돼 수월한 측면이 있었다”고 덧붙였다.
지난해 4월 국내 종합일간지 최초로 편집국에 기후변화팀(4인)을 신설한 한겨레신문은 최근 기후위기와 관련한 여러 분야 뉴스를 쉽게 읽어주는 유튜브 콘텐츠 <싸이렌-기후침묵을 깨는 청년들의 말>(이하 싸이렌)을 내보였다. 파일럿 2회까지 나온 영상은 이해가 쉽지 않은 기후위기 뉴스 관련 뒷이야기와 맥락을 쉽고 재미있게 전한다는 콘셉트 아래 주요 언론의 환경뉴스를 분석, 비판하고 미래세대인 청년들의 도발적인 목소리를 담는다.
이런 시도는 지난해 11월 조직개편으로 기후변화팀이 편집국에서 디지털콘텐츠부 산하로 옮긴 뒤 나왔다. 개편 후 <
햇반, 너마저 재활용 불가…나는 왜 열심히 씻은 거니?, <[영상] 콜라회사서 ‘사이다 답변’ 받아낸 초등생들>처럼, 독자 친화적인 아이템과 쓰기방식이 시도돼 호평을 받기도 했다. 위 기사를 쓴 김민제 한겨레 기자는 “지난해 11월 기후변화팀으로 와 쓰는 방식에 대한 고민을 더하게 됐다. ‘많이 읽히게 재미나게 쓰자’는 전제가 있고 팀에서 발전을 시켜줘 가능했던 부분”이라며 “독자 반응이 확실히 더 좋다. 댓글 내용도 기자나 기사 욕이 아니라 재활용에 대한 토론이나 고민이 주를 이룬다”고 했다.
지난해 경향신문과 세계일보 등에선 환경 관련 여러 유의미한 기획기사가 나왔다. 중앙일보 특별취재팀은 기후위기에 신음하는 지구 곳곳을 VR 영상으로 담아 ‘읽고’ ‘보는’ 차원을 넘어 이용자가 직접 그 현장을 실감하는 ‘기후재앙, 눈앞에 보다’ 시리즈를 만들었다. KBS는 환경부에 정보공개청구를 해 받은 ‘홍수위험지도’를 지난달 초 최초로 공개하기도 했다.
다만 이 보도들을 언론사 시스템의 성취로 보긴 어렵다는 과제가 언론에 남는다. 환경 관련 상당수 보도는 여전히 콘텐츠로서 가치나 전략에 대한 고려 없이 당위 차원의 일회적 이벤트에 머물고, 뉴스룸 내부에서도 주변부에 그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환경 이슈는 모두의 공감대가 있어 언론신뢰 회복의 시작점으로 볼 수도 있는 영역인데도 말이다.
‘싸이렌’을 기획한 최우리 한겨레 기자는 “기후변화팀이 디지털콘텐츠부로 온 개편 이면엔 ‘정경사’와 지면 경쟁에서 밀리는 마이너이슈를 실험적으로 전선에 내세워 본 측면이 있다고 본다. 힘을 실어줘야 되는 주제인데 판을 깔아주고도 별다른 지원이 없고 타 부서와 협업도 수월치 않아 팀 차원에서 기자들이 영상 기획과 편집을 도맡고 있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대중이 외면한다는 이유로 정책적으로 중요한 환경 이슈를 신문에서 무작정 뺄 게 아니라 콘텐츠별 디지털용‧신문용 판단 기준을 마련하는 등 촘촘한 체계가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최승영 기자 sychoi@journalis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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