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말 한국기자협회가 구글, 헤이조이스와 함께 육아휴직 기자들을 위한 'GNI 뉴스룸 리더십 프로그램'을 추진한다고 공지했을 때 이 소식을 내게 전해주던 한 선배는 위와 같이 말했다.
나는 지난해 5월 생애 첫 출산을 하고 반년가량 육아휴직을 하고 있던 상태였다. 소식을 전해준 선배 역시 육아휴직을 마치고 복직한 입장에서 아이를 키우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알기에, 강의를 들으러 갈 여유가 있겠냐는 이야기를 내게 한 것이다.
나 또한 참신한 프로그램에 가슴이 뛰는 한편 강의가 제대로 진행될 수 있을지 반신반의하는 마음이었다. 집에서 씻을 시간도 없어 세수도 안하고 (나만 그런가?) 아이밥 챙겨주느라 내 밥 먹을 여유조차 없는 것이 육아의 현실인데, 대체 어떤 수로 돌도 안된 아기를 데리고 강의를 들을 수 있다는 건지 상상조차 안됐다.
그래서 대체 이 프로그램이 왜 진행되게 됐는지, 그리고 어떻게 운영되는지 '취재'에 나섰다. 강의 프로그램을 실질적으로 운영하는 '헤이조이스'는 일하는 여성들을 위한 자기계발과 네트워킹을 지원하는 스타트업인데 활동에 진정성이 있어 보였고, 육아휴직자들에 대해서도 감수성을 갖고 운영을 할 것이란 믿음이 조금 생겼다. 미리 선공개한 프로그램 일정 또한 그저 그런 강의들이 아니라 돈을 주고라도 들어보고 싶은 콘텐츠들이었다.
그래서 프로그램에 지원하게 됐고 방송, 온라인, 종합지, 경제지, 외신 등 다양한 매체의 19명 동기들과 함께 이 프로그램을 수강하게 됐다. 육아휴직 ‘아빠’들도 4명이 참여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프로그램에 지원한 것은 내겐 ‘신의 한 수’였다.
만족도가 높았던 부분들을 꼽아보자면 가장 먼저 '아이와 함께 듣는 수업'이 정말로 가능했다는 점이다. 많은 육아휴직자들이 그러하듯 나 또한 주중 남편(또는 아내)이 일을 해 혼자 온전히 아기를 봐야했고, 아이를 잠시 맡길 곳도 없다. 돌봄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수강은 언감생심이었다.
GNI 프로그램은 이 문제를 섬세하게 해결해 줬다. 참여 기자들이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 헤이조이스 선릉 아지트에서 강의를 듣는 동안 아이들은 바로 옆 별도로 마련된 공간에서 돌봄 전문 스타트업 ‘자란다’의 1:1 서비스를 받았다. 아이 한 명당 돌봄 선생님 한 명! 강의가 진행되는 내내 마음이 든든했다. 아직 어린 아기들이니 불쑥 엄마를 찾을 때도 있었다. 그럴 때는 얼마든지 아이를 강의실로 데려와 안고, 같이 놀면서 강의를 들을 수 있었다. 애초에 육아휴직 엄마, 아빠들이 모인 곳이니 전혀 눈치 볼 것 없었다. 어디에서도 귀여운 아기들을 데리고 삼삼오오 모여 수업을 듣는 진풍경을 직접 보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최연소는 4개월 아기다!)
프로그램 내용도 만족스러웠다. 기자들을 대상으로 한 재교육 프로그램을 이렇게까지 마련하기도 쉽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지난 1월20일부터 10주 일정으로 매주 월요일, 3개 세션씩 진행된 강의는 (코로나 때문에 일정이 조정되긴 했지만) 데이터 저널리즘, 팩트체크, 유튜브 저널리즘 등 최신 미디어 변화를 충실히 반영했고 다양한 이력과 전문성을 쌓은 선배들의 이야기도 생생하게 담았다. 또 각자의 강점에 대해 고찰해보고 집중하자는 취지에서 진행된 ‘강점찾기 워크샵’, 뉴스룸 내 리더십 향상을 위한 ‘세대공감 커뮤니케이션’ 강의, ‘여성 리더십과 조직문화’ 관련 강의도 신선했다.
