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욱 기가 막힌 일은 포스코의 임원급 직원들이 당시 충돌 현장을 지켜보고도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은 것이다. 앞서 이들은 다큐 내용을 문제 삼아 ‘포스코의 지역 협력 사업’을 전면 중단하겠다며 포항 시민을 협박하는 듯한 입장을 밝혀 공분을 사기도 했다.
포스코에서는 지난 4년여 동안 노동자 21명이 일하다 목숨을 잃었다. 최근 한 달 만에는 5명이 잇따라 사망했다. 포스코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왜 필요한지 스스로 보여줬다. 이런 와중에 포스코의 직업병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 포항MBC 다큐 ‘그 쇳물 쓰지 마라’가 방송됐다. 잇단 중대재해에 더해, 직업병과 주민들의 환경성 질환에 대한 책임론이 제기됐고, 포스코에 대한 비판 여론은 커졌다.
그러나 포스코는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제철소 가동으로 인해 누군가는 피해를 입을 수 있는 사실조차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안타깝게도 포스코는 소통과 공감이 아니라 오만과 편견의 길을 택했다. 다큐 방송 이후 포스코에서 근무한 10여명의 노동자가 직업성 암 등을 호소하며 집단으로 산업재해 신청을 했지만 포스코는 어떠한 입장도 표명하지 않고 있다. 감독기관인 경상북도와 지방의회, 고용노동부도 마찬가지다. 함께 침묵하고 있다. 다큐에서 확인했듯 포스코를 축으로 한 권력기관들의 ‘침묵의 카르텔’은 여전히 견고하다.
한국기자협회와 방송기자연합회 등 언론기관과 대다수 언론사들은 한국노총 포스코 노조의 비상식적인 행태를 규탄하는 성명과 기사를 잇달아 냈다. 그러나 다큐의 주요 내용인 ‘포스코의 직업병과 주민들의 환경성 질환’에 대해서는 심층 보도를 하지 않고 있다. 결국 노조의 일시적인 행태에 보도의 초점이 맞춰지면서, 정작 쟁점인 ‘포스코의 책임성 문제’는 관심에서 벗어나 심각성이 희석되고 말았다.
반면 노동자와 시민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다큐 방송 2주 만에 유튜브 조회 수가 2만 회를 넘어섰고 시민사회단체들의 지지와 응원 성명이 쇄도했다. 포스코의 제철소가 있는 포항과 광양에서는 시민 1200여 명이 “포항MBC를 응원합니다”라는 문구가 적힌 손 피켓을 들고 인증 샷을 찍은 뒤 온라인에서 공유하기도 했다. 시민들의 응원에 힘입어 다큐는 포항MBC에서만 3차례 방송했고, MBC 전국 편성으로도 방송했다.
2017년 MBC 정상화를 위한 총파업 이후 포항MBC는 공정방송 재건을 선언했다. 내부적으로 지역의 권력과 자본을 제대로 감시하지 못했다는 반성의 목소리가 컸다. 특히 포항MBC의 광고주이자 지역에서 절대적인 영향력을 가진 포스코 관련 보도는 대표적인 불공정 사례로 꼽혔다. 이 때부터 포항MBC는 “시민의 생명과 안전보다 중요한 건 없다”는 판단 아래 포스코의 산업재해와 환경문제를 심층 보도했다. 때마침 금속노조 포스코지회가 출범하면서 그동안 가려져온 포스코의 산업재해 실태를 여과 없이 기사화했다. 또 포스코가 용광로의 비상 밸브인 ‘브리더’를 통해 수십 년간 오염물질을 무단 배출해온 사실과 감독기관인 경상북도가 포스코를 봐준 의혹을 1년에 걸쳐 연속기획으로 방송했다.
그러나 포스코는 새로운 변화에 공감하지 못했다. 언론의 정당한 비판에도 노골적으로 불쾌감을 드러냈고 급기야 포항MBC에 대한 모든 광고를 중단했다. 이번 다큐 제작과 관련해서도 직원들에게 메일을 보내 “포항MBC가 다큐를 악의적으로 편집할 우려가 있다”며 “취재에 응하지 말라”는 지시를 내렸다. 다큐 내용을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잘못된 예단과 편견으로 공영방송사의 명예를 심대하게 훼손한 것이다. 또 “직원 개인의 ‘의사 표현의 자유’마저 회사가 통제할 수 있다”라고 믿는 권위주의적 기업 문화를 고스란히 드러냈다.
포스코와 포항 시민은 공존해야 한다. 이제라도 오랜 권위주의를 깨고 포스코를 동등한 사회 구성원으로 불러내야 한다. 그러려면 시민들이 더 많이 요구하고 더 많이 행동해야 한다.
장성훈 포항MBC 기자
# '지역 속으로'는 지역의 여러 이슈와 지역민의 삶을 차별화된 시각으로 다룬 지역기자들의 취재기입니다.
장성훈 포항MBC 기자의 전체기사 보기Copyright @2004 한국기자협회.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