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30일 헤이조이스 선릉 아지트에서 육아휴직 기자들을 위한 'GNI 뉴스룸 리더십 프로그램' 참여 기자들, 헤이조이스 관계자, 강연자 등이 참여한 가운데 수료식이 진행됐다. /헤이조이스 제공
지난해 12월말 한국기자협회가 구글, 헤이조이스와 함께 육아휴직 기자들을 위한 'GNI 뉴스룸 리더십 프로그램'을 추진한다고 공지했을 때 이 소식을 내게 전해주던 한 선배는 위와 같이 말했다.
나는 지난해 5월 생애 첫 출산을 하고 반년가량 육아휴직을 하고 있던 상태였다. 소식을 전해준 선배 역시 육아휴직을 마치고 복직한 입장에서 아이를 키우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알기에, 강의를 들으러 갈 여유가 있겠냐는 이야기를 내게 한 것이다.
나 또한 참신한 프로그램에 가슴이 뛰는 한편 강의가 제대로 진행될 수 있을지 반신반의하는 마음이었다. 집에서 씻을 시간도 없어 세수도 안하고 (나만 그런가?) 아이밥 챙겨주느라 내 밥 먹을 여유조차 없는 것이 육아의 현실인데, 대체 어떤 수로 돌도 안된 아기를 데리고 강의를 들을 수 있다는 건지 상상조차 안됐다.
▲지난 3월 육아휴직 기자들을 위한 'GNI 뉴스룸 리더십 프로그램' 수강을 위해 선릉 헤이조이스 아지트에 모인 기자들과 자녀들. 왼쪽부터 박진영 머니투데이 기자, 임세원 서울경제신문 기자, 김지훈 한겨레 기자. /헤이조이스 제공
그래서 대체 이 프로그램이 왜 진행되게 됐는지, 그리고 어떻게 운영되는지 '취재'에 나섰다. 강의 프로그램을 실질적으로 운영하는 '헤이조이스'는 일하는 여성들을 위한 자기계발과 네트워킹을 지원하는 스타트업인데 활동에 진정성이 있어 보였고, 육아휴직자들에 대해서도 감수성을 갖고 운영을 할 것이란 믿음이 조금 생겼다. 미리 선공개한 프로그램 일정 또한 그저 그런 강의들이 아니라 돈을 주고라도 들어보고 싶은 콘텐츠들이었다.
그래서 프로그램에 지원하게 됐고 방송, 온라인, 종합지, 경제지, 외신 등 다양한 매체의 19명 동기들과 함께 이 프로그램을 수강하게 됐다. 육아휴직 ‘아빠’들도 4명이 참여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프로그램에 지원한 것은 내겐 ‘신의 한 수’였다.
만족도가 높았던 부분들을 꼽아보자면 가장 먼저 '아이와 함께 듣는 수업'이 정말로 가능했다는 점이다. 많은 육아휴직자들이 그러하듯 나 또한 주중 남편(또는 아내)이 일을 해 혼자 온전히 아기를 봐야했고, 아이를 잠시 맡길 곳도 없다. 돌봄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수강은 언감생심이었다.
▲'GNI 뉴스룸 리더십 프로그램' 수업 공간에서 부모, 친구들과 함께 놀이시간을 갖고 있는 육아휴직 기자 자녀들의 모습. /박진영 머니투데이 기자
GNI 프로그램은 이 문제를 섬세하게 해결해 줬다. 참여 기자들이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 헤이조이스 선릉 아지트에서 강의를 듣는 동안 아이들은 바로 옆 별도로 마련된 공간에서 돌봄 전문 스타트업 ‘자란다’의 1:1 서비스를 받았다. 아이 한 명당 돌봄 선생님 한 명! 강의가 진행되는 내내 마음이 든든했다. 아직 어린 아기들이니 불쑥 엄마를 찾을 때도 있었다. 그럴 때는 얼마든지 아이를 강의실로 데려와 안고, 같이 놀면서 강의를 들을 수 있었다. 애초에 육아휴직 엄마, 아빠들이 모인 곳이니 전혀 눈치 볼 것 없었다. 어디에서도 귀여운 아기들을 데리고 삼삼오오 모여 수업을 듣는 진풍경을 직접 보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최연소는 4개월 아기다!)
프로그램 내용도 만족스러웠다. 기자들을 대상으로 한 재교육 프로그램을 이렇게까지 마련하기도 쉽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지난 1월20일부터 10주 일정으로 매주 월요일, 3개 세션씩 진행된 강의는 (코로나 때문에 일정이 조정되긴 했지만) 데이터 저널리즘, 팩트체크, 유튜브 저널리즘 등 최신 미디어 변화를 충실히 반영했고 다양한 이력과 전문성을 쌓은 선배들의 이야기도 생생하게 담았다. 또 각자의 강점에 대해 고찰해보고 집중하자는 취지에서 진행된 ‘강점찾기 워크샵’, 뉴스룸 내 리더십 향상을 위한 ‘세대공감 커뮤니케이션’ 강의, ‘여성 리더십과 조직문화’ 관련 강의도 신선했다.
