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자리가 콘퍼런스 주제 ‘Know way out(나갈 길을 알고 있다)’ 그대로 위기에 대한 걱정을 벗어내고 해법을 제시하는 단초가 되길 바란다.”
홍정도 중앙일보·JTBC 대표이사 사장은 지난 2015년 9월 중앙일보 창간 50주년을 맞아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열린 ‘중앙 미디어 콘퍼런스’에서 이 같이 밝히고 혁신보고서를 공개했다. 현재 중앙은 국내에서 ‘디지털 혁신’을 가장 과감히 감행한 언론사로 평가받는다. 그래서 중앙 디지털 혁신은 어디까지 온 것일까. 그간의 성과는 무엇이고 잠재한 과제는 어떤 것일까. 5년을 맞은 중앙일보의 혁신을 돌아본다.
◇플랫폼별 구독자 수로 본 중앙의 성과
현재 중앙의 성과는 복수의 뉴스 유통 플랫폼 상 ‘구독자 수’로 확인된다. 기자협회보가 지난 7월21일부터 28일까지 네이버·페이스북·트위터·인스타그램·유튜브 등 5개 플랫폼 내 주요 언론사 17개 그룹 뉴스 관련 콘텐츠 계정 269개의 ‘구독자’ ‘좋아요’ ‘팔로워’ 수를 전수 조사한 결과 중앙일보를 포함한 중앙 계열 그룹은 모든 플랫폼에서 6위 안에 드는 구독자 수를 확보한 것으로 나타났다. 네이버와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구독자 수 각 1위를 차지했고, 트위터 2위, 유튜브 6위에 올랐다.
결과는 신문과 방송 각각에서 상당한 브랜드 파워를 지닌 중앙일보·JTBC의 성과가 합쳐진 영향이 있다. 조사 당시 플랫폼별 구독자 수는 ‘중앙일보’ 계정이 네이버 472만명, 페이스북 139만명, 트위터 29만명, 인스타그램 7만명, 유튜브 5만명, ‘JTBC뉴스’ 계정은 네이버 447만명, 페이스북 85만명, 트위터 60만명, 인스타그램 19만명, 유튜브 136만명이었다. 양 매체 간 콘텐츠 포맷과 매체 지향, 주된 이용자층 차이가 그룹 차원에선 시장 외연이 확대되는 식으로 상보된다는 점이 유념할만하다. 특히 중앙일보가 네이버에서 거둔 성취는 의미가 있다. 국내 최대뉴스 유통 플랫폼인 네이버에서 중앙일보는 조사시점 기준 70개 모바일 콘텐츠 제휴 매체(11일 현재 71개) 중 2위 JTBC(447만명), 3위 YTN(404만명), 4위 조선일보(400만명 이상, 비공개)보다도 구독자 수가 수십 만 명이 많았다. 11일 현재 기준 약 493만명으로 국내 매체 중 처음으로 500만 네이버 구독자를 확보할 것으로 보인다.
◇기자들에 내재된 혁신의 경험이란 자산
‘네이버 구독자 수 1등’은 국내 디지털 뉴스시장에서 대중 일반에 소구하는 뉴스 콘텐츠를 조직이 체득하고 있다는 의미다. 네이버의 ‘구독 중심’ 포털뉴스 개편 초기 중앙일보는 타 언론을 쫓는 후발 주자였지만 어느새 구독자 수 1위를 꿰찼다. 여기엔 기자들의 노고가 컸다. 지난 5년간 경험치는 비교불가한 중앙일보만의 자산이다. 소규모 팀의 일회적인 선전이 아니라 기성 매체의 ‘루틴’인 만큼 레거시미디어의 미래경쟁력과 더 직결된다.
기자들에게 가장 큰 변화는 이용자를 고려한 마인드 함양이다. 특히 제목 길이, 기사 출고시간대 고려 등 디테일에 대한 고민이 커졌다. 중앙일보 A 기자는 “콘텐트를 어떻게 포장할지 고민을 많이 하게 됐다. 사진을 어떻게 배치할지, 어디서 한 줄을 띄우고 어떻게 나눠 쓸지, GIF를 넣을지 영상을 넣을지 고민한다. 그저 ‘글밭’을 만들어놓으면 독자는 안 읽는다. 반드시 ‘미리보기’를 하고 이용자에게 어떻게 가닿을지 고려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5년 전엔 생각지 않았고 편집기자들에게 의존한 부분도 지금은 PD처럼 본다”고 부연했다.
