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나저나, 경제적 양극화를 체감하기 어려운 핀란드 관객에게도 영화 속 불평등(inequality)이 공감을 얻을 수 있을까? 극장 바깥 현실이랄까, 소득재분배로 빈부격차를 줄여온 핀란드 사회에서는 반지하 무노동 가족이 낯설지 않을까. 또 그간의 무상 교육, 노동권 보호, 기본 소득과 같은 제도와 실험을 보면, 이곳은 영화가 가장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곳이 아닐까도 싶었다. 짓궂게 따질 생각은 아니었지만, 기생충 가족이 핀란드에 살았다면? 계층 이동은 어렵더라도 최소 생활 수준은 갖추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를 재관람하며 몇 가지 의문을 메모해봤다.
먼저 곱등이와 무말랭이 냄새가 동거하는 반지하. 헬싱키 사노맛 영화 기자 벨리-뻬까 레흐또넨(Veli-Pekka Lehtonen)에게 물었다. 핀란드에도 반지하(kellarihuoneisto)라는 개념이 있고 이런 집에 사는 지인도 있다고 말했다. 물론 변기를 사람 허리보다 높은 데 설치하는 당혹스런 구조는 아니다. 주로 사우나용으로 쓰는 공간이다. 영화 속 기택네는 부부 및 성인 자녀가 함께 살고 있으므로, 핀란드법이 정한 1인 최소 주거공간 및 실업급여 등을 계산해 조금 더 쾌적한 집을 얻을 수도 있을 것이다. 사회보험청 껠라(Kela) 웹사이트에서 주택보조금을 대강 계산해보니, 마땅한 수입이 없는 4인 가족의 경우 월세 대부분을 지원받을 수 있다.
다음으로 가족 모두가 꽤 오랫동안 쉰 듯한 전원백수 상태. 이 정도 상황이면 역시 사회보험청을 통해 기초생활보조금이나 실업급여를 받을 것이다. 제시카(기정)는 뛰어난 손재주와 정보 검색 능력을 갖췄으니, 무료로 직업 학교에 등록해 학생 보조금을 받으며 취업을 준비할 수 있다. 카스테라집 창업에 실패한 기택이 사업 중 자영업자 연금보험에 들었다면, 소득대비 최장 500일 실업급여를 받는다. 기우가 운 좋게 핀란드 기본소득 실험 대상자로 선정되어 아무 조건 없이 72만원을 받는 경우는 어떨까. ‘계획대로’ 명문대에 들어가기 전, 열린 대학(open university)에서 일부 학점을 미리 쌓고 나중에 인정받는 길도 있다.
해머던지기 선수 출신이지만 무직 주부인 충숙이나 수십 년 경력 가정부 문광의 삶은 또 어떤가. 최근 핀란드 스포츠 교육은 운동 선수의 이중 경력(dual career)을 지원한다. 훈련 과정에서 사회적 필수 역량 또한 기를 수 있도록 해, 선수 생활을 끝내더라도 취업이 원활하도록 돕는 안전장치다. 핀란드 기준에서 문광처럼 하루 아침에 일자리를 잃는 경우는 흔치 않지만, 있다면 질병 휴가나 해고 사전 공지와 같은 노동권을 행사할 수 있을 것이다. 평소 노동조합에 가입해둔 상황이라면 더 적극적인 대응 지원도 받을 수 있다.
앞서 소개한 레흐또넨 기자는 ‘기생충’을 보고 “세계적 오락영화이자 자본주의 사회와 빈부격차에 관한 비판”이라고 썼다. 한국적 이야기지만, 실업, 스타트업 신흥부자, 소득양극화와 같은 문제는 핀란드인에게도 낯설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1970년대 많은 핀란드 영화가 탈산업사회 자본주의를 비판적으로 바라봤고, 아끼 까우리스마끼(Aki Kaurismäki) 감독 작품들 및 2016년 작품 ‘광산’(Jättiläinen)과 같은 영화도 비슷한 문제 의식을 가졌다고 소개했다.
여하튼, ‘평등한’ 핀란드 현실에 비춰 흥행을 걱정한 건 내 기우였다. 기생충은 핀란드 개봉 2주 만에 관객수 4만명을 넘었고, 오스카 수상 직후 나흘 내내 박스오피스 1위에 올랐다. 최대 극장 체인 핀키노(Finnkino) 예매 서버가 다운되기도 했다. 처음 있는 일이다. 이런 인기에 힘입어 언젠가 봉준호 감독이 핀란드 카페 구석에 앉아 시나리오를 쓰는 날도 오려나. “감독님, 그날이 올 때까지 건강하세요.”
최원석 핀란드 라플란드 대학교 미디어교육 석사과정의 전체기사 보기Copyright @2004 한국기자협회. All rights reserved.