글로벌 미디어업계 트렌드와 디지털 혁신에 관한 강의들은 ‘미디어업계가 급변하는 상황에서 언론은, 그리고 기자는 어떤 노력을 할 수 있을까’라는, 바쁘게 사느라 뒤로 미뤄놓았던 고민들에 다시 불을 지폈다.
뉴닉의 김소연 대표, 퍼블리 박소령 대표, 아웃스탠딩의 최준호 공동창업자 등 ‘핫한’ 뉴미디어 스타트업 대표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는 콘텐츠로서 뉴스의 가치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됐고 어떤 새로운 시도들이 가능할지 힌트도 엿볼 수 있었다. ‘혁신 DNA’를 탑재한 이들로부터 기자로서, 또 인간으로서 새로운 도전에 대한 자극도 많이 받았다.
천관율 시사인 기자, 손영옥 국민일보 미술/문화재 기자를 비롯해 권석천 중앙일보 논설위원, 김민아 경향신문 선임기자, 이정민 중앙일보 논설위원 등 많은 기자 선배들도 ‘탐사보도 케이스 스터디’ ‘전문기자로 성장하기’ ‘칼럼과 사설로 발언하기’ 등 주옥같은 강의를 해주셨다. 전문성 있는 커리어를 쌓아나가는 구체적인 방법들과 기자로서 성실한 삶의 궤적들을 살펴볼 수 있어서 귀감이 됐다.
이렇게 ‘고퀄(질좋은) 아이돌봄 서비스’ ‘고퀄 프로그램’이라는 이유 외에도, 내게 GNI 프로그램이 큰 수확이었던 이유는 ‘육아휴직 기자’라는 평소 모이려야 모일 수 없는 동료들이 함께 모여 교류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대체로 10년 안팎의 연차에 비슷한 고민을 안고 있는 데다가 육아까지 하고 있으니 공감대가 1000%다. 인생에서 중요한 시기에 소중한 시간을 함께 나눈 인연에 감사함을 느낀다.
▲지난 4월 헤이조이스 선릉 아지트에 모인 육아휴직 기자들이 'GNI 뉴스룸 리더십 프로그램' 강의를 수강하고 있다. /헤이조이스 제공
작지만 작지 않은 에피소드를 말하자면, 바로 ‘코로나’ 발생. 코로나로 사회가 ‘홍역’ 아니 그야말로 ‘팬데믹’(pandemic)을 치르는 가운데 우리도 일부 프로그램을 온라인, 또는 선택적 온·오프라인으로 조정할 수 밖에 없었다. 부모는 물론 어린 자녀들의 건강을 위해서라면 당연한 조처였다. 아쉬움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이를 통해 온라인 미팅 및 수강 경험을 쌓은 것도 변해가는 세상 속에서 흥미로운 경험이었다.
나의 의견에 덧붙여, 함께한 ‘동기’들의 이번 프로그램에 대한 공통적인 평은 자칫 우울해지기 쉬운 육아휴직 기간에 기자로서, 인간으로서 새로운 자극을 ‘팍팍’ 받을 수 있었던 소중한 시간이었다는 것이다. 복직했을 때 뉴스룸에서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는 기자로서의 역량을 강화한다는 프로그램 취지에 걸맞게 복직 후 기자의 길에 대해 생각해보는 계기가 됐고, 더 나아가서는 어떻게 인생을 꾸려갈 것인지에 대해서도 멈춰 서 고민해 본 시간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육아휴직 기자들에게 이 프로그램을 추천하냐고? 물론이다. 아니, ‘육아휴직 기자’에게만 이 기회가 돌아가는 것이 아쉬울 따름이다. 아기를 키우는 기자들은 물론이거니와 모든 기자들에게 충분히 힘을 실어 줄 수 있는 프로그램이었기 때문에. 시즌2, 시즌3가 꼭 이어지길 빈다. (나도 둘째를 낳으면 또 참여할 수 있으려나?) 다음 회차엔 더 많은 아빠기자들이 참여하지 않을까.
마지막으로 당부의 말. 육아를 하면서도 효율적으로 일할 수 있도록 다양한 유연근무 제도, 남성기자 육아휴직 강화 등에 힘을 실어줬으면 한다. 바람직한 사회 변화에 목소리를 높이는 언론이 그 메시지에 걸맞은 진정성을 보여줬으면 한다. 감히 이러한 노력들이 진짜 혁신으로도 이어지는 지름길이 될 것이라고 강조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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