그동안 신설되고 사라진 수많은 버티컬 매체, 코너 등은 자양분이다. MZ세대를 겨냥한 ‘헤이뉴스’, 20대 기자들의 밀착취재를 표방한 ‘밀실’ 같은 시도는 진행형이다. ‘논설위원’들이 직접 현장을 취재하는 문화를 시스템 차원에서 처음 확립한 곳도 중앙이었다. 언론계 B 디지털 전문가는 “몸집 있는 언론사가 버티컬 매체를 만드는 일은 많았지만 ‘폴인’이나 ‘듣똑라’처럼 지속한 경우는 드물었다. 특히 회사가 생산독립성을 인정해줬다”면서 “레거시미디어엔 워치독 기능 뿐 아니라 정보 서비스나 엔터테인먼트가 붙어왔는데 어느 순간 외부화되며 언론사 역할이 쪼그라들었다. 앞선 사례는 레거시미디어에 막힌 경로를 열어 도달 영역을 확장하는 경우”라고 평했다.
◇현장기자와 신문제작 분리라는 패러다임
중앙 혁신의 한결 같은 기조 중 하나는 ‘현장 기자’와 ‘신문 제작’을 분리하는 것이었다. 뉴스 생산자인 기자가 지면 제작과 디지털을 함께 맡는 식으론 디지털 혁신이 불가능하다는 판단이 있었다. 지난해 12월 ‘2020 내일 콘퍼런스’에서 홍 사장은 중앙일보를 디지털을 담당하는 ‘중앙일보M’과 신문을 전담하는 ‘중앙일보A’로 나누고 장기적으로 법인분할까지 하겠다고 공표하며 기조를 재차 분명히 했다.
이는 국내 언론계에서 패러다임을 바꾸는 일이었다. 디지털 전환에 나선 신문사들의 온·오프라인 뉴스생산 방식은 △신문 기자가 신문 기사를 생산하고 온라인 기자(‘닷컴’ 소속)가 온라인 기사를 생산하는 형태거나 △신문 기자가 온·오프라인 기사를 모두 생산하고 온라인 기자(디지털 전담 부서 소속)가 온라인 기사를 생산하는 경우였는데, 어느 곳도 중앙만큼 성과를 내지 못했다. 반면 중앙은 △온라인 기자가 온·오프라인 기사를 모두 생산하고 일부 신문기자가 신문 기사를 생산하는 데까지 밀어붙였다. 실제 ‘편집국’ 인력을 줄여 ‘뉴스룸’ 인력을 늘리기도 했다. 신문사에서 신문을 ‘주’가 아닌 ‘부’로 바꾸고서야 이만큼 도달했다는 점은 디지털 전환을 위한 구체적인 조직형태와 변화 수위에 고심을 남겼다.
현재 분리된 중앙일보의 원칙은 “신문은 신문답게, 디지털은 디지털답게”로 통약된다. 중앙일보A에선 15년차 이상 중견기자가 ‘콘텐트제작에디터’라는 신설보직을 맡았다. 분량조절을 넘어 디지털 기사에 해석과 설명을 더한다. 고품질 지면 기사(<뷰(VIEW)>도 직접 제작한다. 중앙일보M에선 모바일 스토리텔링에 집중한다. IT·산업계 이슈를 다루는 산업기획팀의 해설기사 <팩플(팩트플러스)>, 일상 재테크 이슈를 정리하는 금융기획팀의 <그게 머니>, 동물과 환경을 커버하는 사회기획팀의 기획물 <애니띵> 등은 고민의 흔적이다. 영상 생산도 부쩍 늘어 매주 15~20개가 만들어진다.
◇‘PV 지상주의’ 우려 목소리
중앙의 디지털 전환 일면을 두고 일각에선 우려가 나온다. 대다수가 “국내에서 마스터플랜을 두고 디지털 혁신을 진행하는 언론사는 중앙 말곤 없다”고 말하지만 중앙이 포털에 일상적으로 선보이는 다수의 어뷰징 기사는 우려한다.
지난달 24일 네이버 ‘많이 본 뉴스’ 내 ‘생활/문화’ 카테고리의 일간 누적 집계조회수 상위권에 오른 중앙일보 기사들은 이 같은 평가를 뒷받침하는 사례다. 이날 중앙이 내놓은 기사는 10위 내에 5개가 올라갔다. 특히 연예인 이효리 씨가 예능프로그램에서 한 발언으로 빚어진 중국 네티즌의 반발 관련 기사가 1위(<“마오 어때요” 이효리 한마디에 뿔난 中네티즌 “올 생각 말라”>)와 4위(<이효리 ‘마오’ 곤혹...中네티즌 “중국 못 올 것” 제작진 “오해”>)를 차지했다. 전형적인 연예기사가 ‘생활/문화’ 카테고리에 송고된 것이다. 기사 카테고리 지정은 네이버가 아니라 언론사가 한다. 최근 네이버가 ‘TV연예’ 카테고리 댓글을 폐쇄하자 댓글창이 존재해 더 많은 PV를 거둘 수 있는 ‘뉴스’ 카테고리로 이처럼 관련 없는 기사를 보내는 일은 상당수 언론사에서 이뤄지고 중앙도 그 중 하나다.