글로벌 미디어업계 트렌드와 디지털 혁신에 관한 강의들은 ‘미디어업계가 급변하는 상황에서 언론은, 그리고 기자는 어떤 노력을 할 수 있을까’라는, 바쁘게 사느라 뒤로 미뤄놓았던 고민들에 다시 불을 지폈다.
뉴닉의 김소연 대표, 퍼블리 박소령 대표, 아웃스탠딩의 최준호 공동창업자 등 ‘핫한’ 뉴미디어 스타트업 대표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는 콘텐츠로서 뉴스의 가치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됐고 어떤 새로운 시도들이 가능할지 힌트도 엿볼 수 있었다. ‘혁신 DNA’를 탑재한 이들로부터 기자로서, 또 인간으로서 새로운 도전에 대한 자극도 많이 받았다.
천관율 시사인 기자, 손영옥 국민일보 미술/문화재 기자를 비롯해 권석천 중앙일보 논설위원, 김민아 경향신문 선임기자, 이정민 중앙일보 논설위원 등 많은 기자 선배들도 ‘탐사보도 케이스 스터디’ ‘전문기자로 성장하기’ ‘칼럼과 사설로 발언하기’ 등 주옥같은 강의를 해주셨다. 전문성 있는 커리어를 쌓아나가는 구체적인 방법들과 기자로서 성실한 삶의 궤적들을 살펴볼 수 있어서 귀감이 됐다.
이렇게 ‘고퀄(질좋은) 아이돌봄 서비스’ ‘고퀄 프로그램’이라는 이유 외에도, 내게 GNI 프로그램이 큰 수확이었던 이유는 ‘육아휴직 기자’라는 평소 모이려야 모일 수 없는 동료들이 함께 모여 교류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대체로 10년 안팎의 연차에 비슷한 고민을 안고 있는 데다가 육아까지 하고 있으니 공감대가 1000%다. 인생에서 중요한 시기에 소중한 시간을 함께 나눈 인연에 감사함을 느낀다.
작지만 작지 않은 에피소드를 말하자면, 바로 ‘코로나’ 발생. 코로나로 사회가 ‘홍역’ 아니 그야말로 ‘팬데믹’(pandemic)을 치르는 가운데 우리도 일부 프로그램을 온라인, 또는 선택적 온·오프라인으로 조정할 수 밖에 없었다. 부모는 물론 어린 자녀들의 건강을 위해서라면 당연한 조처였다. 아쉬움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이를 통해 온라인 미팅 및 수강 경험을 쌓은 것도 변해가는 세상 속에서 흥미로운 경험이었다.
나의 의견에 덧붙여, 함께한 ‘동기’들의 이번 프로그램에 대한 공통적인 평은 자칫 우울해지기 쉬운 육아휴직 기간에 기자로서, 인간으로서 새로운 자극을 ‘팍팍’ 받을 수 있었던 소중한 시간이었다는 것이다. 복직했을 때 뉴스룸에서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는 기자로서의 역량을 강화한다는 프로그램 취지에 걸맞게 복직 후 기자의 길에 대해 생각해보는 계기가 됐고, 더 나아가서는 어떻게 인생을 꾸려갈 것인지에 대해서도 멈춰 서 고민해 본 시간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육아휴직 기자들에게 이 프로그램을 추천하냐고? 물론이다. 아니, ‘육아휴직 기자’에게만 이 기회가 돌아가는 것이 아쉬울 따름이다. 아기를 키우는 기자들은 물론이거니와 모든 기자들에게 충분히 힘을 실어 줄 수 있는 프로그램이었기 때문에. 시즌2, 시즌3가 꼭 이어지길 빈다. (나도 둘째를 낳으면 또 참여할 수 있으려나?) 다음 회차엔 더 많은 아빠기자들이 참여하지 않을까.
마지막으로 당부의 말. 육아를 하면서도 효율적으로 일할 수 있도록 다양한 유연근무 제도, 남성기자 육아휴직 강화 등에 힘을 실어줬으면 한다. 바람직한 사회 변화에 목소리를 높이는 언론이 그 메시지에 걸맞은 진정성을 보여줬으면 한다. 감히 이러한 노력들이 진짜 혁신으로도 이어지는 지름길이 될 것이라고 강조해본다.
Copyright @2004 한국기자협회.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