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을 보낸 브라질 사회는 코로나19 충격 못지 않게 지난 10년간의 정치적 경험에 주목하고 있다. 좌파로 시작해 극우로 이어지는 특별한 경험이다.
2002년 대선에서 노동운동가 출신의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가 승리하며 좌파정권 시대를 열었다. 2006년 재선에 성공한 룰라는 자신의 정부에서 수석장관을 지낸 지우마 호세프를 후계자로 점 찍었고, 호세프는 2010년 대선에서 승리하며 브라질 사상 첫 여성 대통령이 됐다. 호세프는 2014년 대선에서 재선에 성공하며 좌파정권 4기를 열었으나 2016년 의회 탄핵으로 대통령직을 사실상 강탈당했고, 이로써 좌파정권 시대는 13년여 만에 막을 내렸다.
호세프가 탄핵되고 나서 대통령직을 꿰찬 부통령 미셰우 테메르는 우파 정부를 출범시켰으나 정당성을 확보하지 못했고, 국정 수행에서도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이며 한 자릿수 지지율로 2018년 말 퇴임했다. 퇴임 후에는 뇌물수수 혐의로 두 차례에 걸쳐 체포됐다가 풀려나는 등 부패 의혹에 휩싸이면서 도덕성까지 의심받았다. 테메르는 지난해 11월에 출간한 자신의 저서에서 호세프 탄핵을 추진하기 전에 군 수뇌부를 접촉한 사실을 인정했고, 이는 군부가 호세프 탄핵을 공모했다는 해석을 낳으면서 정치권을 혼돈에 빠뜨렸다.
2018년 대선은 룰라로 대표되는 좌파진영과 극우 정치인 자이르 보우소나루를 앞세운 우파진영의 맞대결 양상으로 전개될 예정이었으나 부패 수사가 룰라의 발목을 잡았다. 룰라는 뇌물수수와 돈세탁 등 혐의로 실형을 선고 받고 2018년 4월 연방경찰에 수감됐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화제가 된 다큐멘터리 ‘위기의 민주주의-탄핵에서 룰라까지’는 이를 두고 정치권과 검찰, 사법부, 언론의 수구 세력이 결탁해 벌인 정치 쿠데타라고 표현했다. 룰라에 대한 평가는 관점에 따라 다르게 나오고 있지만, 그의 대선 출마를 막으려는 시도가 이뤄졌다는 주장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2019년 6월에는 ‘인터셉트 브라질’이라는 웹사이트를 통해 세르지우 모루 당시 연방판사가 검사들에게 룰라에 대한 유죄 판결과 수감을 끌어낼 수사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는 내용이 폭로됐다. 룰라는 수감 상태에서도 대선 출마를 위한 법정 투쟁을 계속했으나 연방선거법원이 후보 자격을 인정하지 않았고, 상파울루 시장을 지낸 인사를 대타로 내세웠으나 이른바 ‘극우 돌풍’을 넘지 못하고 보우소나루에게 패했다.
2019년 초에 취임한 보우소나루는 극우 행보를 주저하지 않았다. 국내 정치에서는 편 가르기로 지지층 결집에 승부를 걸었고, 대외적으로는 미국, 더 구체적으로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지나치게 몰입하는 외교 노선으로 고립을 자초했다. 집권 2년차를 마무리하는 2020년 말에는 과거 군사독재정권 시절 자행된 고문을 부인하는 발언을 해 인간성이 부족하다는 비난까지 받았다. 지지자들은 보우소나루와 갈등을 빚는 의회와 대법원 폐쇄를 주장하고 군부의 정치 개입을 촉구했다. 친정부 시위에서 신나치주의를 상징하는 깃발이 버젓이 등장하기도 했다.
보다 못한 현직 연방대법관은 2018년 대선 이후 민주주의가 후퇴하고 있으며 미래가 독재에 의해 오염되고 있다며 보우소나루를 강도 높게 비판했다. 민주적 제도에 대한 합의가 보장되지 않으면 2022년 대선 정국이 극도로 혼란스러워질 것이라는 견해도 밝혔다.
답답한 것은 극단의 정치 현실을 경험하는 과정에서도 정작 브라질 사회가 안고 있는 근본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은 크게 눈에 띄지 않는다는 점이다. 정치적 성향과 관계없이 정부는 무능하고 폐쇄적이었다. 이런 행태로는 개혁과 지속가능한 성장, 빈부격차 완화, 환경 보호 등 2021년에 맞이할 의제에 대처하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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