혁신에 드는 비용을 생각하면 일견 억울한 일일 수도 있다. 이에 대해 신문사 디지털 담당 C 팀장은 “언론사가 어떤 혁신을 하고 조직개편을 해도 독자는 뉴스란 결과물 이외 사정을 파악하기 어렵고 고려할 이유도 없다. 아무리 질 높은 기사를 많이 써도 결국 어뷰징을 접할 가능성이 더 높고 종국엔 다른 기사와 브랜드에 싸잡아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신문에선 안 그러면서 훨씬 많이 보는 온라인에서 그런다는 게 납득되지 않는다. 진심으로 중앙이 어떤 길을 보여주길 바란다”고 했다.
중앙일보 A기자는 “PV에 대한 압박감이 정말 크다. 애널리틱스로 바로 확인되니 신경을 안 쓸 수 없다. 한 때 PV용 기사만 쓸 때도 있었는데 이젠 저널리즘을 하면서 어떻게 PV를 올릴지 고민하는 데까진 왔다고 본다”고 했다. 이어 “입사 5년이 안된 중앙의 디지털 네이티브라 할 주니어들을 보며 걱정될 때가 있다. 기발한 걸 갖고 오지만 딱히 저널리즘은 아닐 때가 많다. 그런데 그런 콘텐트가 잘 팔리니 뭐라 할 영이 안 선다. 우리가 깨지며 배운 게 전해질 수 있을지 고민된다”고 덧붙였다.
◇조직 구성원 간 관계훼손, 축적된 혁신 피로란 과제
지난 5년 간 혁신에서 조직 구성원 간 관계가 훼손됐다. 상당수 중견차 이상 기자들이 ‘밀려난다’는 인상이 강하게 들 수밖에 없는 정황 속에 신문제작을 맡는 ‘7층(편집국)’으로 발령 났다. “돈은 신문에서 버니까”, 다시 말해 디지털에서 수익모델을 찾고 “탄탄해지면 신문을 분사하게 될 것”이란 우려는 지난해 말 이후 더욱 커졌다. 분할 또는 분사는 노동자로서 지위나 처우 변경으로 이어지는 문제다. 중앙일보 D 기자는 “분리가 됐다지만 지면이 기사를 여기서 가져가고 큰 출입처일수록 신문에 나오는지를 따지니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 적합한 기사가 다르니 선배들은 ‘신문에 넣을 기사가 없다’고 하고 우린 ‘그렇게 많이 쓰는데 왜 없어. 내 기사는 신문에 왜 안 들어가지’ 싶어진다”며 “같이 갈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관계는 불편하게 만들어놓곤 회사는 나몰라라 하는 것”이라고 했다.
혁신이 계속되며 누적된 피로로 8층 ‘뉴스룸’ “기자들에 임계점이 왔다”는 목소리도 많다. 최근 블라인드앱엔 익명의 중앙일보 기자가 리더십에 대한 불만, 앞으로 나아갈 길에 대한 불안, 피로 호소 등이 담긴 글을 올려 내부에서 큰 공감대를 얻기도 했다. 최훈 편집인 겸 논설주간은 지난 7월 임명 후 ‘기자들에게 멍 때릴 시간을 좀 줄 것’을 간부들에게 주문했지만 크게 달라진 점은 없다.
올해 연말과 내년, 후년 중앙이 또 어떤 변화를 도모할지 주목된다. 장기적으로 중앙일보M이 앞선 디지털 구독자를 실질적인 수익이 될 소비자로 바꿔낼 수 있을지, 나아가 신문 기반 수익모델의 대안을 찾을 수 있을지는 주요 관심사다. 중앙일보A의 역할 변동도 마찬가지다. 당장 기업분할 시 ‘중앙일보’ 브랜드는 누가 갖게 되고, 중앙일보A의 M 콘텐츠 이용 비용책정은 어찌될지, 기자들의 역할과 근로조건이 어떻게 달라질지가 관건이 된다. 분명한 점은 중앙이 겪을 변화는 국내 타 매체에 ‘다가온 미래’일 수 있다는 것이다.
최승영 기자 sychoi@journalis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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